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사지 석불입상(보물 제43호) 전북 남원시 왕정동
이 불상은 얼굴, 몸, 옷무늬 등에서 원만하고 부드러운 작풍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타원형의 양감있는 얼굴, 바로 뜬 눈, 원만한 코, 알맞게 묘사된 입과 함께 특히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곡선, 몸의 굴곡있는 표현, 유창하게 구사한 의문선 등이 자연스러운 작풍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도나 의문의 형식적인 묘사, 당당하지도 않고 고졸하지도 않은 어색하고 위축된 형태 등은 고려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만복사는 고려 문종(1046∼1083, 재위)때 창건된 사찰로서, 이 불상의 양식으로 미루어 만복사 창건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복사지 오층석탑(보물 제20호)
고려시대에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만복사의 옛터에 서 있는 탑이다. 원래 이곳에는 절터 중앙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79년부터 1985년까지 7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많은 건물지와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재 탑은 4층까지만 남아있고, 5층 이상은 모두 없어졌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기단부는 땅에 파묻혀 있는데, 이는 훗날 이 지역의 땅바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대단히 높고 2층 이상은 약 3분의 1로 크기가 줄어 들었다.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고, 지붕돌은 밑면 전체가 위로 들려 있어, 마치 목조건축의 지붕을 보고 있는 듯하다. 특이한 점은 각 지붕돌 위에 몸돌을 괴기 위한 별도의 네모난 돌이 끼워져 있는 것으로, 당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 탑은 고려 문종 때인 11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1968년 이 탑을 보수하다가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만덕사지 석좌(보물 제31호)
하대는 각 측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꽃을 장식했으며, 윗면에는 연꽃모양을 조각하였다. 중대는 낮으며, 짧은 기둥을 본떠 새겼다. 상대는 중대보다 넓어지고, 평평한 윗면 중앙에 불상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진 구멍이 뚫려 있다. 옆면에 연꽃이 새겨졌던 부분은 주변 전체가 파손되었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에서 벗어난 6각형이며, 안상 안에 꽃을 장식한 것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양식으로, 1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만복사지 당간지주(보물 제32호)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고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만복사터에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지주사이에 세웠던 깃대는 남아있지 않고 이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세 군데에 뚫려 있다. 현재 아래부분과 기단이 땅속에 파묻혀 있어 그 이하의 구조는 알 수 없다.
당간지주 각 면이 고르지 못하여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별다른 장식이 없으며, 전체적으로 생략화·단순화된 것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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