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둥지 이야기♧

K.B.S 아침 마당 생방송 "우리 둥지"(가족 신문)출현 하다.

우리둥지 2016. 5. 12. 15:11

 

타이틀

시그널 흘러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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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유장영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

제가 한 기사에서 봤는데요.

사랑하는 가족과 포옹으로 아침인사를 하고

간단한 과일로.라도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 것!

몸과 마음까지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김태은 그게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요.

온 가족이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하는 횟수가

일주일에 많아야 네 번이구요,

10가구 중 1가구는 한 끼 함께 먹기도 힘들다고

답했다고 해요.

 

유장영 , 맞아요.

요즘엔 맞벌이 부부도 많고

1인 가구도 늘고 있는 추세죠.

사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데,

이러다가 그 의미마저 상실될까 걱정이네요.

 

김태은 하지만 이런 세태 속에서두요,

서로 보듬으며 복작복작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죠.

바로 이 가족처럼 말이죠.

30년 동안 가족신문을 만들어온

<우리둥지> 가족들과 이 시간 함께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박수치고)

출연자들 인사하고..

 

토크 1. <우리둥지> 소개 (5 ’)

유장영 - <우리둥지>?

(* 168호 신문모형 들고)

한 가족이 30년 동안이나 발행해온 신문!

바로 이 신문입니다.

이 신문은 지난주에 나온

따끈따끈한 최신판이라는데요.

<우리둥지>, 어떤 신문인지

또 어떤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지 소개 해주시죠~

 

박제순 1)우리둥지 신문 간략 소개

, <우리둥지>는 가족신문입니다.

198712월에 창간해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이어 제가 발행...

신문 이름은 아버님이 지으셨는데요...

저희 집 가훈이 <참되게 살자>입니다.

보통사람이 사는 평범한 둥지에 빛 만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뜻의 이름으로...

그 이름처럼 참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0년째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2) 가족 소개

여기 1대 발행인이신 아버님과 어머님,

저희는 삼형제인데...

<우리둥지>가족신문은 셋째인 저와

제 아내가 이어받아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김태은 -우리둥지, 1대 발행인 소개 (박원조)

30년 전, 처음 가족신문을 만들고

발행한 아버님!

보통 에너지를 가진 분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원조 (소개부터 근황까지 답변해 주시고)

~~ 요즘은 4년 전부터 수화를 배우고 있어서

남원 농아인 협회 운영위원장 직으로

여러 분들과 봉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인생 하반기인 저에게

복으로 생각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해정 - 가족의 뿌리를 알자, 신문 발행의 이유가 되다

제가 보니까 <우리둥지>

창간호부터 최신판까지 신문 첫면에요~

참되게 살자는 가훈과 함께

밀양박씨, 규정공파 몇 세 손까지 매회 찍혀 있더라구요~

사실 요즘은 성씨만 겨우 알고

어떤 파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렇게 세세하게 명시한 이유가 있나요?

박원조 (명시한 이유와, 신문발행 계기)

....1987년 추석 무렵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장손집안이라 명절마다 친척들이

많이 모였는데요. 그러던 중 사촌동생 두어 명이

제 아들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형님~!” 하고

부르는 것을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어허~!“

저러면 안 되는데 하시며 촌수를 알려주는 방법이 없을까?

하시며 걱정을 하시기에 방법을 찾는 것이

가족 신문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 제일 앞면에 꼭 명시하고

신문 내용에도 종종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죠.

 

 

 

 

토크 1. 가족신문 <우리둥지> 이렇게 시작했다 (12 ’)

 

유장영 - 창간 당시의 회상 (박제순)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도

오랜 시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아버지의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30년간 꾸준히 발행해 온 걸 보면,

가장의 권위가 추측된다...

솔직하게 아들로서 30년 전

가족신문 창간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박제순 (어릴적 아버지, 가족신문 창간당시 분위기)

아버지는 ROTC 2기세요.

예비군 중대장도 하셨구요.

어릴 적 주말이면 집안 대청소를 했었는데요.

하얀 장갑을 끼고 문틀 위를 검사하고

다시!”라고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형들이랑 텔레비전보고 실컷 놀다가도

아버지 오시는 소리가 나면 땀 흘리는 채로

공부하는 척 했던 기억이 많네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가 또 그렇게

엄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솔직히, 가족신문을 저에게 권하실때도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거니까 해야하나보다....

하는 것도 좀 있었어요.

