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선거철이라 정책발표는 흔적을 감춘 채
흑색 선전과 폭로전이 난무하고 있다.
날마다 9시 뉴스를 독차지하는 그들의 부끄러운 행태를 보면서
나는 반 백년을 살아 오면서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인간적인,그래서 지금껏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선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남 함평군 월야면에 군 의원 선거가 있을 때의 일이다 월야면에는 건축가로 일하던 정현웅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상대로 싸워야할 사람은 철옹성 같은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던 현역 의원 서수정씨였다.
3년간의 군정 활동의 업적이 어느 역대 의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서수정 의원을 상대하기에는 어느 모로 보나 정현웅은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착실하게 유권자들을 만났고
선거 일주일 전까지도 지지율이 전혀 올라가지 않은 상태인데도
부지런히 각 집을 방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그 정도의 지지율로 선거를 치루려면
특단의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텐데도
그는 끝까지 어떠한 변칙도 시도하지 않은 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며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계획을 알렸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정현웅이 대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선거를 5일 여를 앞두고 상대 후보인
서수정 의원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었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하지만 모친이 세상을 뜨셨는데
선거 운동을 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치상(治喪)을 치루는 데 적어도 3, 4일은 걸릴 것이므로
서수정 후보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정현웅 후보가 운동원과 함께 열심히 뛴다면
역전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레서 모두들‘역시 정현웅을 하늘이 돕는 구나’라고 말했다.
나도 그가 너무 고생을 하는 것을 보아온 터라 내심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간 정현웅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인물이었다.
그는 서수정 의원의 모친 부음(訃音)을 듣는 그 순간부터
자기는 물론, 모든 선거 운동원들을 불러서 선거 운동을 멈추게 하고
대신 서수정 의원 댁으로 보내서 치상을 치루는 일을 돕도록 했다.
나는 서수정 의원 댁 마당에서
상주와 똑같이 삼베 두건을 쓰고 손님을 맞는 그를 보고 감탄했다.
어쩌면 저토록 작은 체구에서 저토록 큰 생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삼국지며 수호지등 세상에 있는 어떤 영웅 호걸담에서도
정현웅과 같은 사람은 본적이 없다.
저 사람이야 말로 진정 작은 거인(巨人)인 것을...
상가(喪家)집이 갑자기 문상객으로 넘쳐났다.
정현웅 후보가 선거 운동을 중단한 채
서의원 댁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나갔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러한지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서수정씨의 친척은 물론 정현웅 후보 쪽의 사람과
뜻있는 월야 면민들이 모두 문상을 오니
서수정 의원 댁은 갑자기 넘쳐나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어서
돌담을 트고 이웃집 마당에 까지 멍석을 깔고 술상을 봐야만 했다.
그 인들 이만한 호상(好喪)을 예상했을까.
서수정 의원이 정현웅 후보에게 다가 가서 몇 번이고 악수를 했다.
그가 정 후보의 등을 다독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진정 낳고 길러주신 어머님을 잃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리라.
선거 때면 두 패, 세 패로 갈리던 인심이
정현웅 때문에 면민 전체가 한 가족이 되었다.
상주(喪主)가 울고 면민(面民)이 운 그 날의 선거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정현웅 의원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이 되었다.
분명 그를 지지하는 표 중에는 서수정님의 표도 있었으리라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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