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높은 관직에 있는 사대부라도 99칸 이상의 집을 짓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99칸이란 어떤 규모일까요? 건물이 99채일까요?
전통건물의 크기를 말할 때 ‘2칸짜리 방’이라고 하는 것은
넓이를 말하는 것이고 ‘정면 2칸, 측면 1칸’이라고 할 때는 길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길이로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하며, 넓이를
계산할 때는 정면의 칸수를 측면의 칸수로 곱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은 6칸 넓이의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칸의 길이는 정해진 것이 없어서 같은 ‘1칸 넓이’가 4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또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 정면의 길이가 측면보다 반 이상 긴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엿 장수 맘대로’가 아닌 ‘목수 맘대로’입니다. 목수는 집주인에 따라,
비용에 따라, 때로는 재목의 길이에 따라, 건물의 용도에 따라 1칸의 크기를 정했습니다.
99칸 집이란 사랑채 안채 별당 사당 정자 부엌 곳간 행랑 마구간 등 모든 건물의 칸수를 합친 수입니다.
서민의 집이 10칸 내외였으니 엄청 큰 집입니다.
강원도에서 가장 큰 집이 강릉 선교장(船橋莊)입니다. 안채 사랑채 외에도 별당이
3채, 그리고 정자 사당에 행랑 곳간 등이 즐비하여 대저택의 면모가 그대로 보존된 귀중한 건물입니다. 경포대 주변 저동에 살던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명당터를 발견하고 집을 지어 이사한 후 가세가 크게 번창하여 강원도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는
집입니다.
경포 호수가 지금보다 몇 배 넓었던 시절, 배를 타고 다녔다 하여 ‘배다리’라고 부르던 마을에 세워진
선교장은, 집 앞의 긴 행랑채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행랑채에는 11개의 방과 6개의 광에 부엌이 2곳, 대문 2곳이 있습니다. 대문 옆방은
하인의 거처였고, 선교장에서 쓰는 일상용품인 약재와 공구 등을 보관하고 베틀을 놓고 삼베를 짜는 방도 있었습니다. 열화당 쪽으로 꺾여나간
‘중사랑’(작은사랑)은 장남의 거처였답니다. 특이한 것은 사랑채로 드는 ‘큰대문’(솟을대문)과 안채로 드나드는 ‘안대문’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안대문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널판벽을 세워서 돌아다니도록 하였습니다. 선교장에만 있는 문입니다.
활래정과
열화당이 유명
선교장에는 유명한 건물이 2채가 있습니다. 활래정과 열화당입니다.
열화당(悅話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사랑채로 높은 기단에 대청마루와 누마루가 있어 멀리 대관령까지 바라볼 수 있는 멋진 건물입니다. 창덕궁 연경당을 모방한 차양으로
이국적 분위기가 풍깁니다. 러시아에서 동판과 자재를 수입하여 지었답니다. 바깥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한껏 멋을 부린 것이지요. 순조
15년(1815)에 건립한 건물입니다.
선교장에는 별당이 3채나 있습니다. 많은 손님을 맞이하고, 대가족이 살던 선교장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별당은 안채와 연결된 별당으로 가족끼리 생활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서별당은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자리잡은 서고로 여름
독서공간인 누마루방과 겨울용 온돌방이 있습니다. 서별당 앞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금전이나 곡식을 받아들일 때 사용하였답니다. 외별당은
분가한 가족이 살던 건물로 근래에 복원하여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외부 모양은 한옥 그대로인데 내부에는 수세식 화장실, 입식부엌, 보일러 난방
등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한옥이 보기는 좋은데 살기가 불편하다는 분이 참고할 만합니다.
선교장의 안주인이 살던 안채는
선교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영조 때 건물이라고도 합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대청마루의 우측은 안방으로 안주인의 방이고,
좌측 방은 며느리가 살았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된 건축구조는 조선시대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수평적 권력구조를 보여줍니다. 곳간
열쇠는 항시 안주인이 관리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눈치보고 사는 남편이 적지 않은 이유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부르거나 대화를 할 때도 존댓말을
썼습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반말을 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에 부인을 소유물처럼 대하던 일본인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대문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여러 개의 문으로 구별을 하였습니다. 내외를 한 겁니다. 안채 앞에는 살림을 도와주던 이들을 위한 연지당이 있습니다.
마루로 된 반빗간이 3칸, 온돌방이 2칸인 건물입니다.
벽 대신 설치한 띠창살 아름다워
|
▲ (上) 안채, (中) 서별당, (下) 동별당 |
선교장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활래정(活來亭)입니다. 선교장 입구에 있어 선교장을 찾는 이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입니다. 네모난 넓은 연못가에 지은 온돌방에 덧붙여 연못
위로 누마루 방을 내달아 지어서 ‘ㄱ’자 형태가 되었습니다. 두 건물이 연결되는 사이에 다실을 둔 특이한 건물입니다. 흙벽이 없이 창호로만
조성되어 있어 문을 접으면 사방이 탁 터진 누각이 됩니다.
>활래정의 아름다움은 벽을 대신한 많은 띠살창에서 우러납니다.
연꽃이 장하게 피는 계절이면 활래정은 연꽃 위에 떠있는 한 척의 배가 됩니다. 이런 활래정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많은 시인·묵객이 시와 글을
남겼습니다.
활래정 누마루 방에서 밖을 내다보면 연못 중심에 소나무를 심은 정방형의 인조 섬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나무다리가 있어
섬에서 쉴 수도 있었답니다. 활래정은 순조 16년(1816) 오은거사가 건립한 정자로, 현재의 건물은 오은의 증손인 경농 이근우가 중건한
것입니다.
R>선교장에는 1908년 경농에 의해 개교되어 몽양 여운형이 신식교육을 하던 동진학원을 복원하여 전통문화 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랍니다. 우리 옛 건물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선교장 가까이 오죽헌 해운정이 있고 경포호수 주변에 경포대와 방해정
금란정 경호정이 있어 답사의 재미가 쏠쏠합니다. 숙박을 하시는 분에게는 동해 일출이 멋진 추억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