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공(河上公)
성씨도 이름도 없이, 황하 강변에 살던 사람
한 문제(漢文帝 : BC180-BC157)가 황제로 있을 때 일이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난해한 도덕경의 미묘한 뜻을 능히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원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람은 황하(黃河) 물가에서 풀로 엮어 만든 작은 모옥(茅屋)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 그 사람의 성씨가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황하 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다 존칭인 공(公)을 붙여 '하상공'(河上公)이라고 불렀다.
황제의 부름을 물리치다
한나라 초기에는 사회적으로 도가인 '황노지학'(黃老之學)이 널리 숭상되던 시기였다.
한문제는 신하들에게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공부하도록 널리 권장하였다.
그러나 도덕경 중에는 해석하기 난해한 미묘한 문장들이 많아 하상공을 제외하고는 당시 사람들 중에 이를 능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는 사신을 파견해서 하상공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황제의 이러한 요청에 대해 하상공은 뜻밖에 오만불손하게도 사신에게 "노자 도덕경은 지고무상한 학문이다. 나에게 가르침을 구하려고 하거든 응당 황제가 친히 오도록 하라." 한다.
문제는 사신이 돌아와서 하는 보고를 듣고 몸소 하상공을 찾아갔다. 문제는 하상공을 만나서 "무릇 천하의 토지는 모두 제왕의 토지가 아님이 없고,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제왕의 신하와 백성이 아닌 자가 없다. 그런데 너는 황제인 나를 이렇게 하찮게 대우하고 있다. 너는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잘난 체 하는구나!"한다.
책상다리하여 공중으로 솟아오르다
하상공은 황제의 이 말을 다 듣고 난 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보라는 듯이 두 손바닥으로 몇 번 손뼉을 친다.
그리고 땅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천천히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마침내 땅으로부터 2미터 정도 솟아올라 멈추고는 공중에서 황제인 문제를 굽어보면서 "나는 지금 위로는 하늘에 접촉하지 않았고, 밑으로는 땅에 닿지 않았다.
어찌 당신의 신민이라 할 수 있는가?"한다.
문제는 공중에서 책상다리하고 앉아있는 하상공을 올려다보면서 서둘러 수레에서 내려와 엎드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나는 황제이지만 국가를 위해 세운 특별한 공덕이 없습니다.
다만 돌아가신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황제 자리를 이어 받았을 뿐입니다. 내 자신은 재주가 부족하고 배움이 얕아서 한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중책을 맡기조차 어렵습니다.
설사 현실이 이러하더라도 내가 국가를 다스리는 와중에서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도술(道術)을 흠모합니다.
그래서 도덕경(道德經)을 애독하고 있습니다. 다만 재주와 지식이 모자라서 읽어도 많은 곳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하옵건데 도인께서는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한다.
이 말을 들은 하상공은 한문제에게 비단으로 엮은 두 권의 책을 전해주면서 덧붙여 한마디 한다. "당신이 다만 마음을 정심히 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이 두 권의 주해서를 읽는다면 도덕경의 모든 의문점들이 풀릴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당신은 내 도움이 필요 없을 것이다."
도덕경 주해서를 네 사람에게만 전하다
하상공이 한 문제(漢文帝 : BC180-BC157)에게 도덕경 주해서 두 권을 전해주면서 “내가 도덕경(道德經)에 관한 이 주해서를 저술한 지 이미 1,700여 년이 되었다. 그 사이 다만 세 사람에게 전했다. 현재 황제인 당신에게 전하면 네 번째다. 당신은 이 책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하였다.
말을 마치자 하상공은 돌연 공중으로 꺼진 듯 종적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잠깐 사이에 짙은 안개가 사방에 가득 차 천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에 문제도 그곳을 떠났다. 문제는 도덕경 주해서를 얻고 그 책들을 귀중히 여겨 애지중지하였다. 그리고 일심으로 공부하여 도덕경의 심오한 뜻을 투철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동굴 속에 펼쳐진 이상향
하상공이 이때 한번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고 사라진 후 수백 년 동안, 하상공을 보았다는 소문이 없었다. 그러나 600여 년이 지난 남북조 시대 남조(南朝) 송(宋) 원가(元嘉), 어느 해에 하상공을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호남성 진계현(辰溪縣) 북쪽 ‘등촌’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었다. 원가(元嘉) 26년(449), 어느 날 들판에 방목하여 키우는 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농작물을 훔쳐 먹는 등 피해를 끼쳐 마을사람 문광통(文廣通)이 활을 쏘아 상처를 입혔다. 상처 입은 돼지는 피를 흘리면서 달아났다.
문광통이 돼지 핏자국을 따라 10여 리를 추적했는데, 핏자국이 어느 동굴 속으로 이어졌다. 동굴 속으로 추적해 300여 보쯤 들어가자, 눈앞이 탁 트이면서 푸른 산 맑은 물이 잘 어우러진 들판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수 백호의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무릉도원(武陵桃園)이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하상공, 그곳에서 도덕경을 강의하다
이 마을의 어느 한 집에서 노인 한 분이 나와 문광통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집안 대청 위에는 10여 명 공부하는 서생들이 앉아 있고, 노인 한 사람이 평상위에서 남쪽으로 앉아 그들 학생들에게 노자의 도덕경을 해설하고 있었다.
서쪽 곁채에는 열 사람이 둘러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뜻밖의 조화를 이루어 신선 세계의 음악(仙樂) 그 자체였다. 동자 한 명이 그들에게 술을 따르고 있는데 그 노인이 문광통에게도 술을 따르라고 하였다. 따라주는 술 한 잔을 마시자 속이 편안하고 몸이 가벼워져 마치 신선이 된 듯하다. 노인과 한참 이야기하다가 작별을 하려고 하자 젊은 남자 한 명을 시켜 전송하게 하였다.
이상향을 다시 찾았으나
문광통이 젊은 남자의 안내를 받아 그곳을 떠나면서 이곳의 내력을 물었다. 그 젊은 남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천 년 전 은나라 말기 걸주의 잔악한 폭정을 피해 숨어 들어왔다. 이곳에서 도술을 닦아 모두 신선이 되었다. 조금 전 남쪽 침상에 앉아 도덕경을 강의하던 사람이 바로 한 문제에게 도덕경 주해서를 전해준 하상공(河上公)이다. 나는 한나라 산양왕(山陽王)의 후예이며 이곳에서 마당 쓸고 잔 심부름 한 지도 어느덧 1,200년이나 되었다. 이제야 겨우 문하생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아직 선도요결(仙道要訣)을 전수받지 못해 문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젊은 남자는 문광통을 동굴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 되돌아갔다. 문광통이 동굴 입구에서 자기가 가져왔던 활을 찾았는데 이미 썩어서 쓸 수가 없었다. 동굴 속에서 그 잠깐 사이에 세상은 이미 12년이나 흘렀다.
고향에 돌아오니 노인들 중, 세상을 달리 하고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신비한 이야기를 해주고 마을사람들과 다시 그곳을 찾았으나 동굴 입구는 큰 바위로 막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 다시 하상공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도덕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상공본’이라 전해지는 도덕경 주해서를 필독의 책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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