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母情 / 왕사강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는 날은
엄마의 찌부러진 머리는 더 넓어지고 커져야 한다
아이들 머리에 내리는 눈이 걱정이니까
겨울이 오고 얼음이 어는 날에는
엄마의 돌덩이로 굳은 가슴은 더 넓어지고 뜨거워져야 한다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물에서 놀아야 하니까
엄마의 따뜻한 입김 서린
아이들 노는 겨울 호수에는 아직은,
물이 얼지 않았네
* 겨울 호수에 갔었지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다정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강가에서 물장구 치고 놀던 생각이 떠오르고,
한창 붉어지기 시작하던 고추밭에서 "물조심 허거라" 외치시던 어머니 모습도 떠오르더군요.
돌아와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 <해산 바가지>를 읽으며
고국에서 가신지 벌써 10년이 넘은 어머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불효를 탓해 봅니다만....
박완서 선생의 "해산(解産) 바가지"
- 문학평론가이신 강인숙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해산 바가지 이야기'-
해산 바가지는 농경시대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맞아들이기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정갈하고 성스러운 그릇이다. 그래서 해산 바가지에는 생명을 맞아들이는 경건한 자세가 함축되어 있다.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 '해산 바가지'에는 인간의 탄생을 신탁처럼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한 여인이 나온다.
- 내가 첫애를 뱃을 때 시어머님은 해산달을 짚어보고 섣달이고나, 좋을 때다.
곧 해가 길어지면서 기저기가 잘 마를테니, 하시더니 그해 가을부터 일부러
사람을 시켜 시골에 가서 해산 바가지를 구해오게 했다.
"잘 생기고, 여물게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야야 하네.
첫 손자 첫국밥 지을 미역 빨고 쌀 씻을 소중한 바가지니까."
이러면서 후한 값까지 미리 쳐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의 그분은 너무 경건해 보여 나도 덩달아서
아기를 가졌다는 데 대한 경건한 기쁨을 느꼈었다.
박완서 선생은 외아들에게 시집가서 연거푸 딸을 넷이나 낳고 나서 아들을 낳았지만, 선생의 시어머니는
태어나는 아이마다 해산 바가지를 성심껏 장만하여 받아들였고, 한결 같이 귀한 손님 모시듯 아끼고 사랑하며
기르셨다 한다. 생명을 대접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일흔다섯 되시던 해에 고혈압으로 쓰러져 정신이 망가져버린 것이다. 치매 시어머니와의 오랜 동거에 시달린 며느리는
노이로제에 걸려 신경안정제를 장복하다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다. 시어머니의 친정 식구들이 나서서
양로원과 정신과 치료를 겸하는 수용기관을 찾아가 의탁시키라고 한다.
이 소설의 종결부는 남편이 수소문해서 알아본 노인 수용기관을 부부가 함께 답사하러 가는 데서 시작된다.
그 내외는 덥지도 않은데 공연히 진땀을 뻘뻘 흘리며 시골길을 걸어간다. 그러다가 갈증이 나서 구멍가게의
좌판에 주저앉는다. 거기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며느리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초가지붕 위에
'방금 떠오른 보름달처럼 풍만하고 잘생긴 박이 서더 덩이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보, 저 박 좀 봐요. 해산 바가지 했으면 좋겠네."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며느리는
"실로 오래간만에 기쁨과 평화와 삶에 대한 믿음이 샘물처럼 괴여오는 걸" 느꼈다.
해산 바가지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것은 잊고 있던 시어머니의 경건한 생명관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생명을 보내드릴 때의 올바른 법도도 깨우쳐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새 생명을 맞아들이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던 육체는
"비록 지금은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 사이비 기도원 같은 곳에 맡겨 낯선 사람에게
수모와 학대를 당하게 할 수는 없다." 는 각오가 선 것이다. 그대신에
자신도 간호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한다. 말을 안 들으면 야단도 치고, 씻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볼기도 이따금 때리면서, 며느리의 도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린다. 그리고 3년간 더
시어머니를 집에서 모신 뒤, 자식들 옆에서 평화로운 얼굴로 임종을 맞게 한다.
초가지붕에 탐스럽게 열려 있는 박을 보는 순간, 작중의 며느리가 망령난 시어머니를 남의 손에 맡기려던 마음을
접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전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그렇게 엄숙하게 받아들이던 시어머니를,
정신이 망가졌다는 이유로 남의 손에 던져버릴 수는 없다는 결론은 '해산 바가지'의 이미지에서 얻어진 것이다.
<해산 바가지>라는 소설은 우리가 생명을 맞아들이는 자세와, 생명을 보내드리는 온당한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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