 

 

 

 

 

 

김태은 - 대가족 살림에 가족신문까지? (안종선)

저는요 아들 보다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해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장손집안에서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는 큰며느리 역할에,

열정 많은 남편 내조하랴, 세 아들 챙기랴

거기다 신문 기사까지 쓰라니...

가족신문 발행이 반갑지 않을 것도 같은데

어떠셨어요?

 

안종선 생각은 좀 더 멋진 신문이 만들어졌으면 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여력이 없어서

나의 영역 밖에 있었으면 했습니다.

 

이덕춘 - 첫 번째 신문, <우리둥지> 창간호 발행과정(박원조)

제가 일을 많이(?) 벌여봐서 아는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결국 일을 벌인 사람이더라구요.

게다가 1980년대에는 가정에서

컴퓨터나 프린터기 보기도 귀한 시절이라

신문 작업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우리둥지> 창간호, 어떻게 발행되었나요?

 

*답변 초반에 VCR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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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1> 창간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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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보면서 답변해주세요.

 

박원조 (*화면에 나오는 창간호 자료 보면서)

우리둥지는 1987121일에 창간되었구요.

최초 발행부수는 50부였습니다.

많이 발행할 때는 800부를 넘었던 적도 있었지요.

그때는 종이에 자필로 쓰고 책에서 삽화도 오려붙여

인쇄소에 보내면 석판(石板)인쇄로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최해정 - 새로운 가족문화도 시작되다 (박제순)

초창기에 발행된 신문을 잠깐 봤는데요,

오리고 자르고, 일일이 손이 간 흔적이 보이더라구요.

덕분에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새로운 가족 문화도 생겼다고?

 

박제순 가족신문에 대한 제일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인쇄가 끝난 신문을 가져오시면,

그날은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나란히 둘러앉아 아버지가 A3 신문을 절반 접구요.

큰형이 그걸 다시 두 번 더 접구요.

작은형이 편지봉투에 넣구요.

저는 풀칠을 하지요. 그러다 풀칠이 늦어지면...

아버지나 큰형이 풀칠을 대신하고.

저는 우표붙이는 작업으로 밀려납니다.

지금이야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어주지만,

당시에는 10원단위까지 우표를 직접 붙였거든요.

어머니는 오징어 같은 주전부리를 준비하시면

저는 접시에 물을 담아 우표를 하나씩 붙입니다.

가족신문이 나오는 날은.. 늘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인미애 - 가족신문 최고의 환경, 대가족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고생 아닌 고생 끝에 가족신문이 한부 한부 나온거네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신문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즘엔 참 보기 힘든 대가족...

어머니로서, 돌아봐도 가족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지쇼?

안종선 그럼요...

막내 아들이(박제순)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여 주셨답니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은 조부모님의 기침소리와 함께

부모님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그런 집이 가장 좋은 집"이다.”

그 말이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자녀 교육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장영 - 새가족, 막내며느리가 느낀 가족 분위기(김유진)

새가족으로 합류한

며느리, 김유진씨는

우리둥지 발행 당시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가족 분위기 어떻게 느끼셨나요?

 

김유진 결혼 전에는 가정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연애시절 처음 가족신문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대단하다고 생각....

부모가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도 바르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시부모님이 남원에 계셔서

직장 때문에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남편이 자라던 가정환경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좋은 점 이야기 해주시고..)

 

김태은 - 가족소개 VCR 리드 (답변: 박제순)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침소리와

부모님의 말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집.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듯해집니다.

어떤 분위기였을지,

사진으로 함께 보면서 이야기 들어볼까요?

 

*답변 초반에 VCR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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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2> 가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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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보면서 답변해주세요.

 

박제순 (어린시절 가정 분위기, 조부모님과의 추억.

현재 까지... 사진 보면서 설명해주세요)

 

최해정 - 다음 신문을 기다리던 가족(박원조)

가족신문, 창간 당시

박제순씨의 조부모님도 함께 하셨을텐데

반응은 어떠셨나요?

 

박원조 ,

다음 달 신문 제 날짜에 나오지?

하시며 은근히 독촉까지 하실 정도 였습니다.

두툼한 돋보기를 쓰시고 한자, 한자 읽어 보십니다.

그러면 오자, 탈자, 틀린 한자도 왜 그렇게 나오는지....

몇 차례 교정을 봐도 꼭 가을철에 낙엽을 금방 치워도 또 떨어지듯 나오는지...

