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동 의 글♧

청각장애 딛고, 호주 공무원이 된 한국여인

우리둥지 2008. 7. 27. 16:25
박영주씨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가차 방한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고열로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한인 여성이 호주에서 잘 나가는 공무원이 돼 귀국했다.

호주 토지국에서 공무원으로 25년 째 근무하는 박영주(44) 씨는 귀 대신 눈으로 소리를 듣고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한국어 수화와 영어, 호주, 일본 그리고 국제수화에도 능통하다.

27일 박 씨와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기자의 입 모양을 보고 그는 질문에 대답했다.

그는 재외동포재단이 28일부터 8월2일까지 서울 홍은동의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하는 2008 세계 한인 차세대대회에 참가차 방한했다.

박 씨는 "장애를 지닌 것을 어렸을 때는 수없이 원망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원망하지 않는다. 장애자가 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줄 안다"며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장애인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정말 행복하다"며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저를 보면서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큰 감동을 느껴 장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구화교육의 창시자인 고 최병문 교장이 세운 한국구화학교에 입학해 구화교육을 받았다. 구화교육은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한 단어를 최소한 200번 이상 듣고 또 듣고 쓰면서 단어를 익히고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어린 시절 TV나 라디오 등 가재 도구를 비롯한 집안의 모든 물건에는 죄다 그 명칭이 붙어있었다"며 "손으로 무엇을 달라고 손짓이나 동작을 하면 절대로 주지 않고 입을 벌려 사과를 '아과'라고라도 이름을 발음해야만 사과를 주었다"고 말했다.

구화학교 선생님과 가족의 피나는 노력으로 그는 점차 단어를 이해하고, 입을 벌려 말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 앞에 대표로 나가 인사말을 하고 어떤 때는 노래도 하고, 무용도 했다.

어느 정도 말을 하게 되자 그의 어머니는 딸이 차별이 없는 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살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호주 이민을 택했다. 1981년 금란여자중학교 3학년 때 호주 캠시로 가족이민한 박 씨는 가장 먼저 영어를 배웠고, 시드니 전문대(TAFE)의 장애인을 위한 특별 코스를 마친 뒤 시험을 통해 시드니 정부 토지국(Department of Lands)의 공무원에 합격했다.

"힘들지 않으면 인생은 재미가 없다. 힘든 일을 즐긴다"는 그는 같은 장애가 있는 남편 변규형 씨를 만나 결혼했다. '유전이 아니다'라는 의사의 반복된 조언에도 1남1녀 역시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박 씨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장애인이라 처음에는 대화조차 꺼리던 호주의 동료 공무원들은 점차 그의 성실함에 감탄하며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10여 명의 동료에게 수화를 가르친 지 17년이 된 지금, 호주 공무원 5명은 수화전문 통역가로 활동할 정도다.

그는 2002년부터 호주의 청각장애인공무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네트워크에서 컴퓨터를 공부해 호주 대표로 출전한 국제컴퓨터 작동능력 경시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힘들지만 배우는 게 재미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더 많은 장애인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다"는 그는 시드니농아교육네트워크에서 요리와 종이접기 강사로, 호주 밀알 장애인선교단에서 수화찬양단과 수화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호주 장애인을 위해 사회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 받아 그는 2007년 12월3일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에 시드니주 정부의 첫 한국인 홍보대사가 됐다. 위촉장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호주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한국의 전통무용을 보여줬다.

한국관광공사 시드니지사의 '참알리미'를 맡아 한국 알리기에도 열심인 그는 제1회 호주 한인여성의 날에 첫 수상자가 됐고,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호주 원주민 장애인에게 기부했다.

차세대대회 때 전 세계에서 온 105명의 리더 앞에서 성공담을 풀어놓을 그는 "자원봉사와 기부는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만드는 전염성이 높은 행위인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남을 위해 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