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춘향전의 시대적배경과 사건 저자와 시 대상읽을수있는구절과 춘향의 사상???을 좀알려주세여,
숙종대(1674∼1720) 이후의 고전소설. 원작자는 미상이나, 이본의 작가는 다수 있다. 이본이 100여종이 있고, 제목도 ‘춘향전’, ‘열녀춘향수절가’, ‘남원고사’등 다양하기 때문에, 단일 작품이 아닌 ‘춘향전군(春香傳群)’이라 일컫는다. 판소리 <춘향가>를 토대로 한 소설이기에 판소리계 소설이라 한다. 표기는 한글로 된 것과 한문으로 된 것이 있다. 또 춘향전의 줄거리를 토대로 하여 창극 · 연극 · 영화 · 뮤지컬 · 오페라 등으로 공연물화되면서 가장 인기있는 고전물로 정착되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신임으로 온 변부사가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자, 춘향은 일부종사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한편,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남원에 돌아와 탐관오리인 변부사를 봉고파직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아 백년해로 한다. 이같은 내용은 이본에 따라서 춘향의 성과 신분이 달리 설정되거나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이 갖는 성격에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춘향전은 설화를 소재로 하여 먼저 판소리로 성립되었기에, 근원설화(根源說話)에 대한 탐색이 여러모로 이루어졌다. 그 내용은 첫째 신원설화(伸寃說話)로, 남원에 춘향이라는 기생이 한 도령을 사모하다가 죽어 원귀가 되어 재앙을 가져오므로 액풀이하는 제의설(祭儀說)에 근원을 두고 양진사(梁進士)가 제문으로 창작하였다는 설, 둘째 암행어사설화(暗行御史說話)로 성이성(成以性) · 김우항(金宇杭) · 박문수(朴文秀) 등의 암행어사 출두의 설화 유래설, 셋째 야담에 보이는 도령과 기생과의 애정설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설 등이 있다. 19세기 이전의 광대들이 부른 판소리 춘향가의 창본은 백성환 · 장자백 · 신재효의 3종만 남아 있다.
현재 전하는 춘향전 이본의 계통은 <별춘향전>, <남원고사>, <옥중화> 계열로 구분된다. 별춘향전계에는 대부분의 필사본과 완판 30장본 <별춘향전>, 완판 33장본,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여기에 속한다. 남원고사계에는 필사본 3종과 경판 35장본, 30장본, 16장본 등이 있다. 옥중화계는 이해조가 신소설로 개작한 옥중화를 비롯한 개화기 작품들이 다수 있으나 대부분 서두 부분만 개작되었다. 한문본으로는 1754년(영조 30년)에 쓴 유진한(柳振漢)의 한시 <춘향가>를 비롯하여 <이익부전>, <광한루악부>, <광한루기> 등이 있다. 외국어 번역본으로는 일본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중국어, 독일어본 등이 있다. 이들 이본 중 가장 특이한 것이 유진한의 <춘향가>이며, 이의 정착이 1754년이므로 가장 오래된 것인 동시에 <춘향전>의 판소리 생성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춘향전>은 숙종말이나 영조초에 광대의 판소리에서 비롯된 이후, 판소리뿐만 아니라 소설 · 희곡 · 오페라 ·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양식을 통하여 현대적 변모를 계속하며 성장하는 고전이다. 민족고전의 대표격인 <춘향전>에 대한 연구는 1920년대의 단편적 비평에서부터 1980년대 이후의 본격 연구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연구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연구는 소설 <춘향전> 연구가 주대상이 되어 장르론적 측면, 작품론적 측면과 소설사적인 측면이 주로 검토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연구업적은 조윤제(趙潤濟)의 《교주춘향전 校註春香傳》이 박문서관에서 나오면서 본격화되었고, 이때부터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연구의 주요대본으로 선택되기 시작하였다. 또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학술논문과 함께 김동욱(金東旭)의 《춘향전연구 春香傳硏究》와 같은 통합론적 업적이 단행본으로 출판됨으로써 연구의 심화(深化)를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전시대에 주요 관심사였던 발생론에 대한 관심을 극복하면서, 서사구조나 문체에 대한 연구들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구조주의 방법과 역사주의 방법 등 새로운 비평방법에 근거한 업적들과 함께 <춘향전> 주제론이 연구의 중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남원고사>라는 새 이본이 발견됨으로써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로만 쏠리던 관심이 보다 다양한 대본을 통한 연구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 결과 김동욱 등이 내놓은 <춘향전 비교연구>는 이본의 체계적 비교를 통하여 <춘향전>을 기생계(妓生系)춘향전과 비기생계(非妓生系)춘향전으로 구분하고, <남원고사>는 전자에 속하고 <열녀춘향수절가>는 후자에 속함을 밝혀, <춘향전>의 문학본질 탐색을 위한 새 바탕을 마련하였다.
