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왜 방송은 국회 미디어법 통과 분란을 적나라하게 생중계했나? 직권상정을 했으면 매끄럽게 끝내든지, 왜 대리투표 파문과 불법 재투표라는 비난을 자초하는가? 엉뚱하게 대한민국의 정치 본질을 고스란히 비춰 준 방송에게 사회적 분노를 돌리고 싶다.
7월 22일 하늘은 61년 만에 금세기 최대 우주쇼를 연출했다. 개기일식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같은 날, 제헌 61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장관이 펼쳐졌다. 어떤 법 하나가 세계가 웃지 않을 수 없는 정치쇼를 거듭하며 개기일식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통과되었다.
흡사 전쟁의 영상 같은 암울한 먹구름이 국민의 시선 밖으로 지나갔다. 방송법 등 미디어관련 3법이 드디어 본회의를 자랑스럽게(?) 통과된 것이다. 청와대는 미디어관련법 직권상정 처리가 불가피했다고 거들었다. 국민이 이해하고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고 자찬했다.
그런데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씁쓰레한 느낌이 남는 것은 또 뭔가? 악법 날치기 통과, 원천무효, 여야 난투극, 국회 폭력 부상자 속출, 재벌 특혜 시비, 의원직 사퇴 결행 등 독재 후진국의 구호들과 이미지들이 민생에 찌든 국민들 뇌리를 쥐어짰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결국 2009년 한국의 미디어법은 국민적 여론과는 달리 위대한(?) 투쟁의 상흔을 남기며, 상당히 많은 국민적 의구심과 국정통치의 난맥상, 그리고 잘못된 정치의 본보기를 남겼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씁쓰레한 느낌이 남는 것
법은 과연 무엇인가? 정부 여당은 국정통치와 정치의 본질을 한번이라도 생각하면서 직권상정을 했을까? 심각한 표정의 이윤성 국회 부의장은 본회의 직권상정을 심각한 상태에서 감행했다.
그리고 신문법,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관련 3개 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4개 법안을 단숨에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이 원했기에 국민을 위하는 방향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반대한 민주당은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국정파탄 행위이기 때문에 국민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대 여당다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궁금하다. 여야는 당일 저녁도 지난 본회의장 점거시의 통닭 파티와 같이 밥을 같이 먹으며 정치단합을 또 과시했을까?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결사반대'의 플래카드를 들고 당상 앞에 늘어 선 민주당 의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왠지 서글퍼 보이는 대신, 오히려 직권상정 통과를 빨리 부추기는 ‘추임새’ 모양으로 화면을 메웠다.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심보인가? 그러나 이미 민주당이 주장했듯이, 날치기(?) 통과되었으니 민주당 의원 전원은 대국민 약속과 선언대로 의원직을 빨리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결사반대’를 외친 언론노조도 스스로 ‘결사(決死)’를 감행해야 한다. 결사반대는 국민을 기만하는 구호가 아니다. 가벼이 넘길 문구가 아니라 엄중한 대국민 약속이자 당연히 실천해야할 선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다수결을 오도한 한나라당도 문제지만, 다수결을 무시하고 막무가내 떼법과 몸부림 반대로 일관한 민주당도 더 이상 민주를 들먹일 자격이 없게 되었다.
MB에게 미디어법 통과는 동굴일까? 터널일까?
이제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미디어 관련법이 통과된 마당에 우리 모두는 숨 고르는 차원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그 본질을 살펴보자. 이 난삽한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에게 미디어관련법 통과는 과연 동굴일까? 아니면 터널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과 터널을 일단 욕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동굴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모두가 실종되지 않고 결국에는 나올 수 있다는 아집과 독선 때문이다.
한편 터널은 언젠가는 끝이 나오겠지만, 우선 처음부터 힘이 들고, 그 어떤 기대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유혹이나 자극이 없기 때문에 그 순탄한 길을 잘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굴은 막연하나마 어떤 미지의 가치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또한 무한한 광맥, 희귀한 물건, 숨겨진 보물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기 때문에 아무리 말려도 그 길을 택한다.
