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대표적인 남원의 기록물은 용성지이다. 용성지는 다른 기록물과는 다르게 남원에 관한 종합보고서이다. 개인의 문집은 개인의 경험과 행적만 기록되었지만 용성지는 그것을 모두취합해서 균형있게 편집했다는 뜻이다. 서남대 이현식교수의 남원문화대학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용성지』 편찬과 체제는 조선 조정에서 만든 『여지승람(輿地勝覽)』, 지방에서 만든 평양의 『평양지』나 순천의 『승평지』 등의 영향을 받았다. 『여지승람』은 성종 때(1481년, 성종 12) 처음 만들어진 후에 중종 때(1530년, 중종 25) 증보되고 숙종 때 다시 증보되었는데, 숙종 때의 자료가 『용성지』 편찬의 기본 자료가 되었다. 『용성지』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차례 편찬되고 여러 차례 보완되었다. 1699년(숙종 25)에 남원부사 이구징(李耈徵)은 이도(李燾)·최여천(崔與天) 등에게 여지승람의 기초자료 수집과 함께 『용성지』를 찬수하도록 시켰다. 이 작업은 3년 후인 1702년 완성되었다. 이후 1708년 누락된 부분을 모아 보유(補遺)편을 만들어 붙였고, 1752년(영조 28)에 다시 증보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성지』는 모두 11권 2책이다. 1921년에 前 승지 이병혁(李秉爀)은 김교우(金敎友)등에게 『용성지속편』 을 편찬하도록 부탁했다. 이들은 원 『용성지』에 누락된 부분과 원 『용성지』 편찬 이후에 변한 내용들을 묶어서 속편 13권 5책을 만들어 원 『용성지』와 함께 묶었다. 그래서 『용성지』는 현재 원 『용성지』와 속 『용성지』를 합하여 25권 7책으로 전해온다. 『용성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는 남원의 산천과 형승에 관한 내용이 있고, 마을과 성씨에 관한 내용이 있으며, 성곽과 누정에 관한 내용, 학교와 서원에 관한 내용이 있다. 또한 시와 이야기가 있고, 효자 효부의 이야기가 있고, 진사와 생원의 이야기가 있고, 이곳에서 살고 죽은 사람의 사연이 있다. 우리는 『용성지』를 통해서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사연을 지니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개인의 문집이나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용성지』의 기록과 함께 묶으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종합적인 남원의 옛 모습을 재구할 수 있다. 남원이 새로운 콘텐츠를 찾으려고 할 때 그것은 어느 무엇보다도 기초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우리고장 남원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의 대표적인 고장으로 300여년 이상을 활용하고 있음이 용성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원이 있기 까지는 용성지라는 기록물과 선조들의 슬기가 오늘에 이르렀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풀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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