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야기♧

차천자(노시종외조부)이야기

우리둥지 2019. 4. 3. 11:46

[이규태 역사에세이] 신흥교주 차천자 이야기

3.1운동 좌절감 이용 보천교 만들어...야한 옷 여관이 술시중

정읍에서 30리 떨어진 입암면 대흥리의 풍수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누가 보아도 관이나 갓을 쓰고 있는 듯한 갓 바위가 있어 천관산이요 천하를 다스릴 천자가 태어나 크게 대흥할 땅이다. 대흥동 맞바라지에는 제영봉이 있고 윗마을 이름은 왕심리다. 인근 들판이 '정감록'에 신인이 태어난다던 해도다. 이 모두 이곳에 천자궁을 짓고 천자로 군림한 차천자가 지은 지명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지명을 천자출현에 부합시킨 것이니 이 곳 찾는 데 머리도 많이 썼으려니와 대단한 지모의 소유자임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한다.

1920년대의 그 현장에 가보기로 한다. 동구에 들어서면 길 양편으로 나지막한 같은 규격의 초가 1000호가 줄지어 있는데 팔도에서 모여든 신도들의 집이다.천자궁으로 통한 이 길을 종로라 하는데 조금 걸어 들면 종각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천자를 상징하는 노란 놋쇠종이 걸려있는데 서울 종로의 종보다 크다. 대궐 정문이 삼광문으로 우람한 3층 지붕으로 돼있어 이 문을 드는 이를 압도시킨다. 그 문을 들어서면 수백간짜리 기와집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부인들이 사무를 보는 총의원이, 왼편이 남자들이 사무를 보는 총정원이다. 복판에 경복궁 근정전을 본뜬 본전을 십일전이라 하는데 주역에 나오는 토자형 구조로 내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들면 오색단청이 된 아름드리 원주들이 수십길 뻗쳐 있고 그 복판 계단위에 용트림 기둥으로 받친 성소 삼광단이 차려져 있는데 그 뒤켠에는 산천 일월성진이 그려진 병풍이 처져 있다. 이 천저궁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한시간 이상이 걸리는 규모였다. 처음에 천자를 상징하여 황기와로 구워 지붕을 얹었더니 경찰이 금지하여 여느 기와로 바꿔 얹었다하며 목재는 멀리 백두산에서 실어나르느라 대흥리에 임시 정거장까지 두었었다한다.

직접 차천자를 뵌 분의 기록에 보면 정전의 양편에는 팔뚝만큼 굵은 황촉이 켜져 있고 세그루의 커다란 석상이 나열해 있는데 바로 이들이 믿는 보천교의 주신인 옥황상제상이다. 당아래에는 기골이 장대한 육척장신의 역사 둘이 시립하고 있으며 약 10분 동안 허리를 반쯤 숙이고 기다리고 있으니 통천관을 쓴 40대중반의 차천자가 나타난 것이다. 키는 6척이요, 체구는 비대한 편이며 얼굴은 타원형으로 이마와 콧등이 펀펀하고 수염을 거꾸로 세워 사나운 인상을 주었다.

신도들이 호칭하는 용코 용수염인 것이다. 시종들이 굴복사례하고 있는 가운데 이 탐방자와 문답이 시작된다. 분분한 조선의 민심을 여하히 통일하겠나이까고 묻자 인심을 통일하는 데는 종교아니곤 안되며 종교중에서도 서양의 기독교같이 국가와 밀착돼 있으면 안된다했다. 조선문제의 해결은 그 시기가 불원하다길래 장차 조선이 독립되면 무슨 정체를 쓰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때 민심의 동향을 보고 정할 일이라고 회피했다. 그리고 보천교도들이 가산을 모두 팔고 탕진한 것이 선생의 명령이냐고 묻자 하늘이 준 재산은 하늘 일에 쓰면 네것 내것이 없다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왜 장발시키느냐고 묻자 기독교도들이 단발하는 것은 흉하게 보지않는 그 근본이 틀렸다고 했다.

이 탐방자는 오신 손님이니 융숭하게 대접해 보내라는 분부대로 거창한 주안상를 받는데 그릇과 수저가 모두 은제요 느슨한 옷차림의 여관이 술을 들고와 차천자가 친히 권한 것이라며 따랐다. 보천교주 차천자의 본명은 차경석으로 아버지 차치구는 동학혁명때 전봉준의 참모로 싸우다가 관군에 잡혀 포살당했고 당시 15세의 차경석은 울분을 품고 동학당에 들어 갔다. 동학당을 기반으로 형성된 일진회의 전주 지회장을 한것도 그런 연분에서였다. 전라도에서 교세를 떨치고 있던 증산교의 교주 강일순은 바로 차경석의 이모부요 그 교권 계승에 차경석이 뛰어들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그리고 교권 이양을 뜻하는 전바리(전발)를 받는다.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 12월12일 경상남도 함양 지리산 줄기에 있는 대황산 정상에서 대황 곧 천자로 즉위하는 제천의식을 올렸다. 그 휘하에 60벼슬아치를 두었는데 그 벼슬 이름들이 기발하다. 동서남북하는 방위, 금목수화토하는 요일, 갑을병정하는 십간, 자축인묘하는 십이지, 동지 소한 대한하는 (이십사기절), 간손곤건하는 팔괘로 벼슬이름을 삼았다. 그리고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자기 어머니를 겁탈하여 태어났으므로 자기 이름은 정경석이라하여 당시 민중을 사로잡고 있던 정감록에 결부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정읍 입암아래 천자궁을 짓고 신도를 모으는데 1백명을 모으는 자에게는 국권이 회복되면 군수벼슬을, 1000명을 모으는 자에게는 감사벼슬을, 1만명을 모으는 자에게는 대신 벼슬을 약속하는 증서를 써주었다.

