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山河♧

마다가스카르 의 신비

우리둥지 2008. 2. 16. 19:09
  
그랑 칭기의 모습
ⓒ 김성호
칭기

 

트럭을 타고 칭기로 가는 길

 

바오밥 거리에 이어 다음날 내가 간 곳은 모론다바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이다. 얼굴이 여우를 닮았다는 여우원숭이와 석회암이 부식된 뾰족한 바위 탑으로 유명한 칭기를 보기 위해서이다.

 

베마라하 가는 길도 험하고 힘들다. 마다가스카르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길이 없고, 사는 사람들도 거의 없으니 대중교통이 있을 리 없다. 모론다바에서 베마라하를 갔다 오는데 보통 3일이 걸린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힘 안 들이고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오지를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에게 편한 여행은 오히려 여행의 참맛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산악인들이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말하듯, 배낭여행객들은 험한 길이 있어 오지에 간다.

 

오전 9시께 나는 찰스와 함께 모론다바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가 아니라 대형 트럭이 우리가 타고 갈 차량이다. 칭기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에다 험하고 승객들도 많지 않아 트럭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일반 여행객들은 모론다바에서 투어회사를 통해 지프를 이용한 단체구경에 합류한다. 나는 홀로 구경을 가다보니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당연히 힘든 고생길이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을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카미옹-브루스(Camion-Brousse)”라고 불렀다. 트럭을 프랑스어로 “카미옹”이라고 하고, 니, “카미옹-브루스”는 영어로 “부시 트럭(Bush Truck)”이란 뜻이다. 이미 트럭 짐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트럭 천장에 비를 맞지 않도록 폴리에틸렌 가마니를 덮어 천장을 만들었다. 트럭 난간에는 양쪽으로 철제 간이의자를 설치해 7명씩 앉도록 했고, 가운데 트럭 바닥에는 나무판으로 깔아 승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도록 했다. 내가 탄 트럭도 모두 21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닭장차와 같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말라위 음주주에서 은카타베이까지 짐과 승객이 뒤범벅이 되어 타고 갔던 트럭이 생각났다. 말라위에서는 대중교통수단인 트럭을 “마톨라(Matola)”라고 불렀다. 말라위의 마톨라는 마다가스카르의 카미옹-브루스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마귀할멈 같은 승객이 내 옆 자리에...

 

나는 트럭 난간의 간이의자에 간신히 끼워 앉았다. 그런데 내 바로 옆에 앉은 80대 할머니가 문제다. 똑바로 앞을 보고 앉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모아 옆으로 비스듬히 앉다보니 두 명 좌석의 공간을 차지해 버린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엉덩이를 비비며 할머니쪽으로 자리를 넓히려 하자 할머니는 발로 나의 엉덩이를 밀어낸다. 할머니의 횡포를 모든 승객들이 알아차린다. 보다 못한 한 아주머니와 남자 승객이 할머니에게 똑바로 앉으라고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아예 못 들은 척하다가 끝내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네가 뭔데 상관하느냐”는 투다. 마치 마귀할멈 같다.

 

마다가스카르는 역시 동양적 정서가 있다. 할머니가 두 좌석을 차지해 여행객에게 불편을 끼치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이 아닌데도 할머니한테 항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에서는 “손님 보기 창피하다”는 우리네 정서와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아마 다른 아프리카 대륙이었으면, 할머니의 행동에 대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다수 사람들이 모른 척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승객들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많았다. 남자가 8명이라면, 여자가 13명이다. 주로 모론다바에서 생활용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장보는 것은 어디나 여자들의 몫이다. 어린아이도 두세 명 있는데 엄마 품에 안긴 곰 인형처럼 움직이지를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트럭짐칸에 타고 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트럭 역시 타나에서 모론다바까지 왔던 봉고버스인 ‘택시-브루스’처럼 사람이 밀어야 시동이 걸리는 차량이다. 터미널부터 4명의 남자가 밀자 시동이 걸렸다. 택시-브루스 저리가라이다. 택시-브루스는 그래도 4~5시간을 달리다 고장이 났는데, 트럭은 한 시간마다 차가 달리다 선다. 고장이 아니라, 엔진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 시간마다 멈춰야 했다. 얼마나 오랜 된 차량이면 엔진 과열 때문에 시동이 꺼지겠는가.

 

마다가스카르의 오지를 오가는 교통수단은 성한 차량이 하나도 없다. 트럭은 일본제인 닛산(Nissan) 트럭인데, 30년은 다 된 폐차 일보직전의 고물차량이다. 아니, 폐차 처분된 중고차량을 다시 수리해 사용하는 것 같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유리창문은 아예 없고, 차가 한번 멈췄다가 출발한 자리는 검은 기름이 땅에 흘러 검게 물들인다. 기름이 줄줄 새는 차량이다. 운전석 지붕 위에는 수시로 엔진오일과 물을 갈아주기 위해 큰 물통에 물을 가득 싣고, 엔진오일도 여러 통 준비해 다닌다.