<춘향전>의 작품세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결국 ‘춘향전군’이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이본을 바탕으로 한 거시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와 아울러 <춘향전>의 현대적 변모에서 보여준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한 여러 형상물을 심층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춘향전>이 민족적 공감을 얻는 이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19세기까지의 <춘향전>만을 다루던 전통적 접근방법을 극복하고, 20세기의 <춘향전>까지 포함하는 탈시대적 연구의 길이 열리게 되리라 본다. 유동적인 <춘향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고전 <춘향전>과 현대 <춘향전>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참모습과 객관화가 가능하게 되고, 또 이것이 <춘향전>의 고전으로서의 생명과 그 본질을 찾는 첩경이 되어 <춘향전>의 예술적 가치가 총체적 구조로 밝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춘향전>은 그 공간 배경이 남원이기 때문에 남원지역에서는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을 통하여 실존하였던 것으로 믿고 있는 춘향의 높은 정절을 기리며 그 넋을 추모한다. 춘향의 생일로 믿는 음력 4월 8일에는 광한루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춘향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신임으로 온 변부사가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자, 춘향은 일부종사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한편,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남원에 돌아와 탐관오리인 변부사를 봉고파직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아 백년해로 한다. 이같은 내용은 이본에 따라서 춘향의 성과 신분이 달리 설정되거나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이 갖는 성격에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춘향전은 설화를 소재로 하여 먼저 판소리로 성립되었기에, 근원설화(根源說話)에 대한 탐색이 여러모로 이루어졌다. 그 내용은 첫째 신원설화(伸寃說話)로, 남원에 춘향이라는 기생이 한 도령을 사모하다가 죽어 원귀가 되어 재앙을 가져오므로 액풀이하는 제의설(祭儀說)에 근원을 두고 양진사(梁進士)가 제문으로 창작하였다는 설, 둘째 암행어사설화(暗行御史說話)로 성이성(成以性) · 김우항(金宇杭) · 박문수(朴文秀) 등의 암행어사 출두의 설화 유래설, 셋째 야담에 보이는 도령과 기생과의 애정설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설 등이 있다. 19세기 이전의 광대들이 부른 판소리 춘향가의 창본은 백성환 · 장자백 · 신재효의 3종만 남아 있다.
현재 전하는 춘향전 이본의 계통은 <별춘향전>, <남원고사>, <옥중화> 계열로 구분된다. 별춘향전계에는 대부분의 필사본과 완판 30장본 <별춘향전>, 완판 33장본,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여기에 속한다. 남원고사계에는 필사본 3종과 경판 35장본, 30장본, 16장본 등이 있다. 옥중화계는 이해조가 신소설로 개작한 옥중화를 비롯한 개화기 작품들이 다수 있으나 대부분 서두 부분만 개작되었다. 한문본으로는 1754년(영조 30년)에 쓴 유진한(柳振漢)의 한시 <춘향가>를 비롯하여 <이익부전>, <광한루악부>, <광한루기> 등이 있다. 외국어 번역본으로는 일본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중국어, 독일어본 등이 있다. 이들 이본 중 가장 특이한 것이 유진한의 <춘향가>이며, 이의 정착이 1754년이므로 가장 오래된 것인 동시에 <춘향전>의 판소리 생성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춘향전>은 숙종말이나 영조초에 광대의 판소리에서 비롯된 이후, 판소리뿐만 아니라 소설 · 희곡 · 오페라 ·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양식을 통하여 현대적 변모를 계속하며 성장하는 고전이다. 민족고전의 대표격인 <춘향전>에 대한 연구는 1920년대의 단편적 비평에서부터 1980년대 이후의 본격 연구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연구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연구는 소설 <춘향전> 연구가 주대상이 되어 장르론적 측면, 작품론적 측면과 소설사적인 측면이 주로 검토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연구업적은 조윤제(趙潤濟)의 《교주춘향전 校註春香傳》이 박문서관에서 나오면서 본격화되었고, 이때부터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연구의 주요대본으로 선택되기 시작하였다. 또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학술논문과 함께 김동욱(金東旭)의 《춘향전연구 春香傳硏究》와 같은 통합론적 업적이 단행본으로 출판됨으로써 연구의 심화(深化)를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전시대에 주요 관심사였던 발생론에 대한 관심을 극복하면서, 서사구조나 문체에 대한 연구들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구조주의 방법과 역사주의 방법 등 새로운 비평방법에 근거한 업적들과 함께 <춘향전> 주제론이 연구의 중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남원고사>라는 새 이본이 발견됨으로써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로만 쏠리던 관심이 보다 다양한 대본을 통한 연구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 결과 김동욱 등이 내놓은 <춘향전 비교연구>는 이본의 체계적 비교를 통하여 <춘향전>을 기생계(妓生系)춘향전과 비기생계(非妓生系)춘향전으로 구분하고, <남원고사>는 전자에 속하고 <열녀춘향수절가>는 후자에 속함을 밝혀, <춘향전>의 문학본질 탐색을 위한 새 바탕을 마련하였다.
<춘향전>의 작품세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결국 ‘춘향전군’이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이본을 바탕으로 한 거시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와 아울러 <춘향전>의 현대적 변모에서 보여준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한 여러 형상물을 심층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춘향전>이 민족적 공감을 얻는 이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19세기까지의 <춘향전>만을 다루던 전통적 접근방법을 극복하고, 20세기의 <춘향전>까지 포함하는 탈시대적 연구의 길이 열리게 되리라 본다. 유동적인 <춘향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고전 <춘향전>과 현대 <춘향전>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참모습과 객관화가 가능하게 되고, 또 이것이 <춘향전>의 고전으로서의 생명과 그 본질을 찾는 첩경이 되어 <춘향전>의 예술적 가치가 총체적 구조로 밝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춘향전>은 그 공간 배경이 남원이기 때문에 남원지역에서는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을 통하여 실존하였던 것으로 믿고 있는 춘향의 높은 정절을 기리며 그 넋을 추모한다. 춘향의 생일로 믿는 음력 4월 8일에는 광한루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춘향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지리산사랑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지리산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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