그들은 동굴을 도전과 탐사, 변화와 탐험의 대상이라고 강변한다. 특히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지난 역사적 권력실패의 교훈이 그 위험한 유혹을 거론해도 무시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한 길을 가지 말 것을 타일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무리 말려도 결국은 출구가 없는 동굴을 마다않고 대부분은 기꺼이 기어들어 간다.
출구가 없는 동굴을 마다않고 기어들어 간 한나라당
그러나 터널은 우선 힘들고 고되나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끝내 저 멀리 희미하나마 출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저 멀리 터널 끝에서 들어오는 환한 빛과 함께 뿌듯한 노력의 보람으로 비춰지기 시작한다.
이와는 반대로 탐욕과 아집, 허망한 한방을 노리며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절망에 빠져 든다. 숨은 차고, 출구는 보이지 않고, 당초 기대했던 광맥이나 보물도 없다. 그러나 애초에 허상이었기에 실망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초부터 환상이자 탐욕의 소치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도처에 널린 위험 때문에 끝없이 헤매다가, 결국은 처음 들어온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온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 동굴 안에 그냥 주저앉고 만다.
이 모습이 지난 5년 단임 정권들 모두가 저지른 문민통치 정권의 잘못된 오류의 행태였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화 기치를 들고 그렇게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래도 민생의 허름한 도포자락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군사정권은 임기 내내 독재, 반인권, 비민주, 부패 등의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적어도 민생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한 터널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민정권이라 자처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자유와 민주, 인권과 반부패를 외치면서도 그들 스스로 독선과 탐욕의 동굴 속으로 기어들었다.
5년 임기 내내 분란과 민생외면의 그들만의 권력 잔치를 탐닉하다가 어둠 속에 대한민국을 팽개치고 그들만 동굴 밖으로 도망쳤다. 하나는 IMF 환란으로 민생들 피고름을 내개 만들더니, 또 하나는 그 환란을 고친다는 핑계로 나라의 부(富)를 거의 다 팔아먹고, 전 국민을 신용카드의 신용불량자로 내몰았다.
그들 스스로 독선과 탐욕의 동굴 속으로 기어들었다
엄청난 국부를 외국자본에 뜯기면서도 벤처라는 미명하에 IT버블을 조장하며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지역갈등을 불거지게 만들었다. 왜곡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압착성장으로 일군 국가경쟁력과 정부재정을 계속 파탄 냈다.
지금 ‘독수리 대장’이라고 우쭐거리는 참여정부는 386 등을 앞세우며 사상적 계층을 양분해 나갔다. 그러면서 사회적 적대감으로 금이 났지만 그래도 깨지지 않고 붙어 있던 대한민국이라는 보금자리 그릇을 기어이 박살을 내고 말았다.
그들에게는 4대 개혁법이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4대 악법이었던 헛방을 들고 임기 내내 탄핵과 반격, 적개심과 반동으로 전 국민을 아무 가치 없는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동국의 어둠 속에서 대한민국 역사와 정체성, 민족적 가치를 짓밟고 부정하며, ‘님을 향한 행진곡’으로 국시(國是)를 외면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도 동굴의 어둠이 싫었다. 얼마나 동굴 속의 어둠이 싫었으면, 퇴임 후 촛불을 들고 쇠고기 광란으로 전국의 밤을 밝혔겠는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 인권과 반부패를 외쳤지만, 속으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집단도 전두환, 노태우 집단과 별단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안타깝고 아쉬운 대한민국의 한계로 보인다. 지난 3개 문민정권 15년 동안 부의 양극화는 극심하게 고착화되고, 사회적 적개심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탐욕의 동굴 속에서 민생을 외면하고 ‘그들만의 권력과 부패 잔치에 몰두한 결과였다.
세상의 빠른 흐름을 외면하고 이 무슨 작태인가?