 

젊은 남자차장이 3명인데, 이들은 차가 멈췄다가 출발할 때 시동을 걸기 위해 뒤에서 차를 밀고, 차 엔진이 꺼지면 일제히 엔진오일과 물통을 트럭 지붕 위에서 가져와 숙련된 조수처럼 보닛을 열고 물과 엔진오일을 교체한다. 10분 정도 엔진을 식힌 뒤 다시 차를 밀면 신기하게도 다시 시동이 걸려 출발한다. 워낙 큰 트럭이라 3명의 차장만으로는 부족해 남자 승객 중 젊은 사람들이 내려 차를 미는데 힘을 보탠다. 아프리카 차는 고장은 많아도 목적지까지는 간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칭기 가는 길의 해넘이 장면
ⓒ 김성호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까지 진출한 일본의 친선도로

 

전날 보았던 모론다바의 바오밥 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열심히 달려와 벨로-쉬르 치리비히나로 가고 있다. 물론 모두 비포장도로의 먼지 나는 흙길이다. 그래도 길 도로에 웅덩이 같이 푹 팬 곳은 많지 않아 미안드리바조에서 모론다바로 오는 웅덩이 길보다는 낫다. 도로 옆에는 시멘트 표지석으로 “마다가스카르-일본 친선”이라는 팻말이 있다. 탄자니아 아루샤의 마니아라 호수에서 응고롱고로 분화구까지 가는 포장도로에도 “탄자니아-일본 친선도로” 팻말이 있었다. 비포장도로인 것으로 보아 탄자니아 아루샤처럼 일본이 우호차원에서 앞으로 포장도로를 건설해주기로 약속한 듯하다.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은 워낙 오지여지 그동안 사람들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지난 1990년 마다가스카르에서 최초로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칭기와 여우원숭이, 마남볼로 강과 골짜기 등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천연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모론다바와 벨로-쉬르 치리비히나 사이에는 모론다바 북동쪽 30km에 안드라노메나 특별 자연보호구역, 60km에 키린디 삼림보호구역이 잇따라 있어 더욱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 안드라노메나 보호구역은 다양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고, 키린디 보호구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쥐여우원숭이와 높이 뛰어 다니는 덩치 큰 쥐인 자이언트 점핑 래트(Giant Jumping Rat), 여우원숭이를 잡아먹는 마다가스카르 최대의 포식자인 포사 등을 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일본이 도로 포장을 해준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응고롱고로 분화구까지도 아프리카 최대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었는데, 이곳도 도로 포장이 되면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 것이다. 도로 포장을 통해 외국 관광객 유치를 도와주려는 일본의 전략적 지원이다. 여행을 하면서 아프리카 곳곳에서 일본과 중국이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분야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진출을 하는 현장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아프리카 대륙 뿐 아니라 마다가스카르 섬까지 진출한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트럭은 한참을 달리다, 다 쓰러져 가는 두세 채의 허름한 시골집이 있는 곳에 섰다. 도로 옆에 흙으로 지은 헛간 같은 곳이 바로 식당이다. 쌀밥과 닭고기 국물로 때운다. 60대 할머니 한 명이 가끔씩 오고가는 트럭의 승객들을 상대로 선술집처럼 장사를 한다.

 

  
차량과 사람을 실어나르는 치리비히나 강의 거룻배
ⓒ 김성호
마다가스카르

 

흑백텔레비전 앞에 늘어선 벨로의 어린이들

 

트럭은 먼지가 휘날리는 도로에서 쉬다가다를 반복하다 오후 2시 치리비히나 강(Tsiribihina River)에 도착했다. 트럭에 5시간이나 엉덩이를 혹사 하면서 달려왔다. 그나마 트럭은 이곳이 종착지여서,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강을 잇는 다리가 있을 리 없다. 배를 타고 치리비히나 강을 건너야 한다. 미안드리바조에서 흘러온 치리비히나 강은 바로 서쪽 인도양으로 합류한다.

