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씨름의 역사
씨름은 우리 나라 전 시기에 걸쳐 남성 놀이로서 대표적인 것으로 농경 사회에서 주로 농한기때 행해진 놀이이다. 씨름의
역사적 연원은 만주 즙안현 통구, 고구려 고분 각저총(角抵塚) 주실의 각저도에 나타난 씨름하는 광경으로 보아 고구려 대에서 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후 한서와 신채호의 《 조선 상고사》 를 들어 상고 시대에서 찾기도 하는데 우리 옛 문헌상의 기
록으로서는 고려 시대에 처음 나타난다. 후한서와 신채호의 책에서 나타난 씨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후한서를 보면 중국의
한나라 왕은, 부여의 왕이 제나라를 방문한 타국의 왕을 위한 환영 행사 로서 북치고 피리 불고 각저희를 하게 했다고 한다. 이 각저희가 씨름과
유사한 것으로 띠를 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의 우리 씨름과 비슷하다. 신채호는 《 조선 상고사》 에서 상고 시대 제의 장소 신소도에서
행하는 제사 예식으로서 여러 가지 기예를 시범하는 종목으로 "씰 흠"을 적고 있다.
이 "씰흠"을 씨름으로 추측할 수 있다 .
그림으로 만 남아 있는 고구려의 씨름 기록은 장천1호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무덤에는 시신을 모신 묘실과 그 앞의 전실등 두개의 방이
있는데 전실의 북쪽 면을 가득 채운 풍속도에는 사냥, 씨름, 나들이, 재주부리는 원숭이, 매사냥 등 고구려 사람들의 사는 모 습을 전해주는 각종
장면들이 한 장의 그림 안에 담겨 있다. 이 두 그림을 볼 때 고구려인들이 씨름을 매우 즐겨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나
백제에서 씨름이 행해졌는 지의 여부는 남아있는 그림이나 문헌들이 없어 정확한 기록 은 찾을 수 없으나 그 지방의 전통적인 민속놀이 속에 남아
있다. 단오나 한가위 속의 씨름 경 기가 그 예이다.
우리 옛 문헌에 나타난 씨름 놀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고려 시대에 나타난다. 고려사의 내용에 서는 "왕이 용사를 거느리고
씨름 놀이를 구경하였다"(고려사 권 36 세가, 충숙왕 4년 2월 조), "공주가 연경궁으로 옮기니 왕이 주연을 베풀어 위로해주고 밤에는 씨름
놀이를 구경하였다"
(고려사 권 36 세가, 충숙왕 4년 5월조), "왕이 고룡보와 함께 시가 누각에 앉아 격구와 씨름 놀이를
구경하고 용사들에게 포를 수없이 상주었다"(고려사 권 36 세가, 충숙왕 4년 11월조) 등에서 씨름 관람을 왕이 즐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직접 왕이 씨름을 겨루었다는 기록 도 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에서는 씨름 구경을 왕가 사신들이 즐겨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왕조실록 외 에도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등의 문헌을 보면 조선 후기에 와서 씨름을 하다 진 사람 이 이긴 사람을 칼로 죽이는 극한
사태까지 발생하였으나 그 열기는 더 하였다는 내용이 나타 나 있다.
또한 단오에는 남성 놀이로서 씨름이 반드시 행해졌으며 7월
중원절이나 8월의 한가 위에도 씨름 놀이를 찾을 수 있다. 이후 씨름은 서울 지방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한말 이후에는
지역적인 지방 씨름이 성행되다가 1912년 10월 유각권 구락부의 주관으로 서울 단성사 극장에서 씨름 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되는 것을 비롯하여
1915년 1월 서울 광무대 극장 주최로 그 극장에서 4주일간 씨름 대회가 열리었다. 일제 시대에는 일제 침략자들이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말살
정책으로 씨름도 억제시켰으므 로 씨름 대회는 개최와 중단을 거듭하게 된다. 1927년 조선 씨름 협회가 창단되면서 1927년 [제1회 전조선
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으나 1934년 11월 제 6회 대회로 중단되었다.
2년후인 1936년 조선 씨름 협회에서 다시 [제1회
전조선 씨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이 대회도 제6회 대회를 마친 후 중단되었다가 1946년 대한 씨 름 협회로 협회 명칭을 바꾸며 다시
재건을 보게 되어 1947년 "전국 씨름 선수권 대회"가 7회 부터 계속되기 시작하였다. 이 대회는 1998년 현재 제 52회를 개최하였다.
(2) 씨름의 의미
씨름은 전래 민속놀이 중 가장 널리 보급된 것으로 그 대상이나 때, 장소를 가리지 않고 씨름 판을 벌일 수 있다.
