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공동개발한 F-2 전투기를 2035년부터 대체하는 6세대 전투기 90대를 만들려는 일본은 고도의 네트워크 기능과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과의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항공우주산업 선진국과의 협력을 통해 관련 노하우를 습득하면서 개발 과정에서의 위험을 낮추려는 의도다.
한국은 4.5세대인 KF-21 시험비행을 준비 중이다. 향후 KF-21 성능개량이나 6세대 전투기 도입을 위해 선진국들과의 핵심 기술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이 개발중인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의 상상도. BAE 시스템스 제공적에게 탐지되지 않으면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6세대 전투기를 만들려는 일본은 외국과의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를 개발중인 영국은 15일 일본과 전투기용 센서 기술을 공동 연구하기 위한 약정서(LOA)를 체결했다.
양국이 함께 개발할 기술은 ‘재규어’라고 불리는 최첨단 범용 무선 주파수 센서다.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발생하는 위협을 더 잘 탐지하고, 표적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 적군의 감시망을 무력화하는데 쓰인다.
‘재규어’ 공동개발은 민간기업 주도로 5년간 이뤄진다. 시제품은 양국에서 한 개씩 제작된다. 영국에서는 이탈리아 방산업체 레오나르도의 영국법인(레오나르도 UK)가 참가한다. 일본에서 참여할 기업은 공개되지 않았다.
전투기에 탑재할 엔진에 대한 연소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이외에도 신형 레이더 관련 기술과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JNAAM) 공동연구도 추진 중이다.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유럽의 항공무장업체 MBDA가 개발한 미티어 미사일에 일본산 탐색기를 결합하는 개념이다. 올해 안에 연구를 마무리하고 양산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일본은 앞서 2020년 12월 F-22, F-35를 만든 록히드마틴을 협력 대상으로 선정했다. 영국과도 공동연구를 추진, 자국 주도의 6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에 미국과 영국을 참여시키는 형태를 갖추게 됐다.
특히 영국과는 첨단 전자장비와 엔진, 미사일 등 핵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기술을 축적하는 모양새다.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 개발을 추진하는 영국도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산업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이 개발중인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가 공군기지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상상도. BAE 시스템스 제공일본은 독자적인 4세대 전투기와 스텔스 실증기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미국, 영국과 협력에 나서는 것은 6세대 전투기를 만드는 것이 그만큼 까다롭기 때문이다.
6세대 전투기는 강력한 네트워크와 감시 정찰, 스텔스 성능 등이 포함된다. 무인기를 통제하고, 편대가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기능도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은 물론 금속 가공 등 전통 산업 기술이 최고 수준에 도달해야 하며, 막대한 예산을 지출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일본은 2020년 10월 미쓰비시 중공업을 6세대 전투기 체계개발업체로 선정했다. 여기에 IHI, 가와사키중공업, 스바루, 도시바, NEC, 후지쓰, 미쓰비시 전기를 참여시켰다. 일본 항공우주산업 역량을 모두 끌어모은 셈이다.
하지만 기술적 난제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본은 스텔스 성능을 지닌 기술 실증기 X-2를 개발했지만, 미사일 등을 함께 운용하는 스텔스 전투기 개발 실적은 없다.
미국과 유럽 항공우주산업체는 군용기 개발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컴퓨터로 설계 작업을 하고, 시험도 증강현실(XR) 기술이 더해진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디지털 엔지니어링을 주로 사용한다. 반면 일본은 디지털 엔지니어링 기술로 군용기를 개발한 경험이 없다.
선진국 방산업체 중에서 스텔스 성능과 디지털 엔지니어링, 첨단 전자장비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기술과 경험이 가장 풍부한 업체는 F-22와 F-35를 개발했던 록히드마틴이다.
일본은 6세대급 성능을 지닌 차세대 전투기 개발과 관련, F-22와 F-35를 결합한 개념을 구상한 록히드마틴의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고, 록히드마틴이 참여하면 미군과의 상호운용성도 보장된다는 점에서 개발 프로그램 참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만든 F-2 전투기가 이륙 직후 상승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영국은 템페스트를 자국 주도로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비 분담과 규모의 경제 확보를 위해 제3국도 참여시키고 있다. 공동개발 외에 상호 공유가 가능한 기술의 협력도 추진한다.
영국의 이같은 태도는 일본에 돌파구를 제공한다. F-2 개발 당시 미국은 고출력 엔진, 기체제어 소스 코드 등의 제공을 거부했다. 록히드마틴이 어느 정도까지 협력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영국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엔진 기술 공동 연구가 대표적이다. F-2의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6세대 전투기 성능을 받쳐줄 고출력 엔진을 확보하려면 자체 개발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고출력 전투기 엔진 개발은 상세 규격, 기본설계, 상세 설계, 각종 시험, 기술 요소의 통합 및 실제 항공기 탑재에 필요한 설계 등이 필요하다.
영국 템페스트와 일본 차세대 전투기는 요구성능이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추진하는 국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는 영국과 일본의 6세대 전투기 엔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요구성능에 공통점이 많다면, 적용되는 기술이나 부품도 양국이 공유할 수 있다. 이는 개발 및 운영유지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영국과 일본의 협력이 확대되면, 일본 차세대 전투기는 외형은 다르지만 성능, 기술, 부품, 장비는 템페스트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갖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미국 기술이 추가되면 일본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형태의 6세대 전투기를 확보하게 된다.
일본이 도입한 F-35A 편대가 비행을 하고 있다. 록히드마틴 제공일본이 6세대 전투기를 얻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4.5세대 전투기인 KF-21 시험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KF-21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전투기다. 미국의 AIM-12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미티어 미사일을 아시아 최초로 장착했다.
하지만 한국 공군이 도입한 F-35A에는 미치지 못하는 4.5세대다. 성능이 향상된 블록2가 있지만, 2030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전력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 영국, 미국에서 6세대 전투기가 모습을 드러낼 때다.
5세대와 6세대 전투기를 갖춘 주변국을 상대로 F-35A와 KF-21, F-15K만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지킬 수 있을까. 도입한 지 40년이 지난 F-5가 추락해 조종사가 순직하는 현실에서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군 조직 규모를 지키는 것이나 우주전력을 구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미래 항공전을 준비하는 자세다. ‘공중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군대’라는 공군의 기본 임무를 되새겨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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