 

모터보트가 사람을 강 건너편으로 실어 나른다. 한꺼번에 7명을 태운 보트를 타고 하류쪽으로 1km 정도 북쪽으로 내려간다. 배라고 해야 통나무배인 피로그 같은 길쭉한 배의 꽁무니에 모터를 단 것이다.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카페리도 있는데, 나무판자 여러 개를 이어붙인 뒤 뒤쪽에 두 개의 모터를 달아 그 힘으로 가고 있었다. 강물은 역시 불그스레하고 탁하면서 맑지 않다. 산과 땅의 심각한 부식현상 때문이다. 그래도 강의 하류여서 상류의 붉은 황톳물보다는 많이 가라 앉아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저 붉은 물이 인도양으로 흘러들어 바다를 오염을 시킨다.

 

강가에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많이 있다. 30여분 정도 걸려 치리비히나 강 건너 편 선착장에 이르렀다.  벨로 쉬르 치리비히나(Belo-Sur-Tsiribihina) 지역이다. 현지 사람들은 줄여서 ‘벨로’라고  부른다.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조그만 가게에서 생수를 사는데 주인이 인도계 여자이다. 얼굴이 동그랗고 뚱뚱한 몸이 인도 사람 그대로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중국인들은 주로 중국식당을 하고, 인도인들은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인과 인도인의 차이이다.

 

나무로 지은 시골 마을의 작은 구멍가게가 시끌벅적하다. 한낮인데도 어린아이들이 줄을 서서 길을 막을 정도로 몰려 있다. 무슨 공연이나 서커스를 하나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어린이 노래자랑 프로인 듯 보였다. 흑백텔레비전으로 화면이 파도가 치듯 얼룩거리면서 “찌~찌~직” 하며 빗방울이 떨어지고, 소리도 “웅~ 웅~” 거리는데 아이들은 흑백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내가 태어난 시골에서도 70년대 중반까지 텔레비전이 귀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되어서야 전기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드라마나 가수 청백전의 프로를 보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일찍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이 있는 면장이나 이장 집에 몰려들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어린이들은 내가 30여 년 전에 했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여자들은 모론다바처럼 한결같이 얼굴에 ‘마손조아니’라는 하얀 머드팩을 하고 있었다.

 

  
마다가스카르 혹소인 제부
ⓒ 김성호
제부

 

칭기 가는 길의 쁘띠 바오밥 거리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을 가려면, 지금 내가 도착한 벨로에서 다시 차량을 타고 북쪽으로 80km 이상을 가야한다. 점점 더 험한 오지로 들어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길도 없고, 차도 없고, 사람도 없다. 안내자로 따라온 찰스는 열심히 차량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모론다바에서 벨로까지 온 카미옹-브루스 트럭마저 없다. 정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격이다.

 

찰스가 마침 카페리로 치리비히나 강을 건너오는 지프차 한 대를 발견했다. 찰스가 다가가 지프차 운전사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찰스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니 “오케이(잘됐다)”한다. 지프차를 타고 우리는 베마라하 칭기 공원을 향해 갔다. 지프차에는 20대의 젊은 운전사와 차장이 한 명 타고 있었는데, 모론다바에 일이 있어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침 지프차 운전사는 내가 가려는 칭기 공원 근처에 살고 있었다.

 

지프차는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을 태우고 갔다. 돈을 받고 태워다 주는 대중교통수단 역할을 하는 것이다. 7인승 지프차에 각종 짐을 들고 탄 승객이 11명이 넘었다. 지프차라도 없으면, 소가 끄는 우마차를 타고 하루를 꼬박 가야할 길이다. 

 

모론다바에서 오는 동안에도 바오밥 거리 뿐 아니라 곳곳에 바오밥 나무가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데, 특히 벨로에서 칭기로 가는 길에는 아주 멋진 작은 바오밥 거리가 나온다. 모론다바의 바오밥 거리가 큰 바오밥 거리라는 의미에서 ‘그랑(Grand) 바오밥 거리’라면, 이곳은 ‘쁘띠(Petit) 바오밥 거리’라고 부르고 싶다.

 

40여 그루의 바오밥 나무들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데, 무엇보다도 작은 바오밥 나무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수 십 년이 지나면 모론다바 바오밥 거리에 못지않은 제2의 바오밥 거리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겨울 정도로 많은 바오밥을 구경할 수 있는데, 파마머리처럼 유난히도 고불고불한 가지를 가진 바오밥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칭기 가는 길에 만나는 다양한 풍경

 

시골 오지 중의 오지이다. 비포장도로의 흙길에서 만나는 차량이라고 해야 우리 지프차가 유일하고,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수레들이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고 있다. 산악지대에는 소가 끄는 수레가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마다가스카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칭기로 가는 길에는 7~8살 정도 밖에 안 된 어린이들도 웃통을 모두 벗고 소의 고삐를 잡고 수레를 능숙하게 끌고 간다. 찰스는 '제부(zebu)'라는 소가 끄는 마차를 “샤레트(Charrette)”라고 부른다고 했다.