뜨겁고 후덥지근한 여름에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실체는 어쭙잖은 법 개정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제치고 분란과 비난, 아집과 독선, 파당의 잔머리 굴리기로 이 막중한 세상의 글로벌 변화를 포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회의와 사이버 공격 방어 대책, 일본의 비핵 3원칙과 미-일 신(新)안보공동선언 및 일-중 해상전략 논의, 중국의 외국 국가와 국제기구에 대한 중국내 문제에 대한 개입 경고, 중-대만 국방안보와 경제협력 심화,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 및 무기수출 확대 등에서 보듯이 안보, 자원, 테러, 핵무기 및 미사일 전략의 이른바 생존에 관한 미래 핵심 문제로 한반도 주변은 요동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한심한 대한민국 정치는 이런 핵심적인 생존의 문제를 제쳐두고 오직 국회점거, 탈취, 직권 통과에 목을 매고 있다. 미디어법은 얼마나 막중한(?) 법이기에 그런가?
미디어법 개정은 언제든지 어떤 내용이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절대 안된다는 악법과 개악 주장은 틀렸다. 반대도 양심적이어야 논리를 가지고 지지를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언론 가치의 불신과 왜곡 조장, 돈으로 만든 진입장벽 설치, 뻔뻔한 불공정 행위 때문이 아닌가? 소위 조중동이 그동안 공개적으로 보여준 작태다.
그래서 국회의장도 이 분란의 고뇌가 ‘조중동 방송 참여’라고 솔직히 자조했다. 이미 통과되기도 전에 정부 여당은 미디어법안이 엄청난 일자리를 만든다고 설레발을 떨다가 거짓으로 판명되자,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망신을 당했다.
사태의 본질이 이러니 ‘당-정-청’이 아무리 미디어법 개정의 진정을 말해도 국민들은 더 이상 속으려 들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당-정-청’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지금 상태와 같이 미디어법 개정이 그렇게 소중하고 시급했다면, 지난 대운하 사태처럼 사전에 치밀한 국민설득전략이 미리 마련되어야 했다.
분명 민주당은 직권상정을 막는 척 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사회적 분노와 적개심은 바로 적극적인 민주당 표로 연결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단식을 하며 악법이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절대 반대의 광기를 부리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불신과 왜곡 조장, 진입장벽 설치, 뻔뻔한 불공정 행위
본질은 미디어법으로 신문방송의 미래적 경쟁력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이러한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과 재벌의 지상파 방송 지분보유,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의 허용 비율 범위도 본질적인 논란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민생을 외면한 그들만의 정치적 이익과 패거리 자존심 싸움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맞다. 그래서 비율이 30%든 49%든 불신과, 불공정 문제가 제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정치질서는 국민 모두의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자유를 지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최소한의 생존과 인권을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서 작금의 미디어법과 비정규직 분란은 분명히 비민주적, 비자유적 국가체제를 획책하는 천인공노할 작태다.
그래서 벼랑에 내몰린, 1500만명이 넘는, 생존의 공포에 찌든 우발적 노동자와 빈곤층을 먼저 생각하라. 이런 최소한의 노력을 먼저 보이고서 미디어법 같은 것을 100번이나 직권 상정해 통과시켜도 국민들은 정부 여당의 고충을 이해할 것이다.
생존의 공포에 내몰린 노동자와 빈곤층을 먼저 생각하라
지금 상황에서 보면 분명히 미디어법 직권 상정 통과는 ‘이명박 정부’가 동굴로 기어들어가는 형국의 연출이다. 본질은 미디어법 자체가 아니다. 저렇게 통과된 법을 누가 신뢰하고, 그 법으로 인한 여론을 누가 인정하려 들겠는가?
글로벌 경제난국에 실질적인 민생경제는 자꾸 어려워진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 국회 경위들의 출입문 봉쇄, 보좌진까지 합세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 충돌 등을 박정희 유신시대보다 더 자주 봐야 하는 작금의 작태에 벼랑에 내 몰린 민생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법이 뭐기에 이런 분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꼭 지금 통과시켜야 하는가? 한나라당은 지난 비정규직 법처럼 민주당의 술수에 그대로 넘어가야 꼭 속이 시원한가?
미디어법의 핵심 사안인 ‘매체 합산 점유율’을 시골 장터 장부거래처럼 순식간에 바꾸어 법안 통과 얼마 전에 반영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국회에서 만든 민주국가의 민주법률인가?
