삼의당김씨(三宜堂金氏)
1769(영조 45)∼?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김해(金海). 당호는
삼의당(三宜堂).
전라북도 남원 서봉방에서 태어나 같은해 같은날 출생이며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河립)과 혼인하였다. 이들
부부는 나이도 같거니와 가문이나 글재주가 서로 비슷하여 주위에서 천정배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중년에 선영(先塋)을
수호하기 위하여 진안 마령면(馬靈面) 방화리(訪花里)로 이주하여 거기에서 시문을 쓰면서 일생을 마쳤다.
그의 문집에 기록된 것처럼 남편
하립이 그 부인이 거처하는 집의 벽에 글씨와 그림을 가득히 붙이고 뜰에는 꽃을 심어 ‘삼의당’이라 불렸다 한다. 그의 평생소원은 남편이 등과하는
것이어서 산사에서 독서하고, 서울로 유학하는 일을 철저히 권장하였다.
가세가 궁핍하였기 때문에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머리털을 자르기도
하고 비녀를 팔기까지 하였으나 남편은 결국 등과하지 못하였다. 그는 평생을 두고 남편에게 권학하는 글을 많이 썼으며, 가장 규범적이요 교훈이
되는 글을 많이 썼다.
죽은 해는 알 수 없으나 6월 20일에 죽었다고 하며, 묘는
진안 백운면 덕현리에 그 남편과 함께 쌍봉장으로 있다. 진안 마이산(馬耳山) 탑영지(塔影池)에는 시비 {담락당하립/삼의당김씨부부시비
(湛樂堂河립/三宜堂金氏夫婦詩碑〉가 세워져 있으며, 남원교룡산성에 시비가 세워져 있고 그가 살았던 유촌마을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남원지역의 향토사가들이 의 김삼의당 기념사업회 및 연구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학술대회 등을 개최하고 하립 김삼의당 공원조성 및
문학관 조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있다,.
문집으로는 《삼의당고》 2권이 1930년에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시
99편과 19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삼의당의 한시는 여성시인들의 최고의 평가를 하고있으며, 여염집 아녀자로서 글을 읽고 시문을
쓰기에 부적절한 시대에 그의 시문이나 그의 발자취는 여성평등을 요구하는 하나의 여성운동이며 정신적인 가치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우리는 왜 김삼의당의 흔적을 찾는가!
김삼의당의 가정적이고 규범적인 사상과 그의
시문은 학계에선 조선의 어느 여인보다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남편을 내조하는 그의 규범과 교훈, 부모를 모시는 효행과 덕목을 그의 시문을
통해서 잘 나타내고 있다.
지난일요일엔 그의 묘소를 찾아나섰다. 오늘은 김삼의당을 연구하신 노교수님을 만나뵙고 하립의 후손이신 전
진안면장이셨던 후손을 만나뵈었다.
그들이 연구하고 삼의당의 유품이나 유고,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그 사회상을 배경으로 그들이
얻고자하고 남기고자하는 정신을 이해하고 오늘의 사회에 접목하는 실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산업사회와 정보화 그리고 물질적
만능으로 30대이하의 이혼률이 50%가까이에 이르고 있음은 우리에게 무언가 모순이 있음을 알수있다. 이러한 때 삼의당 부부의 정신과 규범 그리고
그들의 추구하고 남겨준 교훈을 되살리어 그들의 정신을 지표로 삼을 필요성이 있음일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세대에 시작을 하고 그리고
작은 씨앗이 된다면 우리사회의 발전에 작은 밑거름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노(老)교수님을 만나뵙고 교수님의 후학을 위한 배려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진실로 위하는 세심한 배려에 깊은 느낌을 주는건 그분만의 학풍에서 나온 또하나의 학문이 아니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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