 

모론다바 등 도시 주변에서는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멋을 부리며 샤레트를 몰고 가는 젊은이들도 보이는데, 이곳 산악지대에서는 봐줄 아가씨가 없으니 모두 웃옷을 벗고 앞만 보고 소를 몬다. 시골에서는 소마차가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훌륭한 교통수단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었다. 해질 무렵, 붉고 누런 두 마리의 소가 이끄는 마차가 황톳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마주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수레와 함께 오지에서는 자전거도 한두 대씩 보였는데, 자전거는 그나만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고 있었다.

 

칭기 가는 길에는 사냥을 하는 ‘마다가스카르판 부시맨’도 볼 수 있다. 이들은 활과 뾰족한 창, 새총 등을 가지고 다니며 대여섯 명씩 사냥을 하러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찰스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주로 쌀농사를 짓는데, 아프리카에서 온 사칼라바족 가운데 베조 부족 등에서 목축과 함께 사냥을 겸하는 경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산악지대답게 길거리에서 숯을 파는 행상들도 보인다.

 

또 다시 강물이 우리 차량을 가로 막고 흐른다. 이미 어둠속을 달려온 지 오래 되었다. 지프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오는 도중 대부분 내리고 나와 찰스 그리고 2명의 현지인들만 남았다. 운전사는 “강을 건너면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밤 9시인데 오지이다 보니 더욱 깜깜하다.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안 된다. 지프차의 전조등을 켜니 강물이 보였다.

 

마남볼로 강(Manambolo River)이다. 지프차를 실어 나르는 거룻배가 오는데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지프차가 자동차 경적을 여러 차례 울린 뒤에야 거룻배가 왔고, 5명의 남자들이 같이 타고 왔다. 밤이다 보니 거룻배에 지프차를 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명은 강물에 들어가 배를 육지 쪽으로 붙이고 지프차가 거룻배에 올라갈 때 밀리지 않도록 밧줄로 배를 육지의 버팀목에 묶는다.

 

거룻배에 지프차와 함께 타고 건넌 곳은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의 매표소가 있는 베코파카(Bekopaka).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론다바에서 12시간이나 걸렸다. 트럭과 지프를 갈아타고, 두 번의 강을 건너고, 어둠속의 비포장도로를 달려왔다. 베코파카에는 공원 출입사무소와 작은 칭기라는 ‘쁘띠 칭기’, 작은 산골 마을로 이뤄져 있다.

 

  
베코파카 마을의 망고나무와 전통가옥
ⓒ 김성호
베코파카

 

인상적인 칭기 롯지의 프랑스 여주인

 

여행객 숙소는 ‘안코아이(Ankoay)’라는 멋진 롯지 겸 캠핑장이다. ‘안코아이’는 멸종위기의 마다가스카르 물수리(Madagascar Fish-Eagle) 이름이다. 방갈로와 텐트가 있는데, 텐트는 빈 방이 없어 결국 방갈로 방을 얻었다. 침대와 화장실, 샤워실이 갖춰져 있고, 흙과 갈대 지붕으로 된 전통가옥 냄새가 물씬 풍긴다.

 

롯지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전기불은 모두 나가고, 촛불이 야외 식당을 밝히고 있었다. 혼자 늦은 저녁을 먹고 바에서 맥주를 마시자 주인과 종업원이 나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여주인은 키가 큰 50대의 프랑스 여인이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약사를 하다가 마다가스카르가 너무 좋아 여기에 와 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프랑스어를 쓰는 옛날 프랑스 식민지였던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이 많은데, 왜 굳이 마다가스카르로 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사람들이 너무 순박해서 좋다”고 말했다. 내가 “여행객들이 많이 오느냐”고 묻자 “칭기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30대의 현지인 여자 종업원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이야기를 나눴다. 온통 암흑과 정적으로 둘러싸인 롯지의 야외 바에서 촛불을 켜고 여행객과 방갈로의 주인, 종업원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정감이 있다. 내가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느냐”고 묻자 현지 종업원은 “저녁 먹고 잠잘 준비할 시간인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근처에 발전소가 없어 자체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하다보니 오랜 시간 전기를 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깊은 산 속에 전기가 무슨 필요 있으랴. 촛불 아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아시아 여행객과 프랑스 여주인, 마다가스카르 종업원사이에는 굳이 밝은 전기불이 필요 없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전기불이 들어오기 전까지 호롱불과 촛불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내가 겨울 방학 때 옥천군 청산면 ‘목꼴’의 외가에 가거나 보은군 마로면의 큰 이모네 집에 가면, 큰 외삼촌과 큰 이모부가 “6·25 전쟁” 당시의 피난 이야기와 일제 말 농촌의 어려운 상황을 들려주곤 했다. 큰 외삼촌과 큰 이모부가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랑채에는 늘 호롱불이 외풍에 흔들리고, 소여물을 끓인 장작나무 숯불에 구은 군고구마가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여주인은 수더분하고 친절한 것이, 나미비아 빈트후크의 깔끔하고 도시적인 여주인과는 느낌이 달랐다. 프랑스 여주인은 현지 종업원과도 딱딱한 사용자와 노동자가 아니라,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나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숙소들을 식민지 종주국 백인들이 운영하고 있어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물론, 아프리카인들이 하기에는 자본이 달리고 경험이 부족한 데다, 유럽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업이다 보니 홍보나 단체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프랑스 여주인에게서는 왠지 ‘종주국 백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마다가스카르 주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칭기 구경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내 방 안에는 초가 3개나 있었는데도, 현지 종업원은 “초가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넉넉한 인심이다.

