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民意)를 무시하거나 야당을 얕잡아보는 정치가 성공했던 역사는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뜻을 억누르고 야당을 깔아뭉개는 정치, 한순간이야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야 있지만, 긴 시간의 결과로 보면 반드시 패망하고 말았던 것이 역사적 진실이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의 위임을 받아 백성들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겠다던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기만 하면 백성들의 뜻을 무시하고, 야당을 업신여기면서 독단적인 사고로 정치를 했던 경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런 정치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고대의 제왕(帝王) 시절이던 요·순 시대에도 그런 정치는 없었습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요·순이라는 성인 정치가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언제나 꼴 베는 나무꾼에게 가서 의견을 묻고, 그들의 뜻에 따르는 정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그런 뜻을 이어받았던 다산도 그와 비슷한 뜻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백성 편하게 할 정책 알고 싶거든 欲識治安策 마땅히 농부에게 묻는 것이 으뜸이라오 端宜問野農 「유림만보(楡林晩步)」
3정의 하나인 전정(田政)이 문란해졌고, 환곡(還穀)제도가 무너져 착취에 시달리는 농민문제를 누가 제일 잘 알겠는가요. 역시 농사짓는 농민들만이 그 해결책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다산의 생각은 역시 옳았습니다. 요·순 같은 성인들도 무지렁이 백성들의 뜻을 살폈다고 했고, 다산 같은 대 경세가도 들판의 농부에게 찾아가 정치의 진실을 물으라고 했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요.
요즘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천주교 신부·수도자·수녀들 수천 명이 시국선언을 하고 시국 미사를 올리면서 국기가 무너진 국정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수천 명이나 시국선언에 참여하여 국정원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원불교 교무, 개신교 목사들, 대학생들은 물론 고등학생들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는데, 정부·여당·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니 이런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요.
겹겹이 쌓인 난제를 풀어보자고 제일 야당의 대표가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한 때가 언제인데, 청와대는 또 묵묵부답입니다. 꼴 베는 일꾼, 들에서 일하는 농부의 의견을 들었던 성인들이 요·순이었는데, 민주주의 국가의 중심축의 하나인 야당과의 대화도 거부한다면 이게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그것도 야당 당원도 아니고,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던 제1야당의 대표인데 말입니다.
공자나 다산이 살아계셔서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고 말할까요. 지금의 사태, 안이하게 구경만 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비록 지지율이 높다고 고자세일 수 있지만, 민심의 이탈은 순식간입니다. 불만과 분노가 쌓이면 반드시 터지고 마는 것이 민심입니다. 여야의 영수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도 풀기 어려운 사건인데, 만나주지도 않는다니 너무 기가 막힙니다. 공자나 다산의 말씀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