이렇게 모은 신도의 입교 의식을 본다. 입신한 교도들은 목욕재계하고 '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옥황상제강령지위란 신위를 복판에 두고 제상이 풍성하게 차려지고 스스로를 환난에서 구제해준다는 태을주라는 주문을 합송하며 사배를 하는데 허공에 코끼리 호랑이 선녀선동 관음보살 등 헛것들이 보일때까지 계속한다. 보통 침식을 하지않고 사나흘동안 이 태을주 사배가 계속되기에 허기가 지고 현기가 나 헛것이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 가리켜 눈이 떴다해서 개안이라했다.

개안으로 얻는 이득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은 물론 자손 삼대까지 부자가 된다. 2) 악질을 피하고 숙병을 피하게 된다. 3)국권회복과 동시에 신도들은 이전 신분과는 아랑곳 없이 양반이 된다. 4) 삼재팔난을 면한다. 5)몸을 뜻대로 움직이게 되어 공중비행을 자유자재로 한다. 6) 상투를 보존함으로써 상제께서 그를 통해 보호를 한다. 7)죽어서도 선경에 들어 살게 된다. 몽매한 민중으로서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입신조건들이 아닐 수 없다. 이 개안이 초등교도요 그후 2여년간 태을주 사배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옥황상제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를 얼굴을 보았다해서 승안이라 했다. 이것이 중등교도요 의식하지 않아도 태을주가 절로 튀어나오고 사지를 들어 약동을 하며 춤을 추는 망아단계를 전신이라하며 이 단계에 이르면 고등교도다. 전신도가 되면 앉아서 만국이 돌아가는 일을 훤히 볼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고 산채로 지옥에 들락날락하여 죽은 부모도 만날 수 있다했다.

당시 함경도 덕원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제령위반'조목으로 기소당한 차천자교도 일행 14명에 대한 기소장을 보면 이렇다. 차천자교에 들면 질병에 걸리지 않고 죽었던 부모를 만나볼 수 있다하고 일단 교에 들면 한 사람당 열사람을 입교시키고 입교금으로 10원씩을 받는다. 이렇게하여 가입인원이 15만 5000명이 되면 일제히 일어나 독립운동을 할터인데 지금 그 수령되는 차경석이 360명을 거느리고 전라도 지리산에 들어가 총기와 화약을 만드는 중이라했다. 그리하여 오는 갑자년(1924) 음력 3월 15일 차경석이 조선국의 황제로 즉위하고 신도들은 응분의 높은 벼슬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 한국 관제에 따른 벼슬과 품작을 응분의 헌납자와 신심의 농도에 따라 증서로서 보증했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국권을 빼앗겼을 때 민중의 불안 심리를 수렴하는 유사종교들이 창궐했었다. 그리고 3·1운동의 좌절로 앞날이 안개속에 잠기면서 다시 그 불안 수렴의 유사종교가 창궐했으며 가장 폭넓은 수렴에 성공한 것이 바로 차천자의 보천교였다. 보천교에는 유사종교의 공통점인 민중염원의 공통분모를 모조리 교리에 수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병장수 호의호식은 만인에게 공통된 숙원이지만 살아서 지옥에 가 돌아사신 부모를 뵈올 수 있다는 것은 한국적 효사상의 수렴이다. 그밖에 10%미만의 극소수 양반위주의 사회였던데 대한 상민의 반동과 선망이 수렴되고 수탈만 해가는 관료에 대한 민중의 반감과 선망이 수렴되었으며 단발 양복 등 새 풍조에 대해 반동을 상투와 푸른두루마기를 고집하는 것으로 수렴한 것이다. 주의를 끄는 것은 3·1운동후에 팽배돼 있는 국권에 대한 혼미와 불안을 수렴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물론 그 조건이 탄압받는 빌미가 되긴했지만 당시 한국인의 잠재된 민족의식의 일단을 반짝 보는 것만 같다. 또한 유사 이래 현재까지도 과학이나 논리로 나누어지지 않는 이 한국인의 샤만적 심정의 20세기 전반의 존재형태로 이 차천자는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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