 

나는 여행을 마친 뒤 6개월 정도 지나 서울에서 열린 마다가스카르 사진전시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사진전시회에서 산 사진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프랑스 여주인과 현지 여종업원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행사진작가인 신미식이 펴낸 <마다가스카르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빌리지의 프랑스 여인’이란 제목의 사진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프랑스 여주인이었다. 작가 신미식도 나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쁘띠 칭기의 올빼미
ⓒ 김성호
마다가스카르 올빼미

 

칭기에 오르는 날

 

다음날 아침 6시부터 서둘렀다. 근처 공원 매표소에서 공식 안내자를 지프에 태우고 큰 칭기라는 ‘그랑 칭기(Grand Tsingy)’로 향했다. ‘그랑 칭기’는 베코파카에서 북쪽으로 울창한 숲속을 20km 정도 달려야 한다. 작은 칭기라는 ‘쁘띠 칭기’는 바로 공원 매표소 근처에 있지만, 우선 ‘그랑 칭기’부터 구경하고 돌아와서 ‘쁘띠 칭기’를 나중에 보기로 했다. 칭기는 가파른 바위산과 동굴이 많아 위험하고, 바위를 오를 때는 등산용 안전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식 안내자를 데리고 가야 한다.

 

산길을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랑 칭기 15km’라는 팻말이 보인다. 산길에도 아이들이 있다. 두 살부터 일곱 살 정도의 어린이 7명이 나무기타와 막대기를 들고 길 한가운데를 걸어가다 차가 오자 피한다. 그중 짓궂은 남자아이 한 명이 차가 다가가는데도 길 가운데 버티고 피하지를 않는다. 누가 이기나 장난을 치는 것이다. 차가 5m 정도 가까이 가서야 몸을 길옆으로 획 피한다. 젊은 운전사가 화가 났다. 운전사가 차를 뒤로 물리며 마치 차에서 내려 때릴 듯 아이들을 꾸짖는다. 아이들이 겁이 나서 고개를 땅에 숙이고 쥐죽은 듯 조용히 서 있다. 차가 다시 출발하자 아이들은 뒤에서 “키득~키득~” 하면서 자기들끼리 바라보면 웃는다. 어린이는 어린이다.

 

아침에 숲속을 달리니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짜릿하게 한다. 아침부터 삼림욕하는 기분이다. 콧속으로 시큼한 나무냄새와 풀내음이 들어온다. 며칠 동안 흙먼지에 고생한 콧속을 칭기 국립공원의 상큼한 공기가 깨끗이 씻어낸다. 맑은 공기가 콧속을 통해 뇌를 거쳐 심장속으로까지 흘러가는 것이 느껴진다. 가슴이 확 터지고, 몸이 날아갈 것 같다. 맑은 공기만으로도 동맥속에 깨끗한 피가 흐르듯, 심장 속으로 행복감이 넘친다.

 

푸른 나무 숲속을 지나 누렇게 된 풀밭을 지난다. 개울가를 지나는데, 꽤 물이 흐른다. 밀림지대같이 빽빽한 나무 숲속이 나온다. 마다모자바키(Madamozavaky)라는 팻말이 보인다. 정글 속의 유일한 나무도로 표지판이다. 우리 지프는 마다모자바키 쪽으로 달린다. 공원 안에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가는 젊은 여자 2명이 보이고, 꼬마 아이 2명이 길가에서 손을 흔든다. 숲속에서 보니 나무로 지은 오두막집 두 채가 보인다. 이런 정글에도 사람이 산다.