법은 국민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당-정-청’은 미디어법 일방적 통과를 서두른 이유를 이제 밝혀야 한다. 돈의 문제인가? 조중동과 재벌의 도움에 대한 예의인가? 아니면 차기 선거에서 확실한 주류 언론의 지지와 정치자금의 확보 차원인가?
일방적 통과를 서두른 이유를 이제 밝혀야 한다
사실 미디어법은 일반 국민들의 민생과는 관련성이 많지 않다. 하지만 전략 부재인지 모르나, 이 법이 ‘강부자-고소영-천성관’ 이미지로 일반 국민들에게 비춰지고 있는 판국에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치면, 그 후폭풍은 지난 촛불괴담처럼 어느 수준으로 불거질지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당-정-청은 야당과 반MB 집단들이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언론을 장악한 부자당이 재벌과 함께 국민을 속이려 한다”는 호소를 어떻게 차단할지를 미디어법 통과 이전에 먼저 고민하고 대책을 준비했어야 했다.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약자의 호소는 미디어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국민들까지도 분노케 만들 수 있는 약발을 가진다. 막연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메시지다.
7월 22일, 금세기 최장인 개기일식이 약 6분간 진행되었다.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다. 정치적 측면에서 같은 날 대한민국 국회는 민생인 태양이 조급한 정파이익인 암울한 달그림자에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만들었다. 정치 이미지가 어두운 여운과 묘하게 겹쳐졌다.
국회 분란 모습과 관련, 미디어법 기사가 올라가자 단 1시간 만에 반대 댓글이 7500여개가 달렸다고 한다. 이것이 민심이다. “국민들이 설명해도 모르고 상임위 국회의원들도 모르니 여론조사는 필요없다”라는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일은 이미 저질러졌다. ’강부자-고소영-천성관‘ 이미지의 부자 정당이 조중동과 재벌의 편을 들어 방송을 장악해 “국민을 속이려 한다”는 반MB 집단의 제파식 공격을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그래서 ‘당-정-청은 혹시나 터널이 아닌 동굴에 스스로 기어 들어갔는지 스스로를 되짚는 성찰과 통찰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출구 전략을 미리 세워야 한다.
7월 22일 하늘은 61년 만에 금세기 최대 우주쇼를 연출했다. 개기일식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같은 날, 제헌 61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장관이 펼쳐졌다. 어떤 법 하나가 세계가 웃지 않을 수 없는 정치쇼를 거듭하며 개기일식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통과되었다.
흡사 전쟁의 영상 같은 암울한 먹구름이 국민의 시선 밖으로 지나갔다. 방송법 등 미디어관련 3법이 드디어 본회의를 자랑스럽게(?) 통과된 것이다. 청와대는 미디어관련법 직권상정 처리가 불가피했다고 거들었다. 국민이 이해하고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고 자찬했다.
그런데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씁쓰레한 느낌이 남는 것은 또 뭔가? 악법 날치기 통과, 원천무효, 여야 난투극, 국회 폭력 부상자 속출, 재벌 특혜 시비, 의원직 사퇴 결행 등 독재 후진국의 구호들과 이미지들이 민생에 찌든 국민들 뇌리를 쥐어짰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결국 2009년 한국의 미디어법은 국민적 여론과는 달리 위대한(?) 투쟁의 상흔을 남기며, 상당히 많은 국민적 의구심과 국정통치의 난맥상, 그리고 잘못된 정치의 본보기를 남겼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씁쓰레한 느낌이 남는 것
법은 과연 무엇인가? 정부 여당은 국정통치와 정치의 본질을 한번이라도 생각하면서 직권상정을 했을까? 심각한 표정의 이윤성 국회 부의장은 본회의 직권상정을 심각한 상태에서 감행했다.