 

 

 

 

 

 

 

 

 

토크 2. 30년 가족신문의 변천사와 지속비결

 

유장영 - 삼형제가 받은 특별한 유산 (박제순)

현재 편집, 발행을 맡고 있는 박제순씨는

1대 발행인 박원조 씨의 셋째 아들인데요.

가족신문을 물려받은 이유가

1998, 아버지의 호출과 함께

형제들 에게 특별한 유산 상속을

하셨기 때문이라는데 어떤 일인지?

 

박제순 98년이 제가 제대하던 해입니다.

아버지의 기억과는 조금 다를 수가 있을텐데요.

평소 아버지가 무서우신 분이라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지

못 하는 게 저희 형제의 분위기였죠.

칠순이 넘었어도 아직 카리스마가 남아있으신데요.

제 생각엔 당시에 화폐, 우표, 가족신문 세 가지를 꺼내실 때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된 거 같아요...(대답해주시고)

 

김태은 - 초창기 <우리둥지> 신문 지면 구성(박원조)

2대에 걸쳐 30년을 써온 가족신문,

초창기 신문 지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실렸었나요?

 

박원조 (초창기 신문 지면 코너 설명해주시고...)

둥지의 소식, 우리고장 소개, 고사성어

제사법, 가족들의 글 등...특히 우리고장 소개 코너는

남원이 제가 알기로 전국에서 경주, 부여,

안동 다음으로 국보급 문화재, 보물, 유물들이 많은 곳입니다.

에 따른 행사도 있고 하니 자연스럽게 소개할만한 소재가 많지요.

외지로 이사 간 친척, 친지들이 고향 소식을 잊지 말고 애향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덕춘 - 가족 기사 받기가 더 어렵더라(박원조)

가족신문 기자는 역시, 가족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매의 눈으로 신문을 훑어보니까요.

초창기엔 가족들 기사 받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

느껴졌습니다. 아들 일기도 보이고,

여러 글들이 보이지만

의심 가는 글이 제 눈에 딱 걸렸거든요.

안종선님의 <좋은 말 한마디> 코너!

당시 발행인 이름을 다 넣기 무안해서

아내분의 이름을 넣은 건 아닌지?

 

박원조 , 참여 의식이 작다고 느껴서

무엇이던 과제를 줘서 같이 동참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짧은 글을 받기도 엄마나 힘들었다고요,

안 써 주신 것입니다.

좋은 글을 추천하면...

... “당신이 다하시지 그래요하지요.

 

인미애 - <우리둥지>30년 변천사

티격태격 하면서 써온 흔적조차

행복하고 다복하게 느껴지는 가족신문이네요.

결국 가치를 공감하고 참여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둥지의 30년 변천사,

신문 자료 보면서 설명 해주실까요?

 

 

*답변 초반에 VCR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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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3> <우리둥지> 신문의 30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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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보면서 답변해주세요.

 

박제순 우선 외형적으로 보면...

초기부터 A3 세로에 양면 상철로 제작되었죠.

제가 시작한 게 69(98.10)부터였거든요.

용지는 동일하지만 가로 양면으로 바꿨었어요.

그런데, 항의를 많이 받았어요.

신문을 보관해오던 친척들이 갑자기 틀이 바뀌니까

보관하기가 어려웠나봐요.

결국 90호부터 다시 세로 형태로 왔습니다.

그때가 20025월이니까 4년만이네요.

(초창기 특징과 변화...)

수필이나 영화감상문 등이 등장했어요.

사촌들이나 지인들처럼 새로운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이었지.

창간호 50부부터 시작해서 아버지 대에 800부까지 도 발간..

최근 ---부 발간.

매월 발행과 격월 발행을 거쳐 지금은 격월 발행.

가족 뿐만 아니라 지인들에게도....발송

글이라는 게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형태와 방법에 따라 살아남기

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것 같아서요. 가족신문도 신문이라 읽히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해정 - 편집,발행인. 직업병도 상속되다.(김유진)

2대 발행인, 박제순씨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버지 못지않게

고집스럽게 지켜온 가치가 느껴집니다.

옆에서 아내분이 보실 때

편집장으로써의 직업병도 상당 하다면서요?

 

 

김유진 ^^..

모든 가족의 대소사 있을 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친지 결혼식이나 제사 등에

가족신문에 쓸 사진을 수집한다던지...

하는 직업병이 있다.

그리고 여행을 가는 기회가 있으면

그냥 기분전환하러 가는게 아니라

다녀온 후에 여행기를 강제로 쓰게 하기도 하고..

본인도 여행을 기사 작성하러 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꺼리를 찾으러 가는 듯한...

