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를 다녀와서.
박 원 조
이 글은 몇차례 경주에 다녀와서 쓴 것으로 요사이 요약해서 적어본 것이니 참고 하시고
읽어봐 주시기 바람니다.
누구나 우리나라 천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1995년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지정된
천년 고도 경주를 성인으로 한 두번씩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이다.
나도 1958년도 중학교 수학여행때 부터 40여년 간에 10여 차례는 다녀온것 같다.
그러나 도의원을 맞히고 도의정회원이 되고 난뒤로 경상북도와 동서화합의 차원에서
우호,친선및 문화교류 차원에서 자매 관계를 맺어서 매년 상호 왕래가 있었다.
금년에도 6월 2일부터 이틀간 경상북도 초청으로 경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는 것이지만 몇가지 아는것을 소개를 하면
경주에는 삼기(三奇)와 팔괴(八怪)가 있다고 한다.
먼저 삼기(三奇)중에 금자(金尺)는 우리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할아버지 께서 첫임금으로
즉위하자하늘에서 선물로 내리신것이다.
금자는 죽은 사람이나,어떤병든 사람이라도 금자로 한 번만 쓰다듬으면 그 자리에서 낫는
신기한 힘을 가진것이다.
신라 초기의 보물로 지금의 경주 건천읍 금척리 의 수 많은 어느 무덤속에서 이천년이나
잠자고 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옥피리(玉笛)이다..
옥으로 만든 피리로 지금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옥피리 2개가 바로 "옥적"
이라하며,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도망가고,병이 낫으며,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국보다.
세번째는 화주(火珠)다.
분황사탑에서 나온 것인데 그 빛갈이 수정과 같았고,태양열에 비추면 솜에 불이 붙었으니
오늘날 돋보기 같은 것이다.
팔고(八怪)로는 첫번째가 남산부석(南山浮石)이다.
경주 남산 국적골에 있으며 큰 바위 위에 또 한개의 둥근바위가 얹혀 있어 마치
사람에 얼굴 처럼 보이기도 하고,버선을 꺼꾸로 세워 놓은것 처럼 생기기도 보인다.
그래서"버선바위" 라고도 한다.
이 바위가 허공에 떠있는것 같기도 하여서 '부석(浮石)"이라고 하는데
말에 의하면 실을 넣으면 통과가 된다고도 한다.
둘째는 문천도사(蚊川倒沙)다.
문천은 경주 남쪽에 흐르는 남천(南川) 이라는 옛 이름인데 이곳에 모래는 얼마나
부드러운데 물에 흐르지 않고 물위에 떠서 거슬러 올라 가는것 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모래의 부드러움을 상상 할만하다.
옛날에는 강가에서 가끔 볼수 있는 현상이었다.
셋째는 계림황엽(鷄林黃葉) 이다.
낙엽은 보통 가을철에 생긴느 것이다.
그러나 이곳 계림에는 한 여름철에도 단풍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째는 백율송순(栢栗松筍)이다.
재래종 소나무에는 순(筍)이 생기지 않는다.그러니백율사에 소나무에는 가지를
친 뒤에는 솔순이 생긴다고 한다.
이차돈의 순교와 관계가 있으며 솔순은 불교에서 소생을 의미 한다고 한다.
다섯째는 압지부평(鴨池浮萍) 이다.
연못 안압지의 물 위에는 언제나 부평초(浮萍草)가 떠있다.
이 밀밤이란 식물은 연못에서 자생 하면서 새까만 뿌리가 대추처럼 생겼는데 그 속에는
알밤같은 속이 있어서 맛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먹어 보았을 것이다.
이뿌리는 뿌리가 땅에 닿지않고 떠 있으면서 자생되는데 바람이 불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여섯째 금장낙안(金丈落雁) 이다.
경주 석장동에 있은 낙장마을 앞에 흐르는 강변에 옛날 임금님이 놀던 금장대
에 날아온 기러기가 쉬어 갈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캠퍼스 동쪽 언덕이라고 한다.
일곱번째는 불국영지(佛國影池) 이다.
이는 영지못에 석가탑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려던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얽혀있다.
불국사의 전경이 모두 비치는데 그 중에서 다보탑은 비치면서 석가탑만 비치지 않으니
석가탐을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불렀다고....
마지막으로 나원백탑(羅原白塔) 이다.
경주 현곡면 나원부락 뒷산 기슭에 높이 약 9.8M에 순백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5층 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추정 되는데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갈은
변함이 없다. 1996년 보수시 금동제 사리함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삼기와 팔기를 보고 듣고역시 천년고도가 틀림 없다고 생각 하였다.
그리고 금년에는 사적21호인 김유신묘를 갔었다.
이 무덤은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린 모냥이며 묘 주위는 동물모냥의 십이지신상을
새겨 보호석으로 능 주위를 삥 둘려 놓았다.
660년에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양도 의정회원과 직원중에 김해김씨는 훌륭한 조상은 두었다고 하지만
나머지 전북의원중 일부 사람은 우리 옛 백제가 이사람 손에 망하여 지금도
영호남의 불화합이 생겼다고 웅성 거리면서 참배도 거부한 분이 있었다.
이제 역사를 탐방 하면서 새로운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숙소는 항상 보문관지내에 있는 콩코드호텔이다.
그 곳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보문단지가 훤~하게 보이며,넓은 들판과 여기저기에 있는 능,
기와집등 무산재한 문화재들이 옛 천년도시의 맥을 잇기위한 행정에 노력이 엿보인다.
세월이 흐르고 생활문화가 변하면 자연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경주 최부자집도 항상 부자는 아니며, 사랑채에 살던 사람이 빌딩에 살고, 또 큰 기와집에서
살던 사람도 행랑채에 살기도 할것이다.
우리일행은 이튼날 새벽에 신라예술과 과학,문화의결정체인 김대성이 창건 하였다는
석굴암에 다녀왔다. 그리고는 경덕왕때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지은 사찰 불국사를 중학교때
수학 여행을 왔던 50년전 추억을 되새기며 새롭게 탐방을 하였다.
당시는 경내 어느곳이나 마음대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였던 시절이다.
다보탑,석가탑,청운교,백운교,연화교등 하나 하나가 신라불교의 뛰어난 조형미를 보았다.
또 우리 숙소근처에 있는 보문호 와 경주월드 그리고 경주세계문화 엑스포공원, 신라 밀레니엄파크
하루 종일 관람을 해도 다 못 보고는 아이구 다리야~! 들 한다.
나는 박씨종친회(신라오능보존회) 춘분대제 참석차 가끔 와서 볼 기회가 있어서 외부에 있는
귀중한 문화재인 계림,천문 관측소인 첨성대, 원효.자장대사가 있었던 분황사,
나라에 경사가 있을때 축하연을 거행한 안압지, 견훤에게 최후를 맞았던 술자석인 포석정,
우리 시조 박혁거세님이 탄생하신 나정,신라에 모든 귀중한 문화재가 소장된 박물관등
현대 동리,목월 문학관을 빼드라도 너무나 많다.
오직해야 "경주 돌은 모두 옥돌이냐?"는 속담이 나왔을까.
이렇게 나열한 것은 우리 문화재들을 차분하게 보면서 귀중 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 이다.
(김유신 장군 묘앞)
(밀레니엄 파크 관람중)
( 요석궁에서 중식후)
(경상북도 의정회 주관으로 양쪽 도회원 만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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