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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을 보고

우리둥지 2005. 7. 9. 23:07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1.
서글픔으로 다가와서
한줄기 그리움으로 남아
차마 못 잊을 추억하나
.
추억이 그토록 아름다운 건
다시는 만날수 없음......
다시는 되풀이 될수 없음.....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움입니다.
.
사색을 가져다 주는 계절의 모퉁이
이따금 스치는 가느란 바람결에
갓 설레는 열일곱 소녀가 옷을 벗듯이
노란 은행잎이 부끄러이
살풋살풋 파란 하늘 배경삼아 재주를 부립니다.
.
2.
온통 창자가 뒤틀리듯이
가파지르는 아픔을 가져보지 않은 이는
온통 머리가 뽀개지듯이
터질듯한 골머리를 앓아보지 않은 이는
아프지 않은 상태의 편안함을 모르듯
진정 괴로움을 느끼지 못했던 이들은
괴로움의 진실을 모르듯
.
너무도 사랑했었으므로
잊히지 않는 그리움의 아픔을 모릅니다.
.
3.
말을 주며
말을 건네 받으며
잘도 모여서 사는 사람들의 세상

실오리들이 모여 잘도 짜집기 되어
실쉐타처럼 잘도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세상
.
어디엔가 묻혀져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
한 줄 한 줄 따라가 보면
어디엔가 꼭 있을 그리움의 사람
.
살아가는 일로
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로
그리워하는 일을 잊은 척 살아갑니다.
.

4.
어차피 오늘을 삽니다.
어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므로
내일 또한 나의 것이 아닌
의식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감상일 뿐이므로

지금은 오늘뿐
그 이상은 나의 것이 아니므로
그리움이라든가
추억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그건 하나의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렵니까.
.
지금 나는
어제의 너를 사랑하지 않으렵니다.
내일의 너를 사랑하지 않으렵니다.
.
지금 나는
지금의 너만을 사랑하렵니다.
.
.
5.
어떤 모습으로든
오늘을 사는 우리네인 이상
아린 어제의 얘기를 가슴이 묻은 채 삽니다.
.
추억이라 하기엔
너무 아린 그리움의 전설
아마득한 옛이야기로 남겨두려면
문득문득 가슴을 두들기며
못내 그립게 하는 어여쁜 추억
.
고픈 배를 채우는 일로
갈급한 무지를
지식으로 바꾸는 일로
순간순간 잊고 살지만
우리에겐 늘 연연함의
이쁜 그리움이 남습니다.
.
경복궁 담벼락 따라
가느란 바람을 등에 지고 걸으면
빨간 담쟁이 잎들이
그리움의 뿌리를 불러줍니다.
.
사색에 잠겨
차가운 보도위에 떨어진 채로
이슬 묻은 노란 은행잎들을 보면
콧등이 시큰해지는
추억의 환영들이 후두둑 밀려옵니다.
.
흙묻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아이처럼
눈가에 이슬을 손으로 지우며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빈 하늘
.
하늘이 비어갈 수록
온통 파랗게 비어갈 수록
그토록 깨져 버릴 듯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
7.
누가 님인가요
잊히지 않으면 님입니다.
.
누가 님인가요
보이지 않으면 님입니다.
.
누가 님이란 말인가요
만날 수 없으면 님입니다.
.
님이란 뭔가요
그래서 설운게 님입니다.
.
8.
다시는 이 모습 이대로
볼 수 없는 님입니다.
.
그러나 문득문득
갑자기 나타날 듯한
그래서 님입니다.
.
9.
다시 만나지 않으렵니다.
나는 나대로
멀면 멀수록
더 멀게 살아감이 좋으렵니다.
.
이렇게 길게
아니 영원히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한 채
재회의 슬픔없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며
사는 것이 좋으렵니다.
.
10.
가을이 다가와서
구슬픈 소리를 들려 주면
아리게 살아나는 그리움으로
멀리로 멀리로 하늘을 보면
곱게 수놓였던
추억들이 뭉게뭉게
먼 산 너머로
먼 산 너머로
사라져 숨고
.
저 홀로 비어가는 하늘
혼자만 혼자되어 비어가는 하늘
하늘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 최복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