 

유장영 -최씨, 강씨 고집보다 더 한 박씨 고집(인쇄, 우편발송 고집)

그 정도면, 거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편집장이네요~

거기다가 이 디지털시대에

인쇄, 우편발송을 고집하신다는데

이유가 있나요?

 

박제순 초창기 인터넷 환경이던 때 무료신문제작 사이트가

있어서 가입하고 만들었었는데요.

두 달쯤 지나니까 온통 스팸글로 가득 차더라구요.

그렇게 홈페이지를 접고 메일을 생각해봤는데요.

저야 간편하지만 만약 제가 독자라면.. 안 읽을 것 같더라구요.

저도 매일 좋은 글을 보내주는 편지가 메일로 오거든요.

그런데, 안 봐져요.

나중에는 결국 수신거부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종이신문은... 저야 시간과 비용이 많이 투입되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독자층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결국, 읽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주시면 됩니다.

 

 

최해정 -우리둥지 신문에는 특별한 기자가 있다?(박제순)

장인 정신처럼 이어온 박씨 고집도 한몫 하지만요,

우리둥지 30년의 독특한 비결, 저는 이거라고 봅니다~

초창기 가족 기자로 출발한 <우리둥지>

요즘 능력 있는 외부 기자들까지 참여한다고 해요.

해외 특파원부터 자유기고가 까지...

어떻게 이런 능력자들을 모으신 건가요?

 

박제순 시간이 지속되는 일은

그 가치를 알고 공감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

아버지도 써주시고,

전주시청에 계시는 자유기고가 강병구님도

꾸준하게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계시죠

기타 순천숙부 21, 작은형 8, 안양숙부 8,

광양종조부 7, 기고해주신 분 27...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큰형이 미국, 중동, 중국 등 다양한 경험을 글로

풀어주고 있구요.(큰 형 소개해주시고)

 

김태은 그래서 지금요,

중국 광저우에 있는 해외특파원을

깜짝 연결했습니다.

박경순 해외특파원~~~!!(전화연결 후 질문까지)

*전화연결

※※※ 전화연결 ※※※※※※※※※※※※※※※※※※※※※※※※※※

 

(해외특파원 박경순-첫째 아들)

, 안녕하세요?

여기는 중국 남방의 중심도시이자

세계의 공장, 세계의 푸드코트라고 불리는 광저우입니다.

홍콩과 마카오, 심천을 동생으로 거느린, 서울보다 크고 화려한 대도시입니다.(서울 605 광저우 3,714)

삼월부터 시작된 기나긴 장마가 막 끝나고,

낮기온 30도 습도 90%가 넘는 매우 덥고 습한 날씨입니다.

 

Q. 어떻게 가족신문의 해외 특파원 역할을

지속하게 되신 건가요?

 

(해외특파원 박경순)

운이 좋게 여러 나라와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를 통해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Q. 가족신문이 자랑스러우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해외특파원 박경순)

살면서 가장 힘든게 운동이든 공부든 꾸준히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도 30년 지나면 70%가 못버티고 사라지는 현실에서, 제가 중학교 때 시작된 신문이 이제 제 아들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 까지 지속된다는 것에 당초 발간을 시작하신 아버지와 이를 계승한 동생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Q.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바램이 있다면?

(해외특파원 박경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구요.

사람들이 살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지만 항상 부족하게 느끼는 게 건강과 행복 아니겠습니까?

천하를 통일하고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도 불안하게 살다가 결국 50도 못 넘겼는데요.

바램이 있다면 모든 가족들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박경순 해외특파원도 건강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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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영 - 30년 가족신문의 비결, 애독자들의 반응(박원조, 김유진)

, 해외특파원으로 나가있는

첫째아들 박경순씨와 전화연결 해 봤습니다.

이렇게 능력있는 기자들의 활약도 있지만요.

30년 가족신문의 비결, 애독자들의

훈훈한 반응이라구요?

박원조 가족, 지인들의 반응

김유진 가족, 지인들의 반응, 선물 등 답변해주시고

 

인미애 - 우리둥지 인기스타

30년 변천사를 쭉 보면서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활자에

사진, 이미지가 더해진 게 아닐까 싶었어요.

최근엔 <우리둥지> 신문의 인기 스타도 생겼다고 해요.

<우리둥지> 애독자들을 사로잡은 인기스타

지금 함께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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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우리둥지 최고스타 승찬, 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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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보면서 답변해주세요.

