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을 찾아 세계 여행을 떠나다 |
노 관 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 |
춘향전은 우리나라 고전문학이다. 그런데 그 고전문학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춘향전을 춘향의 사랑 이야기로 읽는 사람도 있다. 춘향전을 춘향의 투쟁 이야기로 읽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시대의 마음으로 춘향전을 읽는 것은 어떨까? 가령 관아를 부수고 사또를 축출한 민란의 시대에 춘향전의 의미는 시골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조선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개항의 시대에 춘향전의 의미는 외국인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개항기에 춘향전은 세계 각지에 퍼져나갔다. 춘향전 연구자들의 안내를 받아 오늘 춘향을 찾으러 세계 여행을 떠난다. 평민 춘향이 여장한 이 도령에 호감을 갖다 일본 오사카. 그곳에 가서 1882년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가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계림정화 춘향전(鷄林情話 春香傳)’을 찾는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대마도에서 태어나 조선의 부산 왜관에 건너가 한국어를 배웠으며 조선이 개항한 후 주로 일본 신문사의 통신원으로 조선에 체류하면서 신문 기사를 기고했다. 그가 춘향전 앞에 ‘계림정화’라는 말을 붙였는데, ‘계림’이란 일본에서 조선을 부르던 고전적인 이름이고 ‘정화’란 사랑 이야기라는 뜻으로 당시 일본에서는 서양의 연애물이 유행이었다. 그는 조선과 통상무역이 활발해지는 이 시기에 조선의 풍토와 인정을 잘 알 수 있는 책자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춘향전이 여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연재 취지를 밝혔다. 그는 춘향전을 일본풍으로 각색했는데, 이를테면 춘향이 음력 5월 5일 단오 그네 뛰는 장면이 음력 3월 3일 삼짇날 곡수(曲水) 놀이하는 장면으로 바뀐 것은 일본에서는 단옷날이 남자의 명절이고 삼짇날이 여자의 명절이라서 그런 것 같다. 1910년대, 자유는 가고 옥중만 남다 이 도령이 여장을 하고 춘향을 만나 춘향의 호감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이 도령이 정체를 드러내 둘 사이에 사랑의 맹세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프랑스어판 춘향전의 커다란 특징이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가 1910년 베트남에서 티쏘가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편찬한 베트남어 교재에 수록된 ‘춘향낭자(Nang Xuan Houng)’에서도 보인다. 프랑스어판 춘향전이 베트남어판 춘향전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현상으로 해석된다. 또, 모나코에 있었던 몬테카를로 러시아발레단은 1936년 ‘사랑의 시련’을 공연하여 상당한 인기를 얻었는데, 이 발레 작품의 부제가 ‘충양과 욕심에 찬 관리(Chung-Yang et le Mandarin Cupide)’인 것에서 보듯 춘향전, 아마도 프랑스어판 춘향전을 바탕으로 했을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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