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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崔富子집 가훈.

우리둥지 2009. 3. 4. 16:59

  경주시 교동( 본채외에는 요석궁 음식점으로 변함)


9대 진사를 하고 12대 만석을 한 집안은 조선에는 최부자 뿐일 것이고 그 가훈과 원칙은

 

1. 과거를 보되 진사(벼슬이라고 하기보다 양반신분의 최소한이 자격임)이상은 하지 말라

 

2. 재산은 만석 이상은 모으지 말라(그 이상은 소작료를 낮추어 소작인과 공생함)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수입의 1/3은 접대용으로 100명이 넘으면 양식을 주어 소작인이 접대함)

 

4. 흉년에는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어려울 때 헐값에 사는 것은 양반의 처신이 아니며 원망의 대상  이다)

 

5.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은 무명옷을 입어라(보릿고개에는 쌀밥을 금하는 등 절약과 검소를 익함)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소작수입의 1/3은 빈민구제 용으로 사용함)

 

 육연(六然 : 수신의 가훈)은 온갖 다양성을 넉넉하게 수용하는 관용과 용인의 수신인 바 종손은    매일 아침 문안시에 육연을 붓글씨로 육연을 적었다고 하는데 내용은

 

①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②대인애연(對人靄然 :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여)

③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나며)

④유사감연(有事敢然 :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고)

⑤득의담연(得意淡然 : 뜻을 얻었을 때에는 담담하게 행동하며)

⑥실의태연(失意泰然 : 실의에 빠졌을 때에는 태연하게 행동하라)이다

 

 

최부자집이 경주시 내남면 게무덤에서 200여년을 살다가 요석궁 터에 들어다 집을 짓은 시기는 최염씨의 7대조인 최언경(1743~1804)로 약 200년 전인데 부지 2,000평에 99칸에 노비가 100여명이었으나 1961년에는 47칸으로 줄어있었고 1970년의 화재로 사랑채도 불타 주춧돌만 남고 안채와 문간채 창고만 남아있는데 사랑채의 화강암주줏돌은 전성기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출입한 인물로는 신돌석(의병장) 장군이 피신하여 있었고 현재의 요석궁 한식집이된 대들보를 혼자 들어서 설치했다고 전하며 면암 최익현(1833~1906)이 의병을 일으킬 때 수백명의 수행원과 묵고 가면서 상당한 거사자금을 받아서 갔고 스웨덴의 구스타프 국왕도 왕세자 자격으로 머문 적이 있으며 손병희 최남선 안희제 여운형 김성수 장덕수 송진우 조병옥이 다녀가고 의천왕 이강공이 묵고 가면서 문파(文坡)라는 호를 지어 주었고 육당 최남선과 위당 정인보는 1년이상 머물면서 동경지를 편찬하였으며 천도교 손병희도 자주 묵었기에 손병희와 최준은 보성학원 이사로 동아일보 발기인으로 참여 했으며 고려대를 세운 인촌의 영향을 받아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와 계림학숙을 세웠다.

 

▣ 만석꾼에서 빚쟁이로 변한 마지막 부자 최준

 

백산 안희제(1885~1943)와 백산상회를 설립해 상해로 군자금을 보내다 부도가 나고 최준은 거금 103만원(벼 3만석)의 빚을 지게 되어 전 재산을 압류당하고 만석꾼에서 빚쟁이가 되었으나 뜻밖에도 식산은행 총재 아라가는 거액의 빚을 탕감해 주어 재산의 절반 정도를 찾았는데 탕감이유로는

 

 

1.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과 아라키이 개인적인 호감이 작용하였다는 것과

 

2. 보증을 서게하고 빚을 지게 하여 이를 탕감해 주는 대신 총독부에 협조하게 회유 하려 했다(동의대 최해진교수)

 

3. 최부자의 고가를 환수하여 신라 박물관으로 만드려 했고 최준은 사후에 제공하기로 했으나 해방이 되어 면하였다.

 

해방 후 백범이 최준을 만나자 치하하면서 자금 명부를 보여 주였는데 2년전에 작고한 안희제를 통해 보낸 돈을 안희제가 최소한의 활동비 조차 쓰지 않고 모두 보냈음을 알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준의 유산은 후손에게 전해지지 않았는데 대학을 설립할때 수백 정보의 부동산과 집의 장서 8,000여권을 희사했고 6.25 후에도 경주 집을 포함한 나머지 재산을 털어 경주의 계림학숙을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학을 이병철씨에게 넘길 때 최준의 유언으로 한푼 받지 않았는데 대구대학은 한비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박대통령에게 넘어 가 영남대학이 생겼다고 한다

 

 

                         ( 최 부자집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