 

  
나무가지에 앉아 있는 칭기의 시파카 여우원숭이
ⓒ 김성호
여우원숭이

 

드디어 시파카 여우원숭이를 만나다

 

공식 안내자가 오른쪽 숲속을 가리키며 “마키(Maki)가 있다”고 말한다. 여우원숭이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마키”라고 불렀다. 내 눈에는 너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프를 세워달라고 해서 안내자가 여우원숭이가 있다고 가리킨 숲속으로 걸어갔다. 숲속의 높은 나무 위에 하얀 점 같은 것이 나무줄기 위에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여우원숭이(Lemur)이다. 여우원숭이는 온통 하얀색에 얼굴만 검은색인 데다 나무줄기도 하얀색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하얀 나무줄기 위에 하얀 여우원숭이가 있는 것은 자연스런 보호색이다. 이상하게도 푸른 나무도 많은데, 유독 죽거나 나뭇잎이 누렇게 떨어져 하얀색의 줄기 나무에만 앉아 있다. 그것도 30m 이상 높은 나무 위에만 있다. 그렇잖아도 작은 여우원숭이가 더욱 작게 보인다. 그 옆의 큰 나무 가지 위에도 대여섯 마리의 여우원숭이가 앉아 있다. 사람소리가 나자 옆 나무로 뛰어간다.

 

내가 보고 있는 여우원숭이는 ‘시파카(덱켄스 시파카. Decken's Sifaka)’ 원숭이다. 시파카는 다리가 팔 보다 길어서 나무에서 5m 이상 뛰어오를 수 있다. 시파카 여우원숭이는 울음소리도 “쿠욱~쿠욱~” 하는 것이 마치 새소리와 같다. 다른 원숭이와는 다르다. 애초 시파카 여우원숭이는 다른 원숭이에게 위험신호를 보낼 때 “시-파” “시-파”라고 외치는 소리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나,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타는 것이 통통 튀듯이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뛰어간다. 워낙 작아 나뭇가지가 휘어지지 않고 옮겨갈 수 있다. 다른 아프리카 원숭이는 몸무게 때문에 가지가 휘어지거나 출렁출렁 거리며 옆 가지로 흔들리며 옮겨간다. 만약 탄자니아 마니아라 호수의 덩치가 큰 개코원숭이가 저렇게 가는 가지 위를 뛰어 간다면, 아마도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개코원숭이가 개의 코를 닮았듯이, 여우원숭이는 여우의 얼굴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우원숭이의 생김새를 보니 코가 삐쭉 튀어나온 것이 정말 여우처럼 얼굴이 오목조목하니 귀엽다.

 

나무 위에 있는 시파카 여우원숭이는 ‘춤추는 여우원숭이’이라고도 부른다. 땅에 내려와서 두 다리로 서서 미끄러지듯이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껑충 껑충 뛰는 것이 마치 발레 댄서가 춤을 추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는 가장 작은 쥐여우원숭이를 비롯해 아이아이여우원숭이, 링꼬리여우원숭이, 목도리여우원숭이와 가장 큰 인드리 등 모두 50여종이나 된다. 여우원숭이는 몸통이 가늘고, 다리와 꼬리가 긴 것이 특징이다. 여우원숭이는 영어로 “리머(Lemur)”인데 ‘밤의 영혼’이라는 뜻이다. 야행성 여우원숭이들의 눈이 크고 빛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우원숭이가 진화론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영장류 중에서 가장 오래 된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오래된 동물이라는 것은 가장 진화가 덜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장류는 초기단계의 원시 영장류인 여우원숭이에서 개코원숭이, 긴팔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보노보), 인간 순으로 진화를 해왔다.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멸종된 여우원숭이가 마다가스카르에서만 생존하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과 떨어져 고립된 섬에서 1억년 전부터 별도의 진화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특별한 포식자가 없는 것도 여우원숭이가 생존하기에 좋은 자연환경이 되었다. 남미 태평양상의 갈라파고스 섬이 진화의 보고처럼 마다가스카르도 마찬가지이다. 말라위 은카타베이 호수에서 보았던 시클리드 물고기도 마찬가지이다. 지리적 고립은 별개의 진화로 이어진다.

 

  
난쟁이 바오밥이라 불리는 칭기의 파키포디움 나무
ⓒ 김성호
파키포디움

 

난쟁이 바오밥이라 불리는 파키포디움 나무

 

지프를 타고 공원 안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더 이상 갈 수가 없고, 나무가 우거진 곳에 빈터가 있다. 주차장이다. 지프를 주차시키고 이제는 칭기를 구경하기 위해 걸어서 등산을 해야 한다. 공식 안내자가 암벽 등반용 안전 고리를 허리에 채워준다. 프랑스에서 온 5명의 여행객들과 함께 출발했다.

