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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님의 두가지 향

우리둥지 2010. 4. 15. 19:41

   퇴계(退溪) 선생의 매화 詩와 두향(杜香)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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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退溪) 선생의 매화 詩와 두향이 이야기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마져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