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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우리둥지 2014. 11. 20. 17:55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옮겨온 글)

 

 { 佳人解裙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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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소리

조선, 宣祖 때 우연히 어느 누구의 환송 잔치에 참석한 鄭澈 柳成龍 李恒福 沈喜壽와 李廷龜 등 학문과 직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이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는 시제를 가지고 詩 한 구절씩 읊어 흥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정철이 먼저 운을 띄웠다.

淸宵朗月 樓頭閼雲聲. 청소낭월 누두알운성 ………………鄭 澈 
맑은 밤 밝은 달 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滿山紅樹 風前遠岫聲. 만산홍수 풍전원수성 ………………沈喜壽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曉窓睡餘 小槽酒滴聲. 효창수여 소조주적성 ………………柳成龍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 ………………李廷龜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洞房良宵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 ………………李恒福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이 날 저녁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성대감 李恒福의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다. 당대에 내노라 하는 대학자요 문장가요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가였지만 그들이 아무리 유학의 궤범에 얽매여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 치열하다 보니 어찌 일개 張三李四나 무엇이 다르랴? 여기서 굳이 부인이라고 하지 않은 걸 보면 그 땐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 받는 오늘날의 탤런트나 영화배우 같은 미인을 TV 화면을 통해서 접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어찌 보면 황진이 같은 미모와 서정과 기예를 갖춘 여인을 두고 아름다운 여인이라 했으리라.

속고지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라는 옛 말대로 한번 품에 안아 본 여인의 모든 것을 설사 다 알고 있다 치더라도 남자의 귀에 아름다운 여인이 한 밤중 어둠 속에서 한 꺼풀씩 옷을 벗어가는 모습을 사그락대는 소리로 듣는 그 情趣는 언제나 한 없이 설레이는 꿈으로 밤이면 밤마다 마냥 꾸고 싶었을 것이다. 음란스럽기 보다는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멋으로 보이지 않는가? 예부터 사내란 계집 앞에서는 나이를 타지 않는 법이다. 이 저녁 그 자리에 함께한 근엄한 양반들도 등불이 꺼진 방안에서 여인이 한겹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풀어헤치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보고 별을 따는 아득한 생각에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었으리라.

옛날 양반시절에 음양에는 원래 천벌이 없는 법이라 첩을 두기도 하고 기생과의 하룻밤 풋사랑도 마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 그 여인이 누가 됐든 상관 없이 중년의 호남아들이 호젓한 밤의 심연을 같이 遊泳하면서 가마솥 처럼 들끓는 깊은 밤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있었으니 이 천지가 다 내 것이라. 이들의 풍류와 해학과 멋 !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족하도다. 그런데 요즘 함박골 엘펜하임에 입주한 우리는 어찌해야 저들의 그림자라도 뒤 쫓아 갈수 있을까?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하니 嗚呼痛哉로 소이다. 옛 詩 젊잖은 소리 그만하고 形而下學的 感傷的 直感的인 짜릿하고 알쏭달쏭한 詩人 문정희와 임보의 現代詩 노골적인 '치마'와 '팬티'를 조용히 차분하게 한번 읊어봅시다.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

 

문정희(文貞姬,, 1947~ 전남 보성) 
동국대 국문과 학사/석사, 서울여대 문학박사. 동국대 고려대 교수 역임.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인 등단. 진명여고 재학시절에 펴 낸 첫시집 <꽃숨> 이후 많은 시집 및 수필집 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국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 수상
 

 

팬 티 - 임 보
- 문정희의 '치마'를 읽다가 -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ㅡ,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

 

 

저 탱탱한 팬티

 

임 보(본명 姜洪基 1940~전남 순천)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졸업. 성균관대 문학박사. 충북대 국문과 교수 역임.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인 등단. 1974년 첫시집 <임보의 시들> 이후 2011년 <눈부신 귀향> 등 14권의 시집 및 많은 동인지와 시론집 펴냄. 필명 임보(林步)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에서 따온 것이라 함.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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