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야기♧

마지막 남은 남원 부채

우리둥지 2009. 3. 22. 22:42



 

마지막 남원부채

남원부채 최수봉/김복남 명장

 


"태어나면서부터 부채만 만들었어요.

남원조산에서 멀리 시집가고 싶었지만 조산에 살고 있다"면서 웃는다.

최수봉, 김복남 부부는 남원부채의 마지막 명장이다. 모태에서부터 부채를 만드는 작업장이 삶의 터전이었고 생활이었으니 부채 그 자체가 삶이다.

어려서 학교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붙들려와 부채를 만들어야 했다는 최수봉 김복남부부는 삶 자체가 부채였고, 자연스럽게 명장이 되어있다.

부채를 만드는 공정은
예술 그 자체다. 부채 살을 일정한 크기로 쪼개야 하는 공정이나 부채 살을 엮는 공정은 하루 이틀 배워서 되는 과정이 아니다. 특히 경제성을 가진 부채를 만든다면 너무나 무의미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 수작업을 통해서 부채를 만들면서 사는 마지막 남은 남원부채의 달인 최수봉 김복남부부가 남원부채의 명맥을 잇고 있다. 부부의 삶 자체가 명장이다.

 한지로 바른 백선, 이 부채는 예전에는 더욱 귀했다. 우리사회에 양지로 발라진 외죽선이 범람하던 시대에도 쌍죽선, 태극선의 가치는 높았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사회에 선풍기나 에어콘이 생활화 된 것이 그리 오랜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소년시절 집집마다 부채를 햇빛에 말리기 위하여 온통 부채가 널려져 있었기에 모든 공간이 하얗게 물들여 있었다. 특히 요천의 둔치나 제방가에는 부채를 말리기 위하여 매달아놓은 풍경이 빨래를 널려있는것 같았다. 그때가 불과 2~30년전인 1980년대이다.


남원시 조산동이 부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10년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1930년대부터 부채제조 단지로 명성을 날려 1980년대 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부채를 사용하지 않기에 관광객들의 기념품으로 그치지만, 그마저 중국의 저가의 수입품이 시장을 휩쓸고 있어 남원부채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이 최수봉, 김복남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남원최수봉부채공예'다.


최수봉, 김봉남 부부는 "아무리 중국에서 모방을 한다지만, 남원부채의 부채 살 엮기나 대나무의 탄력, 한지의 질감이 부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에는 따르지못한다"고한다.
부채는 더위를 느끼면서부터 가장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속의 한 생활용품으로 기억 속에만 남겨진 부채, 그 부채를 전통방식으로 제작하여 맥을 이어오는 최수봉, 김복남부부의 남원부채는 전통과 맥, 그리고 그 자체가 예술이며, 혼이 담겨있다.


  쌍죽선, 호박선, 바늘선, 통선

남원최수봉부채공예

남원시 조산동 69번지 063)632-7657, 016-657-7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