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文房)은 원래 중국에서 문학을 연구하던 관직 이름이었다. 뒤에 선비들의 글방 또는 서재라는 뜻으로
정착됐다. 이곳에 갖춰두고 쓰는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칭한다.
중국 진(晋)나라 명필 왕희지는 “종이는 진(陣)이요, 붓은 칼과 방패이며, 먹은 병사의 갑옷이요, 물 담긴
벼루는 성지(城池)이다.”라고 하였다. 사우(四友) 중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는 쓸모가 없게 된다.
|
|
▲ 붓털은 털이 빳빳하고 뾰족한 것, 털이 많으며 가지런한 것, 털 윗부분이 끈으로 잘 묶여서 둥근 것, 오래 써도
털에 힘이 있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대구시 달서구
본동) | |
|
|
▲ 우리 사랑방 문화의 터지기가 되어온 문방사우. 선비들이 학문을 연마하는 동안 내내 옆에서 친구가 되어 주었으며,
공부를 통해 귀결(歸結)되는 그들의 글정신을 알리기도 했다.(서울 중구
한옥마을) | |
우리의 조상들은 예부터 문방사우를 가까이 하며 인격을 쌓으려 노력했다. 전통사회에서 서예는 지성인의 척도였다.
붓글씨는 군자의 덕목이기도 하려니와 심성을 바르게 잡는 수신의 방법이었다.
|
|
▲ 주지(周紙). 두루마리 상태의 종이로, 편지나 글을 쓸 때 필요한 만큼 잘라 사용했다.(호림 박물관
소장) | |
|
|
▲ 모필장(毛筆匠) 이인훈씨의
작품. | |
|
|
▲ 소나무 그을음을 주원료로 아교와 섞어 만드는
송연묵(松煙墨). | |
|
|
▲ 남포벼루. 충남 보령지방의 오석(烏石)을 채취하여 손으로 가공을 한 후에 다른 문양과 무늬를 조각하여
완성한다. | |
|
|
▲ 김진한(65·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씨는 전통적인 조각에 독창성을 가미하여 아름답고 우수한 남포벼루를
제작하고 있다.(충남 보령) | |
|
|
▲ 박태경(72)씨는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와 황촉규를 직접 재배하는 등 전통을 계승하면서 한지 품질 개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경기 용인 민속촌) | |
|
|
▲ 좋은 송연묵은 최고의 그을음을 얻었을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 유일한 먹 기능전승자 유병조(65)씨가 만든 그을음
제조기.(경북 경주시 건천읍) | |
요즘은 붓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서예를 하는 이들 말고는 붓을 쓸 일이 거의 없기에 볼펜, 사인펜 등이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이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이인훈(무형문화재 15호·모필장)씨는 대구에서 전통 붓을 만드는 가업을 4대째 잇고
있다.26평짜리 아파트 안에 마련한 2평 크기의 작업실 벽에는 그에게서 붓을 구입해간 이름난 작가들이 보내준 감사의 글과 그림이 빽빽이 걸려
있다.
“내 붓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어요.” 이씨의 말이다.
“붓에는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동양의 붓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쓰이지만 서양의 펜은 강하면서도 약하게
쓰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붓을 통해 선비들은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문화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그는 정신이 맑아지는 새벽,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에 만드는 붓은 평균 50여자루. 한 자루의 붓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두 150회가량 손길이 간단다.
한국 전통의 황모필(黃毛筆) 만들기 40년. 이씨는 족제비 털(황모)을 사용한 한국 전통 붓 제작에 있어 국내
독보적인 존재다.
그가 다른 장인들과 다른 점은 미니모형 붓을 사용해서 휴대전화 줄을 만들 정도로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붓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좋은 붓은 효자보다 낫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되뇌이는 이씨는 “좋은 붓이란 모름지기
좋은 재료와 뛰어난 기술로 그리고 붓을 알고 쓰는 사람의 3박자가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이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붓이 사라짐과 함께 글자마다 먹을 찍어 쓰던 여유와 생각의 깊이가 얕아졌다.”면서 “붓에 서려 있던 조상들의
강직한 기개마저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기사일자 : 2005-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