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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과 함께한 15일

우리둥지 2013. 5. 28. 07:32
틱낫한 스님과 함께한 십오일
금강스님 (전남 해남 미황사 주지)

세계적인 수행지도자 프랑스 플럼빌리지의 틱낫한 스님이 한국에 도착하신 첫 날, 88세의 노구의 스승을 뵙자마자 ‘아! 내가 보름동안의 모든 일정을 온 마음을 다해 모시고 다녀야 되겠구나.’ 생각했다. 15년 전 고불총림방장이셨던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결사운동과 무차선회를 하던 때 스님의 세수가 88세였다. 그때 내가 지혜가 있었다면 좀 더 깊은 공부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로움과 행복의 길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스님이 열반하신 후 미황사에서 80차례의 참선집중수행안거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고통을 수행으로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애쓰고 있지만 그때의 아쉬움은 지금도 남아있다.

내면의 고통을 들으려 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틱낫한 스님이 처음으로 보여주신 내용은 5일 동안 한국의 사찰에서 머물며 일반인들의 사회적 갈등과 개인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지도하며 수행안거를 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늘 공격적인 대화, TV나 잡지 등을 통해 감정적 독소들을 빨아들인다. 이런 감정적 독소들이 숨어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자살이나 폭력 형태로 뛰쳐나오게 된다. 또한 우리는 관계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통을 보고 들으려 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걷거나 앉아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노래하라. ‘나는 도착했네. 나는 집에 있네. 여기 그리고 지금. 나는 단단하네. 나는 자유롭네(I'm arrived. I'm home. in the here and in the now. I'm solid. I'm free).’

사회가 고통 받을 때 승가가 해법을 내어 놓아야 한다

두 번째의 모습은 스님들 500명을 대상으로 한 ‘깨어나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사회가 고통 받고 있을 때 불교와 승가(僧伽)가 그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개인, 가족, 학교, 사회에 폭력이 만연하고 고통이 가득 찰 때 불교가 대응하고 해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행자를 교육하는 교재도, 외우는 염불도 수백 년전 것 그대로여서는 불교도 살아남을 수 없다. 출가 수행자는 삶 속에서 자애로움이 배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스님의 미소와 말하는 방식, 걷는 모습에서 가르침을 얻는다. 승가의 모습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느껴질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남과 북은 평화와 화해의 집단적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모습은 부산 범어사와 서울을 오가며 남북한 대립에 대한 걱정과 해법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현실화되기를 강조했다. 남북문제의 핵심은 핵무기가 아니라 우리 안의 두려움과 화 때문이다. 핵무기를 없애는 것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 본 후, 남북 간 깊이 듣고 자애롭게 말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내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애로운 마음을 가질 때 남북의 화해와 평화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전 60주년을 맞이해 불교 지도자들이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수행을 한 달 동안 지속한다면 집단적 평화와 화해의 에너지가 생겨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번 스님의 방한은 35명의 법사단과 함께 왔다. 서울의 국제선센터의 비좁은 공간에서 보름동안 지내기에 불편한데도 제자들과 함께 자고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동을 할 때도 함께 버스를 타고 늘 개인이 아닌 대중 속에 있기를 원했다. 오신채는 물론 치즈도 드시지 않을 정도로 계율에 철저하며, 사람들에게는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철저한 수행자이기를 고집하셨다.

보름 동안의 일정 중에서 마음 졸일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매일 법문을 두 시간 넘게 하고 걷기수행 한 시간을 꼬박꼬박 하시니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게다가 전국을 누비며 이동을 하다 보니 따라다니는 젊은 나도 벅찼다. 스님은 목과 허리에 통증이 와 한 숨도 못 주무시기도 했고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법문을 하거나 대중을 지도할 때는 스님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 붓고는 하셨다.

가까운 거리에서 스님을 모시며 나를 경이롭게 했던 것은 매순간, 한걸음 한걸음이 생생하게 깨어있으시다는 것이었다. 또한 모든 방법과 에너지를 법을 설하는 데에 모으는 모습 또한 감동 그 자체였다. 스님이 떠나시는 날 ‘사람들의 근기에 맞추어 지도하라. 개념으로 가르치지 마라.’는 귀한 법문을 내게 남기셨다. 큰 스승 서옹 스님과 틱낫한 스님. 큰일이다. 누가 되지 않게 살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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