 

박제순 아이들의 성장이야기를 보여주는

<삼돌이와 복동이의 성장이야기>

주인공 승찬 승우....

 

 

 

 

 

이덕춘 - 아들의 편집, 발행 성에 찬다 안찬다?(박원조)

30년의 변천사를 쭉 봤는데요.

1대 발행인의 눈에는

현재 아들이 편집, 발행하는 가족신문,

솔직히 성에 차시는지도 궁금한데요?

 

박원조 ~~... 안 찬다.

이유는 갑자기 편집 기준의 변화를 가져오니까

내 독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 애독자가 많았기에 한자 풀이와 문장 내용 중에

한글 위주로 급변화하니 어색했습니다.

하지마 지나고 보니 참 잘했다 !”

역시 시대의 변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토크 4. 기록보다 소중한 가족의 추억

 

유장영 - 막내아들, 총각으로 12년간 가족신문을 쓰다(박원조)

박제순씨는 가족신문을 물려받고

총각으로 12년간 가족신문을 썼다구요.

물려받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일찍 물려주신 이유가 있나요?

 

박원조 가족신문을 물려준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 제가 만들다 보니 저절로 책을 더 많이 봐질뿐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며, 기록하는 습관, 바른 행동의 자세로 변하고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대를 물러 주는 것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

 

 

 

김태은 - 이럴 때 포기하고 싶었다 (박제순)

아무리 좋은 뜻으로 물려주셨다지만,

갓 군대를 제대한 청년에게는

규칙적으로 신문을 낸다는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포기하고 싶었을 때, 있었죠?

 

박제순 98년부터 2011년까지

12년간 총각으로 가족신문을 만들었죠.

첨엔 아버지가 하시던 걸 대신한다는 생각이었고,

...(대답해주시고)

 

이덕춘 - 지성이면 감천, 총각 편집장, 장가도 특별하게(박제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박제순씨와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

총각시절 12년 동안에도 포기하지 않고 써온

가족신문, 그 총각 편집장의 결혼식도 특별했다고합니다.

조부모님 때부터 3대의 결혼식 장면들

사진 보시면서 이야기 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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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대의 결혼식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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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보면서 답변해주세요.

 

박제순 (사진보면서 조부모님, 부모님 사진 설명하고)

전통혼례는 저희 부부의 운명이 아니었나 싶어요.

상견례를 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예식장 예약이

어렵다는 걸 아시고, 남원 광한루원에서 하는

전통혼례 공연을 염두해 두셨었구요.

상견례당시 아버지의 제안에 제 처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운명이라고 느낀 점은 광한루원 안에 있는

월매집에서 전통혼례가 진행되는데,

그 자리가 어릴적 저희 가족이 살던 집터였거든요.

저도 초등학교 5학년까지 살았었으니까요.

거기에 결혼식을 올린 날이 5.21 부부의 날입니다.

여러모로... 이 결혼은 운명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최해정 - 결혼 전후, 이런게 달라졌다 (김유진)

남자친구 였을 때의 <가족신문>

남편이 되고 난 후의 <가족신문>

특히나 아이들이 생기면서

느낌도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

결혼 전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김유진 결혼 전, 남편이 가족신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신문이 인쇄되어 나오면 신문 접기, 봉투풀칠하기,

라벨지 붙이기 등 마무리 작업을 같이 했다.

주변에서 신문을 받아보는 분들이 우표 후원을

하기도 한다기에 우표를 후원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일 끝나고 집에 오면

10시정도 되는데, 피곤해서 씻고 자려고 하면

꼭 신문 마무리 작업을 같이 하려고 해서

많이 투덜댔다.

솔직히 결혼 전보다 많이 못 도와주는 것 같다.

 

인미애 - 아내들, 이런 코너 써보고 싶다.(김유진)

남편들이 앞장서서 가족신문을 만들었지만

우리둥지의 감수위원이신

아내 분들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할 것 같아요.

바꾸고 싶은 점이나 써보고 싶은 코너가 있다면?

 

김유진 지금 가족신문은 어른들이 보기 익숙한 탓에

남편이 구성이나 디자인을 바꾸기를 싫어한다.

편집도 한글로 작업하다 보니 세련되거나

글이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우리둥지 로고 디자인도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해 간신히 리뉴얼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니

현재 운영되고 있는 아이들 성장일기 코너는

내가 맡아보고 싶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처럼

재밌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장영 - 복을 가져다 준 가족신문

30년의 기록, 가족이 보이고 역사가 보이는데..

