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이야기♧

"나쁜 사람들이네...차라리 문근영을장관 시겨요 !"

우리둥지 2009. 9. 22. 17:10

"나쁜 사람들이네... 차라리 문근영 장관 시켜요!"
아이들 보기 민망한 인사청문회, '19금' 묶어야 하나요
09.09.22 08:45 ㅣ최종 업데이트 09.09.22 10:23 서부원 (ernesto)

  
민주당 박지원 박영선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관한 자료를 샅샅이 검토하고 있다.
ⓒ 남소연
박지원

"선생님, 위장전입이 뭐예요? 세금탈루, 다운계약, 명의신탁이라는 건 또 뭐고요. 병역비리라는 것 빼고는 다 못 알아듣겠어요."

 

중학교 1학년 사회수업 시간. 수업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질문이 쏟아졌다. TV 등에서 요즘 한창인 인사청문회를 지켜봤던 모양이다. 한자말이거나 영어가 마구 뒤섞여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며 설명해 달라는 거다.

 

그냥 두루뭉수리 넘어가려 했는데, 이곳저곳에서 손을 드는 바람에 마치 경찰에 붙들린 죄인처럼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쉬운 단어를 써서 조곤조곤 답변하다보니 45분짜리 수업의 절반 가까이 지나버렸다. 진도를 나갔다면 꾸벅꾸벅 졸았을 녀석들조차 무슨 재밌는 이야기인가 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다면 아주 나쁜 사람들이네요. 벌을 받아야 할 그런 사람들을 왜 장관 시키려는 거죠? 옛날 장관들도 다 이랬을까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진 못해도, 어린 아이들일수록 '장관'이나 '국무총리'라는 말은 대통령처럼 그들의 드높은 꿈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차츰 나이를 먹어 가면 그것이 허황된(?) 꿈이라는 걸 직시하게 되고, 이내 적성과 특기를 찾아 장래희망을 설계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의 '꿈'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기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고위공직자들은 국가의 품격을 드러내는 '얼굴'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우리 사회 장삼이사들보다 훨씬 엄격한 법적,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지나친 바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통 사람들은 적어도 장관 정도라면 털어서 먼지 안 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인사청문회를 경험하면서 그런 바람은 일찍이 접었고, 고위공직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우리 사회를 향해 냉소를 던졌다. 철 모르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조차 비웃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장관·총리감은?

 

어차피 한 시간 수업 공친 셈치고, 어떤 사람이라야 높은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앞 다퉈 손을 들며 아이들다운 치기 어린 주장들을 쏟아내었다. 개중에는 어차피 우리 사회는 이미 썩었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철든' 아이도 있지만, 대개는 기성세대가 귀를 기울임직한 쓴 소리가 이어졌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뇐 것일지언정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여전히 도덕적 심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던진 '순수한' 주장들을 간추려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자기 자식 좋은 학교 보내기 위해 메뚜기마냥 이리저리 주소지를 옮겨 다니기보다는 자기가 사는 곳의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고 앞장서서 노력하는 사람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또, 집은 재산을 늘리기 위한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의 안락한 보금자리 그 이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했다. 좁은 집에 살아도, 경차를 몰아도, 모아둔 재산 없어도 행복하다고 남들 앞에서 뽐낼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남다른 주장을 내놓은 아이도 있었다. 남 이름을 빌려 재산을 감추고, 세금탈루 의혹에 자신은 몰랐다며 발뺌하는 모습보다는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베풀고, 구호단체 등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는 사실이 언론 등에 밝혀져도 애써 숨기고 겸손해하는 사람을 보았으면 한단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차라리 문근영과 김장훈을 장관 시켜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끝으로, 내 자식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다른 아이들도 내 자식과 다르지 않다며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아빠와 함께 인사청문회를 줄곧 봐왔다는 한 아이는 혀를 끌끌 차며 '어른스럽게' 말했다. TV 앞 아빠의 흉내를 내는 거였다.

 

"제자들 앞에서 올바름을 몸으로 보여줘야 할 교수들이 관행이라며 제자들의 논문이나 베껴먹고 있으니. 쯧쯧. 이제 이런 모습 아주 넌더리가 난다."

 

지금껏 그래왔듯 몇몇 신문과 방송에서 사소한 도덕적 흠결이 업무 능력을 가려서는 안 된다며 후보자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마치 도덕성과 배치되는 듯 묘사하는, 그들이 강조하는 업무 능력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재테크 잘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인맥 관리 잘하며, 자신을 간택한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그런 걸 의미하는 걸까. 진정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얼굴로 당당히 내세울 수 있고, 수업 시간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귀감으로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고위공직자를 보고 싶다.

 

웬만한 도덕적 흠결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자상한' 배려는 집어치우고, 부디 이 시대 '청백리'로 칭송받을 만한 고위공직자를 만나고 싶다. 사실 우리 사회에 그런 분들 차고도 넘친다. 다만 그들에겐 '힘'이 없을 뿐.

 

의혹과 비리로 얼룩져 있지만 어쨌든 인사청문회가 대충 마무리돼 간다.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히지 않는 한 그들 모두 무사히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영전하게 될 것이다. 거창하게 취임식도 열 것이고, 장관입네 하며 고개를 뻣뻣이 세운 채 수많은 부하들의 조아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을 떠올리니, 미래에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아이들 보기 민망하다. 이를 통해 아이들 머릿속에 우리 사회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시나브로 쌓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인사청문회를 아예 보지 말라고 미리 얘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