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이야기♧

난 이명박 후보가 2년전에 해던일을 알고 있다.

우리둥지 2007. 9. 12. 19:43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재중 기자]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라지만,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자의 군복무 시절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겠다.

그때는 정말 높은 사람이 찾아오는 게 싫었다. 별이 하나 떴다하면 일주일 전부터 쓸고 닦고 광내고,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지만 얼차려 빈도도 높아지고.

어쨌든 높은 사람이 찾아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 초등학교 시절, 언 손을 ‘호호’ 불며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에 하루 종일 서서 종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권력자에 대한 ‘울컥거림’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이명박 후보는 민초들의 이런 심정을 알기나 할까. 본인은 민심탐방이랍시고 새벽에 이태원 시장을 찾아가 쓰레기 수거를 하며 환경미화원들을 위로했다지만, 그 분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후보 방문에 앞서 용산구청은 새벽3시부터 서둘러 물청소를 하고, 주민들에게 “쓰레기를 조금만 내 놓으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용산구청 공무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이명박 후보는 그저 ‘높으신 양반’이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울컥거림’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님 사랑해요”를 연습하며 추위에 떨었던 그 아이들

▲ 지난 2005년 1월, 서울대공원 측이 작성한 '복지재단 초청 어린이 관람 계획' 문건 
나에게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울컥거리는 기억이 하나 더 있다. 2년도 더 된 이야기다. 지난 2005년 1월, 당시 모 월간지 기자로 일하던 나는 “이명박 시장의 대표적인 전시행정 사례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과천 서울대공원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이명박 시장이 아동복지시설 어린이 2000여 명을 서울대공원에 초청하는 ‘특별한 동물원 나들이’ 행사를 벌인다는 내용의 서울시 보도자료가 각 언론사에 대대적으로 뿌려진 직후였다.

타 언론사 기자들이 이명박 시장의 동선을 쫓는 동안 나는 어린이들의 동선을 쫓았다. 동물원 한 켠에서 한 무리의 어린들은 언 발을 동동구르며 “시장님 사랑해요”를 연습하고 있었고, 이 시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어린이들은 동물원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동안 식당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말 그대로 이명박 시장의 이명박 시장에 의한 이명박 시장을 위한 행사였던 것이다. 당시 내가 입수한 ‘복지재단 초청 어린이 관람 계획’ 문건에는 “시장님과 식사할 어린이 사전선정, 시장님 도착 전까지 돌고래쇼장 전원 사전대기, 시장님이 기다리시지 않게 버스 승차 유도” 등 주최 측의 불순한(?) 의도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몇몇 관계자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 시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거나 “내 목이 날아간다. 제발 기사 좀 내려달라”고 읍소하거나 “그 문건을 불법적으로 입수했다면 각오하라”고 협박하는 등 막말로 ‘난리 부르스’를 춰댔다.

가신들의 ‘과잉충성’도 경계하라

이번에 이명박 후보가 이태원 시장을 방문하면서 벌어졌던 해프닝을 접하면서, 기자의 뇌리에 2년 전 기억이 선명하게 중첩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정확하게는 ‘울컥거림’이란 감정의 중첩이다.

물론, 두 가지 사례 모두 이명박 후보의 ‘직접 지시’와는 무관한 사건일 것이다. 이 후보가 이런 소소한 일까지 직접 지시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에 그는 너무 바빠 보인다. 그렇다고 그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 김재중 기자 
다시 나의 과거 경험으로 돌아가겠다. 군복무 시절 ‘그 높으신 양반’들이 “내가 부대를 방문할테니 먼지하나 보이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 높으신 양반’이 “내가 갈테니, 코흘리개 꼬맹이들의 손에 태극기를 쥐어주고 거리에 서있게 하라”고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권력은 권력자 스스로만 낮출 수 있다.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만이 권력자의 의무가 아니다. 늘 주변을 살피며 가신들의 ‘과잉충성’ 또한 경계해야만 한다.

2년 전 그 아이들은 매우매우 추웠다. 오늘 용산구청 공무원들과 주민들은 새벽잠을 설쳤다. 이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했는지, 이 후보는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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