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섯 마당밖에 전하지 않지만,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었다고 한다. 윤달선의 광한루악부나 자하 신위의 관극시에 의하면 판소리에는 12곡이 있었고, 판소리 12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외에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강릉매화전, 가짜신선타령(숙영낭자전), 무숙이타령(왈자타령), 장기타령 등이 있고, 조선 순조 때의 문인인 송만재(宋晩載 1769-1847)의 ‘관우희(觀優戱)’라는 글에 의하면 ‘춘향전 이외는 모두 경정(逕庭)하여 정을 가까이 할 수 없다’ 고 한바와 같이, 외설(猥褻)하고 황탄(荒誕)하여 조잡한 내용을 가진 소리는 차차 안 부르게 되고, 고종 때의 신재효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변강쇠가, 적벽가 등 여섯 마당을 정리하였으나, 현재는 5마당만 전한다.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 내용이 간단히 적혀 있는 12마당은 다음과 같다.
① 춘향가
② 심청가
③ 흥보가
④ 수궁가
⑤ 적벽가
⑥ 변강쇠타령
⑦ 배비장타령
⑧ 옹고집타령
⑨ 강릉매화전
⑩ 장끼타령
⑪ 왈자타령
⑫ 가짜신선타령
이 열두 마당에 대해 1940년에 나온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에서는 ⑪이 무숙이타령으로, ⑫가 숙영낭자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왈자타령과 무숙이타령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은 것이므로 ⑫의 작품만 서로 다른 셈이다. 이 열두 마당 가운데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강릉매화전> <장끼타령>은 사설만 전해지고,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은 사설조차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열두 마당 가운데 오늘날까지 소리와 함께 전승되고 있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인데, 이것을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고 부른다. 12마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 딸인 춘향이 남원 부사 아들 이몽룡과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이별한 뒤로, 신임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히자,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구해준다는 내용의 판소리다. 문학성으로나 음악성으로나 연극적인 짜임새로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다섯 마당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역대 명창들 중 <춘향가>를 잘 불렀던 명창들은, 송홍록, 모흥갑, 고수관, 박유전, 김세종, 이날치, 장자백, 김창환, 송만갑, 정정렬, 임방울 등이다. 오늘날에 <춘향가>를 부르는 명창들은 박동진, 오정숙, 김여란, 김소희, 정광수, 성우향, 조상현, 성창순 등을 들 수 있다.
<심청가>는 어린 심청이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을 받고 뱃사람들에게 팔려 바닷물에 빠지나,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 황후가 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판소리다. <심청가>는 예술성이 높기로는 <춘향가> 다음으로 평가되며, 슬픈 대목이 많아서 계면조로 된 슬픈 소리가 많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바디는 김채만제와 정응민제 두 바디뿐이다. 김채만제는 한애순이 부르는 것으로, 박유전, 이날치를 걸친 것이고, 정응민제는 정권진이 부른 소리로, 역시 박유전과 이날치를 거친 것이다. 다른 바디는 전승이 중단되었거나 몇 대목만 전할뿐이다.
<흥보가>는 다섯 마당 가운데 가장 민속성이 강한 마당으로 꼽힌다. 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야기 속에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 있고, 또 놀보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담도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흥보가>를 재담소리라고 하여 한쪽으로 제껴 놓으려는 소리꾼도 있다. <흥보가>는 다른 다섯 마당과 달리, <가루지기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과 같이 민중의 해학이 가득 담긴 작품으로 꼽힌다. 지금 전해지는 <흥보가>에는 송홍록으로 부터 송광록, 송우룡을 거쳐 송만갑에게 이어지는 동편제 <홍보가>와 정창업에게서 김창환에게 이어지는 서편제 <흥보가>가 있다. 송만갑의 <흥보가>는 김정문을 거쳐 박녹주, 강도근이 이어 받았고, 또 박봉래를 통하여 박봉술이 이어 받았다. 서편제 <흥보가>는 김봉학, 오수암, 박지홍을 통하여 정광수, 박초월, 박동진이 이어 받았다.
