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를 하고 왔다. 노고지리 산우회가 종주 산행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끼워달라고 뒤늦게 간청해서 가까스로 이루어진 지리산 종주였다. 그들은 해마다 세석평전에 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지리산 종주를 한다. 올해로 27회째라고 한다. 나도 형편이 맞으면 그 산행에 편승하곤 했는데, 작년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동행하지 못했으니 내게는 2년 만의 지리산 종주다.
내가 지리산을 좋아하고 지리산 종주를 탐하는 것은 내가 무슨 대단한 알피니스트여서가 아니다. 지리산은 올라가 정복하는 산이 아니라 걸어서 순례하는 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등반의 대상으로서 자연의 산이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와 숨결이 담겨있는 인문의 산이다. 봉우리마다 전설이 있고, 12동천(洞天), 유현한 계곡마다 사연이 길다.
천왕봉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노고단 아래 구례 광의에는 “책 덮고 지난 역사 헤아려 보니/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려워라”는 절명시를 남겨놓고 순국 자결한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이 살았고, 천왕봉 아래 산청의 덕산에는 “안으로 밝은 것이 경(敬)이요, 밖으로 끊는 것이 의(義)라”는 여덟자 경의검을 차고 자신을 지키며 벼슬을 마다했던 선비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이 머물렀다. 가까이는 「남부군」의 이현상이 죽은 곳도 지리산 속 빗점골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지리산 종주에 진짜 집착하는 이유는 지리산 서남쪽 들머리 노고단에서 동북쪽 끝자락 천왕봉으로,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그 멀고 아스라한 느낌의 그 능선을 마침내 답파하고 나서 천왕봉에서 내가 걸어온 그 길을 되돌아볼 때 맛보게 되는 황홀한 성취감과 벅차오르는 환희 때문이다.
노고단에서 볼 때는 내가 과연 아득하게 먼 저 길을 갈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천왕봉에서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볼 때 내가 저 길을 걸어왔구나, 비로소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모처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바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느끼는 환희심(나는 그것을 천왕봉 하이라고 부르고 싶다)을 맛보기 위하여 지리산 종주를 하는 것이다.
지리산 주능선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노고단은 그 버티고 서 있는 품이 늙은 시어머니의 기품과 위엄이 있고, 천왕봉은 하늘을 받치고 서있는 기둥의 기상이 있다. 노고단이나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주능선은 소백산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바라볼 때 파도치는 것 같이 겹쳐 보이는 산들의 모습이나, 고려시대의 시인 김황원이 대동강에서 읊었다는 점점산(點點山)의 느낌과도 전혀 다르다.
나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나면 누가 묻지 않아도 괜히 말하고 싶어진다. “나, 지리산 종주하고 왔어!” 어디서 보니까 잘난 여자들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한다는데, 나도 내가 지리산 종주한 것을 주책없이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종주 대신 술타령의 추억도
일일이 헤아려 보지 않아서 그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리산 종주를 한 것은 아마도 15회쯤 되지 않을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해에는 세석평전 아래 음양수 옆에 텐트를 치고 세석산장에 있는 소주를 동내면서 울분의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 그 해 따라 철쭉조차 피지 않아 지리산은 삭막했다. 우리는 종주 대신 지리산에서 가장 길고 험하다는 칠선계곡으로 내려왔다.
나의 지리산 종주가 매번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종주하러 갔다가 술타령만 하다가 내려온 일도 있다. 1970년대 말, 우리 일행(거시기 산우회)은 지리산 종주 산행을 위해 화엄사를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밤부터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는 종주 산행을 포기하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마침 산장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 산장주인 함태식이 소주를 박스 채 내와서, 그의 문자를 안주로 잔 수를 더해갔다. 조주일배(朝酒一杯)는 식욕증(食慾增)이요, 조주이배는 체력강(體力强)이라, 자고(自古)로 주불쌍배(酒不雙杯 -술은 짝수로 끝내지 않는다)니 조주삼배는 불가피(不可避)요, 조주사배는 가사망(家事忘-집 일은 잊어라)이라,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로 술을 먹는데, 조주오배는 의(宜-마땅하다)요, 조주칠배는 가(可)라, 조주구배는 월불가(越不可-그 이상 먹어서는 안된다)라.
제가 많이 마시고 싶으면 큰 잔으로 마시고, 적게 마시고 싶으면 작은 잔으로 마시고, 이렇게 시작한 술은 가사망을 지나고 월불가를 넘어 대취하도록 마셨다. 함태식이 술자리에서 쓰는 문자, 요두출수(搖頭出手-고개를 저어 술을 사양하면서도 손이 먼저 나가는 것), 양주목사(讓酒目射-입으로는 사양하면서 술잔의 향방을 쏘아보는 것)를 배운 것도 이 자리에서였다.
지리산 종주를 나에게 가르쳐줬던 범하장(凡下丈) 이돈명 변호사도 가고, 술자리 문자를 일러줬던 함태식도 얼마 전 갔다. 그러나 나는 체력이 허락한다면 1년에 한번씩 지리산 종주를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종주를 다녀와서 “나, 지리산 종주하고 왔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과연 나는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