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푸른, 2009/07/22 23:53, 제주도 자전거여행]
송악산
송악산 절벽 위로 길게 이어진 산책로.
송악산 산책로는 송악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등산로 초입을 지나쳐 자동차가 다니는 시멘트길을 따라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굽이길을 돌 때 안쪽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송악산 해안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모두 장관이다. 한 떼의 돌고래 무리가 푸른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민 듯한 형제섬과, 드넓은 평지에 홀로 우뚝 솟은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좋으면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바라다 보인다는데, 마침 안개가 끼어서인지 형제섬 너머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망망대해다.
송악산 분화구 위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
송악산 절벽 아래 일본인들이 뚫어 놓은 동굴진지.
동굴진지 안에서 내다본 바다, 형제섬.
일본군들은 제주도에 왜 이처럼 많은 동굴을 뚫어야 했을까? 거기에는 무서운 의도가 숨어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본토 대신 제주도에서 미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일 준비를 했다. 그걸 '결7호작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작전에 따라, 일본인들은 제주도 해안가만 아니라, 한라산 중턱에도 대규모 동굴진지를 구축해 놓고 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전세가 급격히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미군과 맞서 싸우려 했을까? 이곳 동굴진지 앞에 놓인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여 제주도를 결사 항전의 군사기지로 삼았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는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미군 함대를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그러니까 이곳의 동굴진지는 일본이 패전을 앞둔 시기, 옥쇄를 강요당했던 군인들의 자살공격용 무기를 감춰두는 데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절벽 아래로 촘촘히 뚫려 있는 동굴진지들.
동굴진지 설명문. 그 안의 작은 사진이 자살 공격용 인간 어뢰.
제주도에서는 이 동굴진지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인간을 단지 도구로 사용하려는 전쟁의 잔인한 속성과 함께, 그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피 흘려 얻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마라도선착장
마라도행 배를 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관광객들.
송악산 동굴진지 부근에도 관광객들이 꽤 몰려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보다는 중국인들이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배를 타고 마라도로 들어가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중국인들이 이곳을 들러 가는 건, 이곳이 대장금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대장금에만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다.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그 위로 흙을 덮어 풀로 위장했다.
알뜨르비행장은 일본군이 정뜨르비행장(지금의 제주공항)을 만들기에 앞서, 1926년에 중국 대륙을 침략할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넓은 평지가 비행장을 만드는 데 적격이었다. 그 후 이곳의 격납고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3년 11월부터 12월까지 2달 간 매일 수천 명의 제주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군들은 이곳에 아카톰보(빨간잠자리 비행기)라고 불리는 작은 비행기를 숨겨두고 미군과 맞서 싸울 궁리를 했다.
지금도 이곳 밭 한가운데 작은 돔 형태의 비행기 격납고들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농산물들을 보관하는 창고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비행기 몸체와 날개를 감추는데 맞춤한 형태를 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표면에 시멘트와 자갈이 튀어나오는 등 그냥 되는 대로 아무렇게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걸로 봐서 꽤 튼튼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20동을 지었는데 그중 19개동이 아직까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멀리 산방산을 배경으로 한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앞에 감자를 캐는 농부들.
알뜨르는 '아래에 있는 뜰'이라는 뜻이다. 주변에 모슬봉, 단산, 산방산, 송악산 등이 에워싸고 있는 걸로 봐서 그 산들의 아래에 있는 뜰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일본 사람들, 제주도에서 참 못된 짓 많이 했다. 농사지을만한 땅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제주 사람들이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한라산에 개미굴같은 진지를 만들고, 절경인 해안 절벽마다 군사용 구멍을 뚫었다. 두더지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제주도 전역을 군사기지화하고, 전쟁터로 만들려 했던 일본인들의 의도는 '다행히' 일본의 패망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알뜨르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원래 이 땅은 제주도 사람들의 것이었다. 일본인이 이 땅을 지배할 때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다가, 해방이 된 이후에는 이 나라 국방부가 주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이 땅에서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국방부로부터 땅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내 땅을 남의 손에 넘겨주고 다시 임대해 사용하는 심정, 그 누가 알까? 게다가 최근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함께 이곳 알뜨르를 다시 군용 비행장으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제주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사람들이 권력자들에게 땅을 빼앗긴 사례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일본이 이 땅을 지배하던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4.3사건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는 불에 타 없어진 중산간 마을의 땅 상당 부분이 권력자들과 그 권력자들에게 기생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다. 가족 모두가 학살을 당하거나 뿔뿔이 흩어져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의 땅과, 마을 공동 소유로 있던 목장 등이 대명천지하에 남의 손에 넘어가는 일들이 벌어졌다. 제주 사람들이 그렇게 잃어버린 땅은 그 후 1970년대 제주도 땅 투기바람이 불면서, 다시 서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 와중에 기획부동산에 속아 사기를 당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남의 '재산'을 폭압적으로 빼앗는 일은 2009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약자들의 등골을 파먹고 사는 하이에나 권력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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