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범과 우리에게 보내는 숭례문 사랑의 편지
2008년 2월 17일 (일) 11:4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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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소통의 문으로 복원되기를 기원하면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어느 날, 밀어붙이기식 개발계획에 의해 당신의 집이 도로로 잘려나가게 되었습니다. 보상문제로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곳을 전전하였지만, 넘을 수 없는 큰 벽에 부딪히고 두드리는 대문마다 열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참기 어려운 능멸감과 압박감을 맛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백년해로해야 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당신의 인생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꼬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엉뚱하게도 그 화풀이를 아무 죄가 없는 숭례문에게 하였습니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것이 현정부, 우리시대가 책임져야할 부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초기에 세워진 문화재가 책임질 부분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당신이 신문지상에서 언급한 대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집만 불태우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일면 기특한 생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자신의 몸집처럼 여기듯, 숭례문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생명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나요? 숭례문을 애도하는 분위기를 보세요. 시민들이 처참하게 화상을 입은 시신을 대하듯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지, 건물이 소실되어 재산상의 손해에 대해 아까워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숭례문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건축물입니다. 숭례문은 서울성곽의 여러 성문 중의 하나입니다. 인의예지신 중에서 남쪽을 뜻하는 예로서,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에서 숭례문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숭례문의 현판은 세로로 길게 세워서 달아 놓았습니다. 숭례문 그 자체는 화재예방 표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숭(崇)은 불꽃모양, 예(禮)는 남쪽의 불기운를 뜻하는 것입니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숭과 예의 글씨는 모양과 의미로 품위있게 불조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를 비웃듯이 밤에 도둑처럼 들어가 예의도 없이 숭례문에다 불을 질렀습니다. 숭례문은 문입니다. 그야말로 안과 밖의 들락날락거림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벽은 안과 밖을 구분하고 차단하는 것이며,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는데 있어 장애물이 됩니다. 벽만 있고 문이 없다면 안과 밖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숭례문은 예비적 통과장치로 정궁을 보기 전의 예고편인 셈입니다. 앞으로의 시공간적으로 펼쳐질 분위기를 살짝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방화대상으로 숭례문을 선택한 것은 경비가 소홀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닐 것입니다. 숭례문은 불기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당신의 처지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운명처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요? 도로에 걸쳐있어 도로살을 받게 된 당신집의 운명과 도로상의 숭례문의 운명을 같은 것으로 보았나요? 우리 모두가 숭례문이 말하고 있는 바를 알아채지 못하고 무시하는 동안에 당신과 숭례문은 운명적으로 만난 것일까요?
당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신의 불한당 같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우리사회의 잘못으로 모두 떠넘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늘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면서도 남의 운명을 점치는 철학관을 하였던 것은 아닌지요? 당신은 조선시대의 봉건적 사고방식을 갖고 소통의 문을 닫아둔 채, 곁을 지켜온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말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강짜를 부린 것은 아닌지요? 당신은 자신의 화기운이 틀어진 것도 모르고, 시너통과 라이터를 들고 다니면서 불을 질렀던 것은 아닌지요? 어찌되었든 당신과 우리사회는 서로 간의 기운소통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하게 나타났습니다.
숭례문 화재사고의 원인은 관리소홀일 수도 있고 소방작업의 미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보이는 벽,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한 소통의 단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으로 여기저기에서 목조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점검조치에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소통에 실패하고 능압에 걸린 방화범이 불 지르려고 노리는 것이 어찌 목조 문화재 뿐이겠습니까?
숭례문은 우리에게 불조심하라고 말해왔고, 예의를 지키고, 서로 간에 소통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숭례문은 국보1호이기 이전에 대문입니다. 숭례문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우리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외치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희생과 예의를 통한 시간ㆍ공간ㆍ인간 간의 소통입니다.
당신이 죄 값을 치른 후 쯤에는 아마도 숭례문이 복원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모든 죄값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 와서 숭례문에게 진정으로 사죄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당신과 숭례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당신과 아내, 숭례문과 우리 국민 모두가 소통하는 시대가 되어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또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숭례문이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화재현장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진 가림막 설치는 소통의 문을 닫고 능압을 일으키는 새로운 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원인과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 조치였습니다. 숭례문이 화상을 입고 죽어가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을 법한데, 자꾸 막고 가리는 것에 급급하니, 숭례문과 소통하고 싶은 시민들이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숭례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예고편일지도 모릅니다. 현판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그 현판이 소방관의 손을 뿌리치고 땅에 떨어져 버린 사실이 있습니다. 초기 진압과정에서 불길이 잠시 주춤하여 잡힐 듯 말 듯 하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심한 듯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결국 숭례문 자신을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숭례문이 우리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서로서로 소통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조인철 건축학박사·건축사 nanda38@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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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리용암
글쓴이 : 우리용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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