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이야기♧

공부하는 에티오피아 고위 공직자

우리둥지 2008. 6. 13. 18:17
2008.06.12 19:40:49

    "뻥을 쳐야 하나, 삶의 질을 논해야 하나?"

    중부전선에서 친환경 쌀을 생산해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는 토고미 마을의 한상렬 운영위원장은 지난 11일 아침 선택의 귀로에 놓였다.

    에티오피아의 농업 관련 전문가와 고위 공무원들이 한국 농업을 배우기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데 강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척 보면 압니다. 캐나다와 미국 등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귀담아 듣습니다. 소득이 높은 나라의 국민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일의 동기부여 등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반면 저소득 국가의 방문객은 `돈 많이 번다'고 뻥을 쳐야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마디로 으리으리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는 거지요. 오늘은 일단 뻥을 쳐야 할 것 같네요. 숫자나 지표를 중심으로 발전된 사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방문객들은 어떡게 합니까"

    "우리마을은 삼성전기 가족과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이분들은 가족과 함께 오는데 기관장들이 참석해 축사와 환영사를 오래 `떠들면'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새끼를 꼬거나 짚신을 삼는 데 오히려 관심이 많거든요"

    그 순간 에티오피아 농업연수단 13명이 도착했다.

    입구의 주렁 주렁 걸어 놓은 조롱박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자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풀 뿌리 이야기로는 오늘 재미가 없을 듯하다.

    "우리 마을은 승용차로 5분이면 휴전선에 도달하는 최전방 마을입니다. 예전에는 참 살기 어려웠는데 농산물을 공동 생산해 판매하면서 잘 살게 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을 먼저 바꾸고 그 다음에는 소득을 높이는 방안, 마을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목표를 뒀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도 졸거나 하품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중년이 넘어 보이는 이들은 한 마디 말이라도 놓칠 까봐 모두 메모에 열중이었다.

    순간 우리나라 공무원 등이 해외에 단체로 나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대개 단체로 해외에 연수가면 음주가무 등으로 아주 특별한 밤을 보낸 뒤 그 다음 날에는 술 냄새를 풍기면서 꾸벅꾸벅 졸거나 아래턱이 빠질 정도로 하품을 연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슨 관광서나 환경관련 시설 앞에서 단체로 `증명사진'을 박을 뿐 눈빛이 빛나지 않는다.(물론 열심히 배우기 위해 1~2인 규모로 배낭여행을 가는 경우 등은 이런 부류에서 예외로 해야 한다.)  

    이렇게 잘 살게된 경위를 들으며 열심히 필기를 하고 나자 질문시간이 돌아왔다.

    놀라운 것은 이미 점심시간이 돌아왔으나 탐구열과 질문이 대단했다는 점이다.

    "화학 비료를 씁니까?"

    "현재 주민들은 원주민입니까, 외지인 입니까?"

    "농산물의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합니까. 특히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한 방안이 있나요?"

    "오리농법으로 벼를 재배한 뒤 오리는 어떻게 처분합니까"(정답은 군부대 회식용으로 그냥 나눠주는 것)

    질문은 계속됐다.

    그들은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나가 담배나 피우는 우리의 모습과 달라 보였다.



    끝난 뒤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주민 스스로 삶의 질과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돌아가면 한국의 농업기술을 벤치마킹해 정책에 반영하고 싶네요"

    나는 그의 입에서 '삶의 질'이 나온 것에 놀랐다. 

    지구촌 가난의 대명사인 에티오피아에서 온 이들은 열등감이나 허세와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에 관심을 기울였다.

    희망의 빛이 보였다.

    마을 운영위원장도 한마디 했다.

    "생각 외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라도 더 알아가기 위해 질문을 많이 하니 하나라도 더 가르쳐 드릴 수 밖에 없지요. 사실 저도 예전에 일본에 가서 배워왔습니다. 트랙터를 개조한 차량은 호주 농장에서 배워왔구요"




    
    이들은 찾은 화천군 상서면 최전방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전 6.25전쟁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처음으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그들은 낯선 땅에서 생명을 걸고 이 땅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받쳤다.

    이들은 다음 날 춘천에 있는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관을 찾아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그들의 선배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유의 댓가는 희생이 따른다는 뻔한 이야기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이 크고 미국만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얼마전 에티오피아에 출장갔던 우리 공무원들은 참전관련 행사만 잠깐 참석하고 마치 지옥에서 탈출하듯 두바이로 날아가 2일을 머물고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학업에 뜻이 전혀 없는 이런 분들이 국제교류 실무를 맡고 있는 현실에서 저들의 눈물을 닦아줄 방법은 참으로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다만 열심히 공부하는 에티오피아의 지도자들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미래를 활짝 열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의 갈채를 보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참으로 무력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