그리고 신문법,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관련 3개 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4개 법안을 단숨에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이 원했기에 국민을 위하는 방향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반대한 민주당은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국정파탄 행위이기 때문에 국민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대 여당다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궁금하다. 여야는 당일 저녁도 지난 본회의장 점거시의 통닭 파티와 같이 밥을 같이 먹으며 정치단합을 또 과시했을까?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결사반대'의 플래카드를 들고 당상 앞에 늘어 선 민주당 의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왠지 서글퍼 보이는 대신, 오히려 직권상정 통과를 빨리 부추기는 ‘추임새’ 모양으로 화면을 메웠다.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심보인가? 그러나 이미 민주당이 주장했듯이, 날치기(?) 통과되었으니 민주당 의원 전원은 대국민 약속과 선언대로 의원직을 빨리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결사반대’를 외친 언론노조도 스스로 ‘결사(決死)’를 감행해야 한다. 결사반대는 국민을 기만하는 구호가 아니다. 가벼이 넘길 문구가 아니라 엄중한 대국민 약속이자 당연히 실천해야할 선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다수결을 오도한 한나라당도 문제지만, 다수결을 무시하고 막무가내 떼법과 몸부림 반대로 일관한 민주당도 더 이상 민주를 들먹일 자격이 없게 되었다.
MB에게 미디어법 통과는 동굴일까? 터널일까?
이제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미디어 관련법이 통과된 마당에 우리 모두는 숨 고르는 차원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그 본질을 살펴보자. 이 난삽한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에게 미디어관련법 통과는 과연 동굴일까? 아니면 터널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과 터널을 일단 욕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동굴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모두가 실종되지 않고 결국에는 나올 수 있다는 아집과 독선 때문이다.
한편 터널은 언젠가는 끝이 나오겠지만, 우선 처음부터 힘이 들고, 그 어떤 기대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유혹이나 자극이 없기 때문에 그 순탄한 길을 잘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굴은 막연하나마 어떤 미지의 가치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또한 무한한 광맥, 희귀한 물건, 숨겨진 보물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기 때문에 아무리 말려도 그 길을 택한다.
그들은 동굴을 도전과 탐사, 변화와 탐험의 대상이라고 강변한다. 특히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지난 역사적 권력실패의 교훈이 그 위험한 유혹을 거론해도 무시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한 길을 가지 말 것을 타일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무리 말려도 결국은 출구가 없는 동굴을 마다않고 대부분은 기꺼이 기어들어 간다.
출구가 없는 동굴을 마다않고 기어들어 간 한나라당
그러나 터널은 우선 힘들고 고되나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끝내 저 멀리 희미하나마 출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저 멀리 터널 끝에서 들어오는 환한 빛과 함께 뿌듯한 노력의 보람으로 비춰지기 시작한다.
이와는 반대로 탐욕과 아집, 허망한 한방을 노리며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절망에 빠져 든다. 숨은 차고, 출구는 보이지 않고, 당초 기대했던 광맥이나 보물도 없다. 그러나 애초에 허상이었기에 실망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초부터 환상이자 탐욕의 소치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도처에 널린 위험 때문에 끝없이 헤매다가, 결국은 처음 들어온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온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 동굴 안에 그냥 주저앉고 만다.
이 모습이 지난 5년 단임 정권들 모두가 저지른 문민통치 정권의 잘못된 오류의 행태였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화 기치를 들고 그렇게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래도 민생의 허름한 도포자락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군사정권은 임기 내내 독재, 반인권, 비민주, 부패 등의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적어도 민생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한 터널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민정권이라 자처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자유와 민주, 인권과 반부패를 외치면서도 그들 스스로 독선과 탐욕의 동굴 속으로 기어들었다.
5년 임기 내내 분란과 민생외면의 그들만의 권력 잔치를 탐닉하다가 어둠 속에 대한민국을 팽개치고 그들만 동굴 밖으로 도망쳤다. 하나는 IMF 환란으로 민생들 피고름을 내개 만들더니, 또 하나는 그 환란을 고친다는 핑계로 나라의 부(富)를 거의 다 팔아먹고, 전 국민을 신용카드의 신용불량자로 내몰았다.
그들 스스로 독선과 탐욕의 동굴 속으로 기어들었다
엄청난 국부를 외국자본에 뜯기면서도 벤처라는 미명하에 IT버블을 조장하며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지역갈등을 불거지게 만들었다. 왜곡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압착성장으로 일군 국가경쟁력과 정부재정을 계속 파탄 냈다.
