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야기♧

[스크랩] 최초 여성총리 청문회.

우리둥지 2006. 4. 18. 22:45

진평(陳平)은 유방의 한(漢)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있어 장량, 한신, 소하 등 한초삼걸(漢初三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발, 영포, 팽월, 번쾌 등과 함께 크게 공을 세운 인물이다.

 

 오히려  공신들이 숙청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는 처세를 보였고, ‘여씨(呂氏)의 난’ 때 주발과 더불어 이를 평정해 문제(文帝)를 옹립할 정도로 지략과 판단력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문제는 재위 23년간 스스로 검약을 실천해 뒤를 이어, 경제와 더불어 문경지치(文景之治)로 대표되는

처세를 선보인 황제였다.

 

황제에 오른 문제는 최고 공로자였던 주발(周勃)을 우승상에, 진평을 좌승상에 임명했다.

 하지만 주발의 사직 이후 진평은 혼자 승상을 맡아 명재상으로서 명성을 떨친다.

한나라의 통일 뿐 아니라,  기틀을 다진 명재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 공로자였던 주발은 왜 사직했던 것일까.

얽힌 얘기가 있다.

 하루는 문제가 우승상 주발에게 1년간 재상의 손을 거쳐야하는 사안에 대해 질문한다.

 

주발은 “송구하지만 잘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작심한 듯 문제는 전국의 옥사판결건수와 1년간 전국의 재정 수입과 지출에 대해 다시 물었다.

 

주발은 세부내용에 여전히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땀만 비 오듯이 흘리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문제의 화살이 다시 좌승상 진평에게 향했다.    

 하지만 진평은 주발과는 달랐다.

 

 진평은 전혀 머뭇거림 없이 “옥사의 판결은 정위(廷尉 사법대신)에게 물어보시라."

 “재정은 치속내사(治粟內史 재정대신)에게 확인하면 된다”며 태연하게 답변한다. 

 

  한마디로 이런 사소한 문제는 재상이 아니라 업무책임자에게 질문하라는 것이었다.                             발끈한 문제가 “그러면 승상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책성 질문을 던진다.

 

진평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상이란 위로 천자를 보좌해 음양을 다스려 사시(四時)를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 만물이 제때에 성장하도록 하며,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압하고,

안으로 백성들을 친밀하게 복종하도록 하며 관원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라며 답했다. 

 

 그제야 문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진평의 답변에 흡족해했으며 자신의 능력이 진평에 미치지 못함을 깨달은 우승상 주발은 얼마 후 칭병(稱病)한 뒤 사임했다.

 

국회는 전날에 이어 18일에도 한 총리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했고,

 5·31지방선거를 앞둔 여야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사건,

 한나라당의 공천비리, 여당의 ‘폭로정치’에 이어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일견 정치판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날 진평과 주발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내정자는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일부 구체적인 통계수치 등을 인용하며 보좌진의 도움을 받았다. 당연하다.

 

질문이 사전에 제공되지 않은 마당에 총리내정자가 모든 구체적인 내용까지 일일이 숙지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은 한 내정자의 이런 모습에 “자질 부족으로 보인다”며 자질부족을 거론했다.

 색깔론과 더불어 총리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언론이 예상한 한나라당의 ‘카드’였다.

 

이를 지켜보던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차라리 밀실독방에 가둬놓고 시험 쳐서 1등은 대통령, 2등은 국무총리를 하라고 하지 그러느냐”고 비꼬았다.


문제와 진평, 그리고 주발의 일화는 꽤 유명한 이야기다.

 최고 지도자의 업무수행은 남달라야 한다.

 

이 일화는 지도자가 모든 일을 직접 실행하거나 사소한 일까지 꼼꼼하게 챙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하군은 자신의 능을 다하고 중군은 남의 역을 다하며 상군은 남의 능을 다한다.

(下君盡己能 中君盡己力 上君盡人能)”는 한비자의 지도자론과도 궤를 같이 한다.

 

.이날 최 의원은 “국무총리는 여러 부처와 사람들과 협력하며,  정부의 큰 시스템을 지휘하는 사람으로 미세한 수치까지 반드시 다 알아야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저의 리더는 자신의 능력만을 쓰는 데 주력하고, 중간의 리더는 남의 힘을 쓰는 데 애를 쓰며, 최고의 리더는 남의 능력을 얻는데 주력한다’는 지도자론에 대비해 볼 때 타당한 발언이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가 구체적인 수치를 줄줄 암기한 뒤 용을 써가며 혼자 일을 처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하군(下君)이어야 할까.

 

 아니면 부하직원의 힘을 이용하는 중군(中君)이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부하직원들의 마음을 얻은 뒤 이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상군(上君)이어야 할까?

 

 적어도 한 나라의 국회의원 쯤 되면 이 정도 평범한 진리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답을 모르겠다면 계속 총리에게 구체적인 수치를 묻고 자질부족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꽃대궐의 새봄 입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글쓴이 : 우리둥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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