 

바위산이 위험하기 때문에 안내자가 먼저 가고 여행객은 뒤를 따라간다. 작은 언덕길을 오르자 앞서 가던 안내자가 왼쪽 높은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큰 나뭇가지 위에 여우원숭이인 시파카 세 마리가 앉아 있다. 역시 나뭇잎이 떨어진 하얀 줄기에 하얀색의 여우원숭이가 있으니 그냥 지나치기 쉽다. 여행객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안내자는 어느 나무에 여우원숭이가 있는지 너무나 잘 안다. 여우원숭이의 생활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40m 넘을 정도로 큰 나무의 맨 꼭대기 가지의 갈라진 사이에 시파카가 가지를 잡고 앉아 있다.

 

30여분 정도 나무가 울창한 숲속을 걸어 올라가니 이상한 바위가 나타났다. 조그만 바위가 떨어지는 빗물에 파인 듯 곰보처럼 움푹 움푹 하고 뾰족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칭기의 초기 모습이다. 바위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모양이 특이하다. 밑 부분은 무같이 통통하고 줄기부분은 선인장을 닮았는데, 한 송이의 붉은 꽃이 폈다. ‘파키포디움(Pachypodium horombemse)’이라는 나무인데, ‘난쟁이 바오밥’이라고도 하고 ‘코끼리 발(Elephant foot)’이라고도 한다.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랑 칭기의 모습
ⓒ 김성호
칭기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칭기의 신비로움

 

언덕 고갯길을 넘어서자 내 눈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다. 모론다바의 바오밥 거리처럼 완전히 딴 세상이다. 모론다바의 바오밥 거리가 인상파 화가의 그림전시장이라면, 칭기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동양화 전시장, 그 중에서도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았다. 바오밥 거리가 화려하고 강렬한 채색화라면, 칭기는 먹만으로 그리는 수묵화 특유의 담담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바오밥 나무가 외적 요인인 저녁노을의 색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이라면, 칭기는 내적인 바위의 농담에 따라 은은한 운치를 드러내는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이다. 

 

칭기 국립공원은 이처럼 나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일반적인 기암괴석이 아니다. 뾰족한 바위 탑들이 들판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마치 바위 위에 가시가 박힌 것 같기도 하고, 칼날이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톱니가 박힌 것 같기도 하다. 칭기(Tsingy)다. 칭기는 오랜 세월 동안 석회암이 비바람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뾰족한 바위 탑을 말하는데, 그 안에는 지하 동굴, 수직 동굴, 지하 강물, 열대우림으로 이뤄져 있다.

 

아직까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양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가 저렇게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뾰족뾰족 하늘로 솟은 칼날 바위들이 커다란 무리를 지어 늘어서 있다. 많은 기암괴석을 보아왔으나 칭기는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암괴석이라기보다는 구름 위에 솟은 바위 탑 공원이라고 해야 한다. 칭기는 마다가스카르어로 “발끝으로 걷다”라는 뜻이다. 1500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초기 원주민인 바짐바(Vazimba)족이 뾰족한 바위 탑이 솟아있는 형상을 보고 발끝으로 걷는 모양을 떠올리며 ‘칭기’라는 이름을 지었다. 바짐바족의 이름 짓기는 그 표현의 적확성에 놀랍다. 정말로 칭기를 바라보면 바위가 발끝을 세우고 걷는 모양과 비슷하다.

 

바짐바족의 전설이 어린 칭기

 

칭기는 험한 바위산으로 되어 있어 구경하는 데만 3시간 이상 걸린다. 사다리를 타고 바위 밑으로 내려가면,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좁은 바위 틈새가 나온다. 바위 틈새를 겨우 지나면, 지하요새 같은 공간이 나온다. 지하 미로와 같은 곳이어서 안내자 없이는 바위사이가 얽히고설켜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바위와 바위는 동굴로 연결되어 있고, 동굴을 통해 인간의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바위틈새에도 한 줄기 빛을 받아 나무가 자라고 있다. 안내자는 “트라시나 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한 줌의 흙만 있어도 생명력을 발휘한다. 계곡 틈새의 햇볕을 쫓아 하늘로 뻗는 것이 나무의 본능이다. 바위 계곡 속의 30cm 크기의 흙은 나무에게는 생명의 토양이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좁고 미로 같은 지하 계곡은 마다가스카르 최초의 이주민으로 알려진 키가 1m도 안 되는 전설적인 ‘흰 피그미’ 족인 전설적인 바짐바족의 피난처이자 종교의식의 신성한 장소였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 중부 고원지대에 살던 바짐바족은 메리나 부족에 쫓겨 베마라하 칭기로 밀려 왔다. 남아공의 해안가에 살던 산족이 다른 흑인부족과 백인에 쫓겨 가장 삭막한 칼라하리 사막으로 내쫓긴 것과 같다.