서로 띠를 맞잡고 손짓, 발짓을 통해 밀고 밀리다가 한쪽 도는 둘다 함께 넘어지기도 하나 여기에는 꾸밈없는 서민적 체취와 해학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인 두사람이 한 몸이 되어 승부를 가리는 것을 통해 공동체적 연대감에 이르게 된 다는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역사적인 문헌 내용을 통해서는 첫째 고려 시대에는 씨름을 왕이 직접 즐겼으며 궁내에서까지 행하여 졌다는 것으로 씨름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전 계층적으로 행해진 놀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당시에 고려가 몽고의 침입으로 원나라 지배 아래에서 자주성을 잃고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씨름을 통하여 민족 자주성 회복과 실현의 염원을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은 임진왜란시 군사들 속에서
무술을 익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장려되었다는 점에 서도 찾을 수 있다. 씨름을 잘하는 사람은 용사로 불렸다고 한다. 문헌 기록으로는 정확하지
않지만 씨름은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놀이이면서 가장 신 분을 초월한 전국민의 민속놀이 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3) 씨름의 방법
씨름은 두사람이 다리에 낀 샅바와 허리에 맨 띠를 잡고 넘어뜨리기를 겨루는 방법으로 한다. 씨름은 예전에는 씨름판
주위에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놀이였지만, 경기로 정착되면서 단체 겨루기는 몸무게에 따라 여러 급을 나누어 하거나 몸무게에 구별 없이
겨루기도 한다. 우 리 나라 씨름은 넓적다리에 샅바를 매고 하는데 어느 쪽에 매는 가에 따라 왼씨름과 바른 씨 름으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서
왼씨름이 보편적이다.
또 같은 샅바를 매는 씨름에도 된샅바걸 이 씨름 막걸리 시름, 늦은 샅바 걸이 씨름, 허리띠 씨름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며 그밖에 샅바를 매지 않고 하는 민둥씨름이 있다. 씨름은 힘과 재주를 가져야 이길 수 있는 놀이로 샅바 잡기, 몸 자세
취하기, 발 옮겨 디디기 등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 샅바 잡기는 먼저 샅바의 한 쪽을 다리에 끼고 나머지 부분을 허리에 둘러서 배의 중심에 맨
다음 짧은 한 쪽끝을 남긴다.
선수들은 허리를 펴고 가까이 마주서서 허리를 잡는다. 이 때 엄 지손가락은 다리띠 앞부분에 가 닿게
하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는 다리띠 바깥쪽을 감아 잡 는다. 다리띠는 손목이나 팔뚝으로 걸어 잡지 못한다. 다음은 오른손으로 상대편의 허리띠를
잡는데 이때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손가락을 펴서 띠의 윗 부분으로부터 아래에 껴서 손목 을 돌려 엄지손가락과 같이 감아 잡는다. 상대편은
상대가 허리띠를 잡는데 불리하지 않게 하 여야 한다.
샅바를 마주잡은 다음 두발을 안전하게 벌려 디디고 몸을 앞으로 굽혀 서로
오른쪽 어깨를 마 주 댄다. 다음 다리를 펴고 머리를 앞으로 들어 잔등이 서로 수평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 한 자세 다음에는 공격이나
방어를 하기 위하여 왼다리를 한 걸음 정도 앞에 내디디고 무릎을 약간 굽히면서 엉덩이를 뒤로 보내고 허리를 쭉 편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두다리 사이에 높아 균형을 잡는다. 방어하려 할 때나 손을 써서 공격하려 할 때에는 낮은 자세를 취하고 몸으로나 다리를 서서 공격하려 할
때에는 높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씨름의 기술에는 크게 공격 기술 [메지기]와 방어 기술[되지기]로 나눌 수가 있다. 메지기는 다 시
허리재간·다리재간·손(팔)재간이 있다. 허리재간은 상대방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위로 들어 좌우로 돌리며 젖혀서 뒤나 옆으로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허리 재간의 종류는 배재기, 엉 덩배재기, 재치기, 돌려치기, 회목받치기, 회목걸이, 뛰어 던지기 등이 있다. 다리재간은 상대방을
자기의 발과 다리로 걸고 앞으로 당기며 또 뒤로 밀며 옆으로 틀며 돌리 면서 후리며 넘어뜨리는 재간이다.
이 기술로는 안다리걸기,
안다리 젖히기, 안다리후리기, 앞 다리 걸기, 덧거리, 바깥다리걸기, 바깥다리 후리기 가 있다. 마지막 손재간은 상대를 자신의 손으로 앞으로
당기고 밀며 앞으로 젖히며 넘어뜨리는 기술이 다. 앞무릎치기, 앞무릎뒤집기, 뒷무릎치기, 앞다리채기, 덜미잡이, 꼭두잡이, 팔걸이가 있다. 이
외에도 되치기라는 기술이 있는데 이는 각 재간을 공격받아 오히려 역공격하는 기술을 말한다.
씨름의 기술로서 인정할 수 없는 이른 바
반칙 행위로는 목을 조르거나 비트는 행위, 팔을 비 틀거나 꺾는 행위, 머리로 받는 행위, 주먹으로 치는 행위, 발로 차는 행위, 경고를 받고도
재 차 반칙을 되풀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4) 씨름의 분포
씨름은 일부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놀이이다. 많은 놀이들이 특정한 명절에만 행해지는 반면
씨름은 대보름, 단오, 한가위 등 어느 명절에나 두루 행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