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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한지 역사 공부

우리둥지 2009. 7. 19. 19:19


2009. 7. 11 장마로 장대비가 내리는 속에서 남원문화대학 제13주는  "남원과 한지의 역사"란 주제로 (유)지리산 한지 김동훈 대표이사의 강좌를 가졌다.

김동훈 대표는 남원한지를 산업화하신 김시곤선생님의 3째 자제로 가업을 더욱 살리어 현대적 종이산업으로 발전시킨 차세대 기업의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김대표는 한지의 명칭과 유래 그리고 남원한지의 명성은 전주 원주보다도 앞서있었다며, 남원한지의 명성을 소개하며, 한지라는 용어는 1950년 이후에 사회가 서양문화 환경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한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겨울에 원료를 거둬들여 찬물에 담가 좋은 질의 원료를 만들어 寒紙(한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華紙, 일본의 和紙에 대응하여 韓紙라 자연스레 부르게도 되었다고 한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제조법을 이용해 만든 종이로 우리민족의 얼과 혼이 단긴 우수한 문화유산이다. 한지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제지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악3호 고분에 한지를 든 그림이 벽화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  불교가 전래되어온 4세기경에 제지술이 유입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또한 고구려 담징이 610년 일본에 종이제지술을 전하였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11세기에 불경 조판 사업과 함께 서적 간행물로 인해 종이 생산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운영의 종이생산 시설인 조지소설치나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우리 한지를 조공지로 공납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종이의 발전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종이의 질이 이전 시대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한지의 우수성은 여러 곳에서 실증되고 있다. 첫째 수명이 길다.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200년 전의 것이다. 또한 갑옷을 만들어 입었을 정도로 질기다는 것이다. 광택이 뛰어나고 먹물 번짐이 좋아 중국에서는 한지에 글씨를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방온, 방풍효과나 습도 조절능력, 냄새를 제거하는 능력 등은 여러 가지 자료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렇게 한지는 우리 조상들에게 서화용, 건축용, 전쟁용에서 부터 각종 생활도구까지 만들었으며, 요즘에는 한지 옷이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현재도 한지 연구가들에 의해서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남원한지의 우수성은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거론되고 있다. 남원한지가 우수하다는 대목들이 여러차례 거론되기 때문에 우리고장 닥나무를 통해서 만들어진 종이의 품질이 탁월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서 남원의 지장(종이 만드는 기술자) 수가 가장 많이 활동하였음도 알 수 있다.

남원과 한지의 역사를 통해서 남원이 그 명성과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광치농공단지 지리산 한지 공장 견학과 한지 만들기 체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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