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야기♧

[스크랩] 나에 백두산 등반(白頭山 登攀)----( 3)

우리둥지 2006. 4. 21. 08:19

 

 

 

(금강대협곡 앞에서.., 우리 일행의 등산코스 지도, 꽃핀 천지모습.)

 

백두산 천지(天池)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갔지만 ,못 보고 돌아간 사람이

천지여서 천지라고, 가이드가 우스개 말은 하며 웃겠다.우리일행은 그 곳에서 부터 철벽봉과 천지와 장백폭포를  향하여 오르고, 내리기를 하면서 우리일행  22명은 땀흘리는 하산(下山)이 시작 되었다.

 

흙은 검은 화산가루 흙 외엔 이끼도 자라지 않는 고지대 이다. 고지대 이니 산소 부족으로 숨이 차 오르는 것은  당연 하다.   20여분 내려오니 고맙게도 구름이 걷히며, 위대한 천지와 주변을 모두보여준다.

 

햇살이 돋자, 우리 일행은 똑같이 "와~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사진촬영에 열을 올렸다.  잔잔한 푸른물결, 한쪽엔 얼음 덩어리가 몇 개 떠있고,

희끗 희끗 녹지 않는 3~5m 높이의 잔설들 과 함께 영롱함을 보여준다.

 

"하느님  ! 감사 합니다. 나는 성호를 그었다.

또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면서 마음 속 으로 기도를 하였다.

 

천지의 길이는 동서가 3.51km, 남북은 4.5km이며, 평균 물의 깊이는

200m이고,수면 해발 고도는 2200m로 전세계 호수중 가장 높은 자리

에 있으며,총저수량은 1955억 입방메터다. 지하수가 62%이며 나머지는

빗물 등 산에서 내려온 물 이다.

 

경사가 심한곳을 내려 올때는, 흙이 미끌어 질때도 큰 소리는 지르지 못하게 몇차례 교육을 받고, 한 사람씩 많은 거리를 두고 조심 스럽게 천지 까지 그렇게 내려 와야만 했다. 큰소리에 산이 울려서 돌이 굴러 떨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에 도착 하니, 한복 차림의 조선족들이 천여명 장백 폭포쪽에서 올라와 있었다.천지 주위에는 기념사진 촬영, 스켓치 하는사람, 춤추는 사람,

음식 먹는사람, 편히 쉬는 연인등 제 각각이다. 70년대 우리생활상?

 

우리 일행도  단체사진 을 찍는등 한시간 정도 쉬고는 또 하산을 시작

하였다. 시면트로 근래 만들어진 가파른터널을 빠른 걸음으로 30~50분

내려오니 장백폭포와 마주치게 되었다.

 

웅장한 장백폭포  얼음같은 찬물에  손,발 을 씻고, 세수도 하며,웅장함을 감상 하였다.겨을철 에도 얼지 않고 쏟아 내린다. 해발 1,756m인 온천(溫泉)까지내려가니 82도C 수온이다. 약 30군데서 유황온천 물이솟아오른

 다.  온천물에 삶은 갈걀을 먹으니 왜 그리 짠맛인지 ........?

 

백두산은 지진시대에 여러 차례 화산 폭발로 지금도 화산폭발 후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산 봉우리를 쳐다 보니,여름철 인데도 희끗희끗 골짜기 마다 눈이 녹지 않고 있어서...."백두(白頭)"라는 말이

실감 난다.

 

약 6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숲 이 보이는데,

하얀색갈의 "미인송(美人松)"이다. 장백산 주위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영산이요,우리나라제일 높은산 과 제일 긴 강을 만드는

근원지이며,전설의 우리민족이 탄생된 『 백두산 』 등반을 마쳤다.

 

백두산은 압록강,두만강, 송화강의 삼대수계(三代水界)의 발원지인

천지와 대자연의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푸른호수, 그리고 용솟음치는 샘과 온천, 내려 쏟는 큰 폭포, 울울 창창한 원시림,대자연의 꽃밭,수 많은 짐승과 동식물등 너무나 많은 것을 내포한 보물 창고를 직접 접했다.

 

연변에서 제일 큰 연길시의 변화를 보면서, 백산호텔에 짐을 풀었다.

우리나라에는 "민들레"라는태풍이 온다고 하였으나 우리일행은 모두

내고향 춘향골까지 아무궂을일 없이 즐거운 여행을 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두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2006년 4월 20일      우리둥지 발행인  박   원   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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