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야기♧

남원 韓紙 강의와 실습

우리둥지 2009. 7. 12. 20:05

 

                                                            ( 남원 한지 강의를 끝내고)

 

(나에 실습 한 장면)

 

 

남원문화대학(학장 박원조) 제13주는 지리산 한지(유)대표이사인 김동훈 강사의“남원과 한지의 역사 ”란 주제의 열정적인 강의가  있었다. 남원의 한지가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강의를 통해서 그 우수성을 재인식 할 수 있어 아주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김 대표는 남원시 아영면 일대 김시곤선생님의 자제로 한지의 어원(語源)인 한지(韓紙)의 명칭과 유래, 한지의 역사,  한지의 우수성, 한지의 용도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남원의 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강의가  진행되었다.


남원한지를 소개해 보면,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제조법을 이용해  만든 종이로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우수한 문화유산이다. 어원적으로  한지라는 용어는 1950년 이후에 사회가 서양문화 환경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한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또한 겨울에 원료를 거둬들여 찬물에 담가 좋은 질의 원료를 만들어 寒紙(한지)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특히 중국의 華紙, 일본의 和紙에 대응하여 韓紙라 자연스레 부르게도 되었다고 한다.
한지의 역사는 안악3호 고분에 한지를 든 그림이 벽화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부터 제지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불교가 전래되어 온 4세기경에 제지술이 유입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또한 고구려 담징이 610년 일본에 종이제지술을 전하였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11세기에 팔만 대장경등 불경 조판 사업과 함께 서적 간행물로 인해 종이 생산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운영의 종이생산 시설인 조지소설치나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우리 한지를 조공지로 공납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종이의 발전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종이의 질이 이전 시대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한지의 우수성은 여러 곳에서 실증되고 있다. 첫째 수명이 길다.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200년 전의 것이다. 또한 갑옷을 만들어 입었을 정도로 질기다는 것이다. 광택이 뛰어나고 먹물 번짐이 좋아 중국에서는 한지에 글씨를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방온, 방풍효과나 습도 조절능력, 냄새를 제거하는 능력 등은 여러 가지 자료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렇게 한지는 우리 조상들에게 서화용, 건축용, 전쟁용에서 부터 각종 생활도구까지 만들었으며, 요즘에는 한지 옷이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현재도 한지 연구가들에 의해서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남원한지의 우수성은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거론되고 있다. 남원한지가 우수하다는 대목들이 여러 차례 거론되기 때문에 우리고장 닥나무를 통해서 만들어진 종이의 품질이 탁월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서 남원의 지장 수(종이 만드는 기술자)가 가장 많이 활동하였음도 알 수 있다.

수강생들은 남원과 한지의 역사를 통해서 남원의 한지에 대한 명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알았고 , 그리고 남원시 광치동 농공단지 지리산 한지 공장 견학과 한지 만들기 체험을 가졌다.
백 번의 손이가야  한 장이 나온다는 한지

한지산업이 하향 길에 있는 줄만 알았던 필자는 한지업체 중 가장 큰 지리산 한지가 시대상으로 많은 사연을 갖고 있지만  전국에서 50%를 전북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남원의 지역경쟁력을 확보하는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 이 다행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