<수궁가>는 병이 든 용왕이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에게 토끼를 꾀어 용궁에 데려오게 하나, 토끼가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세상으로 살아 나간다는 내용으로,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토별가> 등으로도 불린다. 동편제 <수궁가>는 송만갑과 유성준을 통해 전승되었던 소리가 전해지고 있으며, 강산제 소리로 정응민의 <수궁가>가 조상현 등에게 전해지고 있다.
<적벽가>는 중국 위나라, 한나라, 오나라의 삼국시대에 조조와 유비와 손권이 서로 싸우는 것이 내용으로 된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가운데 적벽강에서의 싸움을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다. <적벽가>는 내용에 따라 삼고초려, 장판교싸움, 군사설움타령, 적벽강싸움, 화용도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전승되고 있는 <적벽가>의 바디로는 박유전, 정재근, 정응민을 거쳐 정권진에 이른 유성준제, 송홍록,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을 거쳐 박봉술에 이른 송만갑제, 정춘풍, 박기홍, 조학진을 거쳐 박동진에 이른 조학진제가 있다.
<변강쇠타령>은 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하며, 신재효 사설집에 전승에서 탈락한 일곱 바탕의 소리 중에서는 유일하게 실려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는 부분적으로 불려지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기도 하다. 변강쇠타령은. 남도에 사는 천하 양골 변강쇠와 황해도에 사는 천하 음녀 옹녀의 이야기이다. 변강쇠와 옹녀는 성애만을 추구하다 자기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는데, 이들은 중간에서 만나 부부가 된다. 처음에는 도시 살림을 해보지만, 강쇠가 놀기만 일삼고 강짜만 부리기 때문에 살지 못 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놀기만 일삼던 변강쇠는, 장승을 베어다 때고는 장승 동티가 나서 죽는다. 변강쇠를 치상하는 과정에서, 치상한 후에 옹녀와 살기로 하고 변강쇠를 치상하려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땅에 드러 붙는 변괴가 생긴다. 그러나 사당 거사패들과 뎁득이가 지성으로 귀신에게 빌어, 붙었던 궁둥이가 떨어져 치상을 한다는 내용이다. 1971년에 박동진이 복원해서 부른 바 있다.
변강쇠가는 매우 음란한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인간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을 직접적 소재로 하여, 인간사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변강쇠가에 등장하는 떠돌이들의 뿌리뽑힌 삶의 모습이나, 장승으로 상징되는 지배 계층의 완강한 자기 보호 의식은 변강쇠가를 성애만을 노래한 작품으로 볼 수 없게 한다.
<옹고집타령(壅固執打令)>은 소설 <옹고집전>이 전하고 있어 내용을 알 수 있다. 옹진골 옹당촌(擁堂忖)에 사는 옹고집은 욕심 많고 심술궂어, 매사를 옹고집으로 처리한다. 옹고집은 또 불도(佛道)를 능멸하여, 동냥 온 중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도승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도승은 도술을 부려,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로 또 하나의 옹고집을 만든다. 허수아비로 만든 가짜 옹고집은 옹고집의 집을 찾아가 진짜 옹고집을 내어쫓고, 그의 아내와 같이 산다. 진짜 옹고집은 가짜에게 쫓겨난 후, 갖은 고생 끝에 개과천선하고, 도사의 용서를 받은 다음, 다시 집에 돌아와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옹고집은 조선조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서민 부자층을 대변하고 있는데, 그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사회의 일반적 규범을 벗어나는 행동이 서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실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옹고집은 놀보와 같은 인물 유형으로서, 조선조 후기 화폐 경제를 발전과 더불어 심화된 계층간의 분화와 갈등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동진에 의해 복원되어 불려진 바 있다.