이 가족신문을 내면서

좋은 일도 많았다고 하죠.

1대 발행인 시절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박원조 가족신문 덕에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주위 분들에게 괜찮은 젊은이로 ...

도의원에 출마하게 될 때는 일가친척 뿐 아니라

독자들의 엄청난 성원 덕에 무투표 당선이 되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김태은 - 30년 기록, 업이 되다(박제순)

2대 발행인인 박제순 씨는

가족신문이 직업, 진로결정에도 영향을 주었다구요?

 

박제순 대학때 전공이 식품공학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문과체질인데 취업을 위해 간거죠.

결국 전공은 살리지 못했구요.

도청 기록관리팀에서 근무하던 중에

국가기록원에서 지도점검을 나온적이 있었어요.

그때 사무관님이 가족신문 만드는 걸 보고

기록관리학이라는 대학원 과정을 얘기해주셨죠.

기록을 관리하는 법도 있고

대학원 학과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우리둥지가 공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사기록으로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기록관리가 제가 가야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최해정 - 나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박제순씨는 군 제대 하자마자

가족신문을 물려받았는데요,

앞으로 두 아들에게 물려주는 상상도 자주 하신다구요,

언제쯤이 적기라고 생각하세요?

 

박제순 만약, 제 아이들이 물려받는다면

아이들이 중학생쯤이 되었을때가 어떨까 싶어요^^

신문 발행은 무언의 약속이거든요.

책임감도 배울 수 있고 발행인의 생각과 관점을

전달하는 것이다 보니

아이들이 큰 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크 5. 앞으로의 계획 및 마무리 (우리둥지의 꿈)

 

유장영 - 우리둥지 발행인의 꿈(박제순)

지금까지 가족신문 <우리둥지>가 이어온

30년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미래 30년 후의 우리둥지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현재 편집장이자 발행인으로서 꿈이 있다면?

박제순 우리둥지의 미래는

누가 발행인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앞으로 30년 후에도 제가 하고 있다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신문으로

유지하고 싶습니다.

, 우리둥지의 꿈이라고 하면

우리둥지를 받아보는 독자들이 직접 가족신문을

만들어 서로 교류하는 것입니다.

가족신문은 가족끼리의 소통도 가능하지만,

가족과 가족간의 소통에도 분명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개인들의 기록이 사회의 기록이 되고

시대를 기록한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태은 - 가족들의 바람(박원조, 안종선, 김유진)

1대 발행인 박원조씨를 비롯해

가족들도 <우리둥지>를 향한

각자의 소망이 있으실 것 같아요.

한분씩 이야기 해주시죠.

 

박원조 우리 아들 제순이가 대를 물려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기록이 임금이나 특수층이 하는 일만이

기록에 많이 남았고 개인의 기록은 아주 적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민간 기록물로 오랜 기간 남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나의 가승보(가정에 역사)처럼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가훈처럼 참되게 살자는 목표 아래

꿋꿋하고 지속적으로 후손들까지 발행되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안종선 2년 전에 우리둥지가 남원시 타임캡슐로

저장이 되었습니다.

후손에 부끄럽지 않도록 화목한 가정의

정직한 기록이 잘 이어나가길 바라며.

지금까지도 잘 이어 왔듯이 사랑하는 아들 내외가

후손까지 이어지는 노력을 하기를 바람니다.

 

김유진 앞으로도 우리 가족의 소식을 재미있게 전달하고,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인생에

우리 남편처럼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장영 , 오늘은

30년간 가족신문 <우리둥지>를 펴낸

발행인 가족과 함께했는데요.

가족의 의미와 가족간의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김태은 , 1대 발행인의 꿈처럼요.

지나온 30년을 발판으로

앞으로 30, 나아가 300년까지.

가장 오랜 역사의 민간 기록물로 자리하길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연자 인사하고.

클로징 멘트

 

유장영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임금이든 백성이든 자신의 가정에서

평화를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겠죠?

 

김태은 맞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너무나 가까워서

소홀해지기가 쉬운데요,

사랑은 표현할 때 더욱 빛나는 거 아시죠?

사랑과 감사의 마음 꼭 표현하세요~

 

유장영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장 먼 존재가 되는 것 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으니까요,

있을 때! 잘합시다~!

김태은 , 있을 때 잘 하겠습니다~^^

우리 주위에 외로운 분들도 많으신데요.

이런 분들께 우리가 이웃의 정을 나눈다면

더욱 빛나는 5월이 되겠죠?

행복을 나누는 주말 보내시고요.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