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어머니
이철
루브르 박물관의 드농관에 가면 다빈치의 ‘모나리자’ 옆에 가로 10미터나 되는
‘나폴레옹 대관식’이라는 큰 그림이 걸려있다.
이 그림은 어용화가인 자크 다비드가 그린 것이지만 명화로 꼽히는 것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100여명의 표정이 개성 있게 표현되어 있어
신고전주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또 나폴레옹 시대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다 등장시켰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자료로서도 굉장한 가치가 있다.
이 그림의 한가운데 나폴레옹의 어머니가 단상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나폴레옹의 여동생들이 황제가 된 오빠가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아들의 역사적인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불참함으로써 조세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조세핀은 나폴레옹보다 6살이나 위인데다 전 남편(왕당파로 몰려 교수형 당함)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2명을 데리고 시집왔으며 요염하고 사치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미움을 샀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는 ‘황후’라는 공식 타이틀을 주면서
어머니에게는 아무 작위도 안주고 ‘황제의 어머니’로만 불려 지게 한데서
어머니의 불만이 폭발해 황제의 대관식에
황제의 어머니가 불참하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왜 나폴레옹은 자신의 대관식 그림에 어머니가 참석한 것으로 그려 넣었을까.
나폴레옹은 콜시카 출신으로 부모가 이탈리아계다.
프랑스가 콜시카를 제노바로부터 빼앗는 바람에 콜시카인들이 프랑스인이 된 것이다.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는 콜시카의 빨치산으로 프랑스군과 싸운 맹렬여성이며
전투가 끝난 후 나폴레옹을 낳았다.
그녀는 아들이 군인이 될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형편이 안 되는데도
갖은 노력을 다해 나폴레옹을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에 보냈다.
때문에 그는 유럽을 호령하는 황제였지만 어머니에게만은 꼼짝 못했다.
심지어 어머니가 고향인 콜시카에서 총독을 누르고 설친다는 소문을 듣고도
모른 체 했고 많은 돈을 매달 어머니에게 생활비로 보냈다.
“자식의 운명은 어머니에 의해 결정된다”는 나폴레옹의 명언은
바로 자신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콜시카인의 전통을 물려받아 가족을
굉장히 중요시 했으며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할 때도 가족보호 조항을 직접 넣었을 정도였다.
그가 대관식 그림에 어머니가 참석한 것처럼 그려 넣은 것은
망신스런 집안 내용을 역사에 드러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단점 투성이고 품행조차 바르지 못한 조세핀을 사랑한 이면에는
너무나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따뜻한 여성의 사랑에 굶주린 콤플렉스의
영향도 있다. 그는 군인으로서는 상황판단이 정확했지만 남편으로서는 판단이 흐렸다.
조세핀과 이혼한 후 오스트리아 공주와 재혼 했을 때도 불행의 연속이었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아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들었지만
훌륭한 남자로는 만들지 못했다. 자식의 소질을 발견하여 키워준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식들은 키우지 않아
후일 나폴레옹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는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자식의 운명은 어머니에 의해 결정된다”는 나폴레옹의 말은
모든 어머니들이 새겨 들을만한 금언이다.
<이철/미주 한국일보 고문/주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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