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 글♧

총알만큼 빠른 자동차

우리둥지 2021. 8. 13. 09:55

빠르다. 총알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영국산 럭셔리 GT를 모으는데 애스턴마틴이 빠질 수 없다. 이번 기획에 모인 녀석 중에서 가장 출력이 세다. 유일하게 700마력이 넘는다. 그만큼 애스턴마틴은 편하지만 누구보다 빠른 것을 추구한다. 이 가문에 에이스는 DBS 슈퍼레제라다. 애스턴마틴 배지를 단 모델 중 가장 잘 생겼고 가장 빠르다. 뱅퀴시가 없으니 지금 애스턴마틴의 기함이라 불러도 좋다. 애스턴 마틴은 마니아층이 두껍다. 자신의 색깔이 강하기 때문이다. 작은 부분마저 뭔가 다르다. 예를 들면 후드도 반대로 열리고 문도 비스듬히 위로 열리고 와이퍼도 두 개의 블레이드가 모았다 펴지면서 빗물을 닦아낸다. 이 사소한 것들이 타는 이에게 신선함으로 전달된다.

단지 이러한 기교로만 유혹하냐고? 앞서 말했듯이 디자인 자체가 예술에 가깝다. 슈퍼카와 럭셔리 GT카를 잘 버무리면 이러한 디자인이 나온다. 모터쇼에 전시된 콘셉트카가 세상 밖으로 도망 나온 것 같다. 미래지향적이며 시선 몰이를 하기에 충분하다. 선을 부드럽게 사용했지만 결코 약해 보이지 않는다. 패널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거추장스러운 카나드 윙 혹은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가 없어도 차체를 노면에 밀착시키기 위해 패널 곳곳에 구멍을 뚫어놨다. 애스턴마틴이 자체 개발해 특허를 받은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 에어로블레이드Ⅱ가 적용된 것이다. 덕분에 최고속력에서 약 180kg의 다운포스를 얻는다.

헤드램프와 프런트 그릴은 패밀리룩을 따르고 실루엣은 클래식한 롱노즈 숏데크 타입이다. 사실 이 실루엣도 애스턴마틴의 드레스 코드라고 할 수 있다. 프런트 오버행이 극단적으로 짧고 그린 하우스 면적이 작아 역동적인 자세가 연출된다. 벨트 라인은 뒤로 가면서 살짝 쳐지게 그려 빵빵한 리어 펜더가 더욱 부각된다. 휠은 무려 21인치가 달린다. 차체가 스포츠카치고는 큰 편이긴 하나 21인치는 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실제로 보면 위풍당당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림 안은 큼지막한 브레이크 캘리퍼가 꽉 채운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보기만 해도 제동 성능에 믿음이 간다.

이제 달려 볼 시간이다. 스완 도어를 열고 콕핏에 앉는다. 호사스러운 최고급 가죽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 어떤 명품백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촉감이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박혀있는 엔진스타트 버튼을 눌러 12개의 실린더를 작동시킨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4기통을 타다 6기통을 타면 부럽고 8기통을 타면 흥분되고 10기통을 타면 놀랍다. 12기통은? 이건 감동이다. 단순히 배기 사운드가 아닌 캐빈룸에 퍼지는 분위기부터가 웅장하다. 나의 이동을 위해 12개의 피스톤이 움직인다는 기분도 묘하다. 나의 사소한 일을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된 것 같다. 정성 가득하고 제대로 된 대접이다.

V형 12기통 5.2ℓ 트윈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715마력, 최대토크 91.8kg∙m를 자랑하고 토크 컨버터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0→시속 100km는 고작 3.4초, 최고시속은 335km다. 차를 탈 때는 이 스펙을 몰랐다. 글을 쓰는 순간 브로셔를 확인했는데 놀랐다. 엄청난 괴력인데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을 추월할 수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출력을 신경질적으로 쏟아내지 않고 친절하게 뽑아주니 운전에 미숙하더라도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섀시가 파워를 완벽하게 받아주니 안정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다.

변속기도 듀얼 클러치가 아닌 평범한 자동이지만 변속 속도에 아쉬움은 없다.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어서 괜찮다. 다만 스포츠 혹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고의적인 변속 충격을 주면 더욱 박진감이 생길 것 같다. 그 외에 저단에서 저속으로 다닐 때 울컥거림도 없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다음으로 서스펜션 이야기를 하자면 승차감은 보통의 GT카들 보다 단단하다. 그렇다고 승차감을 해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댐핑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데 공도에서는 감쇠력을 다 풀고 달리는 게 로드홀딩에 좋았다. 노면이 좋다면 압을 다 채우고 달리는 게 최고긴 하지만 우리나라 도로 형편은 그리 좋지 못하니까.

코너링 실력은 어떨까? 12기통 대형 유닛이 후드 안에 박혀 있지만 최대한 캐빈룸 쪽으로 당겨져 있어 스티어링 피드백이 빠르면서 솔직하다. DBS 슈퍼레제라는 그리 작은 차가 아님에도 코너를 탈 때마다 작은 차를 몰고 있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 와인딩 마니아들이 작은 차를 선호하는 이유가 이 느낌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차가 움직일 때의 희열이 있다. 여하튼 코너링 성향은 뉴트럴스티어다. 살짝 언더스티어가 보이지만 이 정도의 농도는 의도적인 배려이기에 뉴트럴스티어로 보는 게 맞다. 복합코너도 민첩하게 돌파한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부드럽고 과격한 조향에도 자세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카본 세라믹 디스크를 포함한다. 브레이크스티어 혹은 노즈다이브와 같은 현상을 잘 잡았다.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페이드 혹은 베이퍼록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냉간 시에도 제동이 크게 밀리지 않고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일리카로 사용하는 데 무리 없다.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으로 말리지 않는 기본도 잊지 않았다. 답력은 살짝 무겁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결론을 낼 시간이다. 가성비가 좋다. 4억에 육박하는 차를 가성비가 좋다고 하는 게 웃기지만 따지고 보면 진짜 가성비가 좋다. 우선 이렇게 스포티한 디자인의 럭셔리 GT 쿠페는 DBS 슈퍼레제라가 최고다. 롤스로이스 레이스보다, 벤틀리 컨티넨탈 GT보다 훨씬 잘 달리게 생겼고 젊다. 더 비싸거나 비슷한 가격대에서 이 그림 풍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 두 번째는 출력이다. 3억원대에 700마력이 넘는 하이엔드 GT카는 거의 없다. 슈퍼카를 제외하면 DBS 슈퍼레제라가 유일하다. 비싼 차를 살 때는 그만큼 얻는 게 있어야 합리적인 소비다. 뛰어난 외모와 독보적인 성능, 거기에 브랜드 파워까지. 똑똑한 부자들의 차고에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가 왜 세워져 있는지 이제 알겠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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