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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님은 먼 곳에’를 함께 보고 나서 제일 후련한 장면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면서 월남까지 남편 상길을 찾아 간 순이가
死地에서 빠져 나온 상길의 뺨을 무려 다섯 대나 후려갈기는
장면을 꼽았다.
마치 내 뺨을 얻어맞는 기분으로 그 장면을 보았다.
아내한테 잘해야지~
이준익 감독은 또 허를 찌른다.
보통 같으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온 남편을 끌어 앉고 통곡을 해도 부족할 텐데,
아니 남편 못지않은 생고생과 치욕적인 일을 겪으면서
찾아가 만난 남편을 다짜고짜 뺨을 후려갈기는데,
석대만 때려도 상식을 넘는 일인데
거기에 두 대를 더 보탠다.
일각에서는 사랑도 하지 않는 남편을 찾아 이역만리 월남으로 떠난
순이의 얘기가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지금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때 월남파병이 한창이던 한국적 상황은
시어머니가 3대 독자를 찾아 월남으로 가겠다고 나서면
사랑을 따지기 전에 며느리가 나서야 했던 상황였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시집에서 구박받아 친정에 가려해도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라면서 절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던 그 당시 친정 분위기도 순이의 월남행을 재촉했을 것이다.
지금에야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일이 요즘 벌어진다면 아마도
두말없이 ‘굿바이’ 일 것이다.
그래서, 상길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 순이한테서
뺨을 다섯 대나 얻어맞는 것은 당연하다.
그 뺨을 때리는 장면에 이준익 감독은 여러 의미를
담았을 것 같다.
첫째, 이 나쁜 놈아 니가 뭔데 나를 이렇게 고생시켜?
둘째, 애증이 겹친 사랑의 표현?
셋째, 이 철없는 남정네야, 니가 인생을 알기나 해?
뺨 좀 맞고 정신차리라는 의미?
그 상황에서 둘이 마주보고 슬로우모션으로
달려가 끌어 앉고 뺨을 부비면서 눈물을 흘렸다면
영화는 그야말로 삼류애정영화 또는 줄거리 구성이
엉성한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이 그렇게 만들리도 없었겠지만,
영화는 총탄이 날라 다니는 상황에서
졸지에 뺨을 얻어맞은 남편은 말없이 아내 앞에 꿇어 앉아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흑백화면으로 끝이 난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서 둘이는 그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잘 먹고 잘 살았을까?
영화 상영 두 시간여는 금방 흘러갔지만, 영화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자손이 귀한 종가집의 무겁기만 분위기, 사랑없이 결혼한 두 남녀의 비애,
다른 여자를 사귀면서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
상처받는 종가집 며느리,
구타가 만연했던 6,70년대 군 내무반,
어쩔 수 없이 남편 상길을 월남으로 가게 만든 군대 상급병의 이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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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남의 전쟁에 끼어 들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산화했던 비극적인 월남전쟁 등등
영화는 다양한 볼거리와 줄거리를 갖추고 있지만, 빈틈없이
흘러가다가 막을 내린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 문을 나섰다.
왕의 남자에서 라디오스타, 님은 먼 곳에까지,
이준익 감독은 보통 사람의 숨겨진
감정을 가장 잘 끄집어 내는 감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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