지금 ‘독수리 대장’이라고 우쭐거리는 참여정부는 386 등을 앞세우며 사상적 계층을 양분해 나갔다. 그러면서 사회적 적대감으로 금이 났지만 그래도 깨지지 않고 붙어 있던 대한민국이라는 보금자리 그릇을 기어이 박살을 내고 말았다.
그들에게는 4대 개혁법이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4대 악법이었던 헛방을 들고 임기 내내 탄핵과 반격, 적개심과 반동으로 전 국민을 아무 가치 없는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동국의 어둠 속에서 대한민국 역사와 정체성, 민족적 가치를 짓밟고 부정하며, ‘님을 향한 행진곡’으로 국시(國是)를 외면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도 동굴의 어둠이 싫었다. 얼마나 동굴 속의 어둠이 싫었으면, 퇴임 후 촛불을 들고 쇠고기 광란으로 전국의 밤을 밝혔겠는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 인권과 반부패를 외쳤지만, 속으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집단도 전두환, 노태우 집단과 별단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안타깝고 아쉬운 대한민국의 한계로 보인다. 지난 3개 문민정권 15년 동안 부의 양극화는 극심하게 고착화되고, 사회적 적개심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탐욕의 동굴 속에서 민생을 외면하고 ‘그들만의 권력과 부패 잔치에 몰두한 결과였다.
세상의 빠른 흐름을 외면하고 이 무슨 작태인가?
뜨겁고 후덥지근한 여름에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실체는 어쭙잖은 법 개정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제치고 분란과 비난, 아집과 독선, 파당의 잔머리 굴리기로 이 막중한 세상의 글로벌 변화를 포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회의와 사이버 공격 방어 대책, 일본의 비핵 3원칙과 미-일 신(新)안보공동선언 및 일-중 해상전략 논의, 중국의 외국 국가와 국제기구에 대한 중국내 문제에 대한 개입 경고, 중-대만 국방안보와 경제협력 심화,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 및 무기수출 확대 등에서 보듯이 안보, 자원, 테러, 핵무기 및 미사일 전략의 이른바 생존에 관한 미래 핵심 문제로 한반도 주변은 요동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한심한 대한민국 정치는 이런 핵심적인 생존의 문제를 제쳐두고 오직 국회점거, 탈취, 직권 통과에 목을 매고 있다. 미디어법은 얼마나 막중한(?) 법이기에 그런가?
미디어법 개정은 언제든지 어떤 내용이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절대 안된다는 악법과 개악 주장은 틀렸다. 반대도 양심적이어야 논리를 가지고 지지를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언론 가치의 불신과 왜곡 조장, 돈으로 만든 진입장벽 설치, 뻔뻔한 불공정 행위 때문이 아닌가? 소위 조중동이 그동안 공개적으로 보여준 작태다.
그래서 국회의장도 이 분란의 고뇌가 ‘조중동 방송 참여’라고 솔직히 자조했다. 이미 통과되기도 전에 정부 여당은 미디어법안이 엄청난 일자리를 만든다고 설레발을 떨다가 거짓으로 판명되자,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망신을 당했다.
사태의 본질이 이러니 ‘당-정-청’이 아무리 미디어법 개정의 진정을 말해도 국민들은 더 이상 속으려 들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당-정-청’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지금 상태와 같이 미디어법 개정이 그렇게 소중하고 시급했다면, 지난 대운하 사태처럼 사전에 치밀한 국민설득전략이 미리 마련되어야 했다.
분명 민주당은 직권상정을 막는 척 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사회적 분노와 적개심은 바로 적극적인 민주당 표로 연결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단식을 하며 악법이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절대 반대의 광기를 부리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불신과 왜곡 조장, 진입장벽 설치, 뻔뻔한 불공정 행위
본질은 미디어법으로 신문방송의 미래적 경쟁력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이러한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과 재벌의 지상파 방송 지분보유,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의 허용 비율 범위도 본질적인 논란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민생을 외면한 그들만의 정치적 이익과 패거리 자존심 싸움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맞다. 그래서 비율이 30%든 49%든 불신과, 불공정 문제가 제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정치질서는 국민 모두의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자유를 지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최소한의 생존과 인권을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서 작금의 미디어법과 비정규직 분란은 분명히 비민주적, 비자유적 국가체제를 획책하는 천인공노할 작태다.