<배비장타령(輩裨將打令)>은 소설 <배비장전>이 남아 있어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서울의 김경(金卿)이라는 양반이 제주 목사가 되어 부임하는 길에, 서강(西江)사는 배선달을 비장(裨將)으로 데리고 간다. 배비장은 도덕군자인 체하는 사람으로, 제주에 도착하여 주색을 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내는데, 상관인 제주 목사의 명을 받은 기생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의해, 애랑의 유혹을 받고 애랑의 집에 찾아갔다가 알몸으로 뒤주 속에 갇힌 채 바다에 버려진다. 배비장이 버려진 곳은 바다가 아니라 사실은 감영의 뜰이었는데, 배비장은 이를 모르고 헤엄쳐 나오다가 둘러선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행실의 바름을 뽐내던 배비장의 비속성이 드러나고, 형식에 치우쳐 공허한 유교적 도덕 관념이 통렬하게 풍자된다. 최근에 박동진에 의해 판소리로 불려진 바 있다.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은 매화타령이라고도 한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되어 있으나, 현재 소리는 전하지 않는다. 1992년 강릉매화타령의 사설을 바탕으로 한 <매화가(梅花歌)>라는 소설이 발견되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강릉 부사의 책방 골생원이 강릉의 일 등 명기 매화를 만나 즐겁게 지내는데, 서울에 와서 과거를 보라는 부친의 편지가 온다. 서울에 온 골생원은 과거 시험 답안에 매화를 그리워하는 시를 써내고 낙방하여 강릉으로 돌아온다. 강릉 부사는 거짓으로 큰길가에 매화의 무덤을 만들고, 매화가 죽었다고 한다. 골생원은 매화의 무덤에가 통곡하고, 매화의 초상화를 그려 껴안고 지낸다. 그러다가 황혼 무렵, 사또의 지시로 매화가 귀신인체하고 골생원과 만난다. 다음날 매화는 골생원을 나체로 경포대로 유인하고, 골생원은 매화와 함께 자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사또에 의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매화타령은 타락한 인물인 골생원에 대한 풍자와 회화를 통하여, 삶의 건전성과 균형감각을 일깨우고자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장끼타령>은 <자치가(雌稚歌)>라고도 한다. 소리는 실전되었으나, 소설 <장끼전>이 전하고 있어서 내용을 알아 볼 수 있는데, 장끼가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콩을 주어 먹다가, 차위(짐승을 잡는 틀)에 치어 죽자, 까투리는 여러 새들의 청혼을 받게 되나, 결국 문상 온 홀아비 장끼에게 시집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등의 교훈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여성의 정조 관념에 대한 풍자와 기층 민중에 대한 참혹한 수탈의 양상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박동진에 의해 판소리로 불려진바 있다.
<무숙이타령>은 <왈자타령(曰者打伶)>이라고도 한다. ‘왈자’는 건달을 가르키는 말인데, 중고제명창 김정근(金定根) 이 잘 했다고 하나, 소리는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1891년 소설 <계우사(溪友辭)>가 <무숙이타령>의 사설 정착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주인공 김무숙은 대방왈자로, 서울 중촌 갑부의 아들이며, 여자 주인공 의양은 평양에서 선발되어 궁중에 바쳐진 내의원 소속 기생이다. 의양을 한 번 본 무숙이는 애혹하여, 의양이를 기적에서 빼내어 함께 살림을 차리게 된다. 의양은 살림을 제법 규모 있게 꾸려나가지만, 무속이는 여전히 방 탕한 생활을 한다. 보다 못한 의양은 무속의 본처, 노복 막덕이, 대전별감 김철갑, 다방골 김선달, 평양 경우인 등과 공모하여, 무숙을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빠지게 함으로써, 마침내 개과천선케 한다는 것이 <계우사>의 내용이다. 이로 보아, 무숙이타령은 18세기이래 서울에 도시적 유흥이 뚜렷한 사회적 현상으로 대두한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의 기생적 존재인 왈자의 형태를 퐁자 교정함으로써, 새로이 등장한 평민 부호층의 삶에 대한 균형 감각을 일깨우고자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짜신선타령(假神仙打令)>은 사설이나 소리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 은 알 수 없다. 1810년경 송만재(宋晩載)라는 사람이 쓴 <관우희(觀優戱)>에 등장하는데, <관우희>에 ‘光風癡骨願成仙路人金剛門老禪千歲海挑千日酒見斯何物假喬佺(생김새는 그럴 듯해도 못난 사람이 신선되려고, 금강산 들어가 노승을 찾아, 신선이 먹는다는 천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와 천일주를 먹었었다니, 무엇으로 속였는가, 가짜 왕자교(王子喬: 신선 이름임)와 악전(齷佺: 신선 이름임)이여.)’ 라는 구절이 있어.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노승에게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와 술을 구해 먹었으나, 속고 만 이야기라는 정도의 윤곽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