그래서 벼랑에 내몰린, 1500만명이 넘는, 생존의 공포에 찌든 우발적 노동자와 빈곤층을 먼저 생각하라. 이런 최소한의 노력을 먼저 보이고서 미디어법 같은 것을 100번이나 직권 상정해 통과시켜도 국민들은 정부 여당의 고충을 이해할 것이다.
생존의 공포에 내몰린 노동자와 빈곤층을 먼저 생각하라
지금 상황에서 보면 분명히 미디어법 직권 상정 통과는 ‘이명박 정부’가 동굴로 기어들어가는 형국의 연출이다. 본질은 미디어법 자체가 아니다. 저렇게 통과된 법을 누가 신뢰하고, 그 법으로 인한 여론을 누가 인정하려 들겠는가?
글로벌 경제난국에 실질적인 민생경제는 자꾸 어려워진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 국회 경위들의 출입문 봉쇄, 보좌진까지 합세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 충돌 등을 박정희 유신시대보다 더 자주 봐야 하는 작금의 작태에 벼랑에 내 몰린 민생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법이 뭐기에 이런 분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꼭 지금 통과시켜야 하는가? 한나라당은 지난 비정규직 법처럼 민주당의 술수에 그대로 넘어가야 꼭 속이 시원한가?
미디어법의 핵심 사안인 ‘매체 합산 점유율’을 시골 장터 장부거래처럼 순식간에 바꾸어 법안 통과 얼마 전에 반영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국회에서 만든 민주국가의 민주법률인가?
법은 국민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당-정-청’은 미디어법 일방적 통과를 서두른 이유를 이제 밝혀야 한다. 돈의 문제인가? 조중동과 재벌의 도움에 대한 예의인가? 아니면 차기 선거에서 확실한 주류 언론의 지지와 정치자금의 확보 차원인가?
일방적 통과를 서두른 이유를 이제 밝혀야 한다
사실 미디어법은 일반 국민들의 민생과는 관련성이 많지 않다. 하지만 전략 부재인지 모르나, 이 법이 ‘강부자-고소영-천성관’ 이미지로 일반 국민들에게 비춰지고 있는 판국에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치면, 그 후폭풍은 지난 촛불괴담처럼 어느 수준으로 불거질지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당-정-청은 야당과 반MB 집단들이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언론을 장악한 부자당이 재벌과 함께 국민을 속이려 한다”는 호소를 어떻게 차단할지를 미디어법 통과 이전에 먼저 고민하고 대책을 준비했어야 했다.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약자의 호소는 미디어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국민들까지도 분노케 만들 수 있는 약발을 가진다. 막연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메시지다.
7월 22일, 금세기 최장인 개기일식이 약 6분간 진행되었다.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다. 정치적 측면에서 같은 날 대한민국 국회는 민생인 태양이 조급한 정파이익인 암울한 달그림자에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만들었다. 정치 이미지가 어두운 여운과 묘하게 겹쳐졌다.
국회 분란 모습과 관련, 미디어법 기사가 올라가자 단 1시간 만에 반대 댓글이 7500여개가 달렸다고 한다. 이것이 민심이다. “국민들이 설명해도 모르고 상임위 국회의원들도 모르니 여론조사는 필요없다”라는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일은 이미 저질러졌다. ’강부자-고소영-천성관‘ 이미지의 부자 정당이 조중동과 재벌의 편을 들어 방송을 장악해 “국민을 속이려 한다”는 반MB 집단의 제파식 공격을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그래서 ‘당-정-청은 혹시나 터널이 아닌 동굴에 스스로 기어 들어갔는지 스스로를 되짚는 성찰과 통찰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출구 전략을 미리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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