 

그다음은 바위동굴을 지나야한다. 땅을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동굴이다. 안내자가 플래시를 비쳐주면서 바위에 머리를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다. 동굴을 지나 이제부터는 암벽 등반이다. 바위를 타고 70m 정도 높은 바위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쇠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위험하다고 느끼면 그 쇠줄에 안전 고리를 걸어서 천천히 올라간다. 나이가 많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현기증 때문에 오르기 쉽지 않은 바위이다.

 

  
그랑 칭기의 구름다리
ⓒ 김성호
칭기

 

칭기는 천상의 바위성

 

서너 번 중간에 쉬면서 오른다. 땀이 흐를 정도로 힘이 든다. 거의 정상에 오를 때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이다. 칭기의 높이만으로도 70m가 넘는 곳에 오르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마지막 힘을 내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하늘이 활짝 열렸다. 내 눈을 의심할 정도의 또 다른 세상, 땅이 아닌 천상의 세상이다. 정상에는 사각형의 나무 전망대가 안전을 위해 설치되어 있다. 저 밑으로 칭기가 마치 구름을 가리는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밑에서 볼 때면 가시바위처럼 보였던 칭기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뾰족한 우산대를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니, 누군가 하늘 위로 수석 정원을 옮겨 놓은 것 같다.

 

마치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 천상의, 하늘위의 바위성에 갔다 온 느낌이다. 여기저기 산 위에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우산이 펼쳐 있는 모습이다. 놀라운 장관이다. 구름 위로 뾰족한 바위성이 떠 있는 느낌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칭기성이다. 나미비아의 사막이 붉은 모래성이라면, 칭기는 구름 위의 뾰족 바위성이다. 동양화의 수묵화에서 보는 바위보다 더 깊은 맛이 나고, 더 멋지다. 사진보다 훨씬 멋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칭기처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은 실제 와서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우리보다 먼저 전망대에 올라온 이탈리아 연인 여행객도 “멋지다” “놀랍다”며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사진기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망원경을 꺼내 사방을 둘러본다. 망원경은 사파리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칭기 정상에서 주변 하늘 위의 풍경을 보는 데도 요긴하다. 나도 사진기를 꺼내 여기저기 찍어 된다. 놓치고 싶은 장면이 칭기에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사진기 안에만 들어오면 실제 칭기의 모습이 사라진다. 실제보다 카메라 렌즈 안으로 들어오면 멋이 떨어지는 곳은 바로 칭기이다. 칭기는 사진기에 담을 수 없다. 눈망울 속에 담아야 한다.  

 

수백만 년을 바람과 비를 맞으며, 풍화작용에 의해 어느 석공도 빚어낼 수 없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건너편에 제2의 정상 봉우리가 있다. 제1전망대에서 내려와 바위 허리를 타고 옮겨간다. 제2전망대로 가는 데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길이 30m 정도의 구름다리 밑으로는 100m 정도의 낭떠러지 계곡이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밑을 내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하다. 이탈리아 남녀는 구름다리 손잡이에 안전고리를 건 뒤 살금살금 구름다리를 건넌다.

 

제2의 전망대에 오르니 좀 더 웅장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바위 주춧돌 위에 칭기의 모내기 모판을 떠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맨 위의 칭기와 이를 받치고 있는 바위가 칼로 자른 듯 분리되어 어디선가 칭기를 옮겨온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위성을 휘감고 있는 구름 아래로 내려오니 바위계곡이다. 바위계곡을 빠져나오니 어딘가 홀린 것 같다. 마치 3시간 동안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 천상세계를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칭기는 천국의 계단을 통해 구름 위를 넘어 하늘 위에 오를 때만 볼 수 있다.

 

  
죽은 나무줄기에 앉아 있는 스포티브 여우원숭이
ⓒ 김성호
스포티브 여우원숭이

 

낮에는 잠만 자는 스포티브여우원숭이

 

산을 내려오는 길목의 나무 위에 여우원숭이가 있다. 역시 죽은 나무의 맨 위 움푹 팬 구멍에 몸을 깊숙이 숨기고 있다. 이번에도 안내자가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칠 뻔 했다. ‘스포티브여우원숭이(Sportive Lemur)’이다. 잠을 자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안내자는 “스포티브여우원숭이는 밤이나 새벽에만 움직이고, 낮에는 잠을 잔다”고 설명한다. 영어로 ‘놀기 좋아하는 여우원숭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바로 낮에는 항상 자고 밤에만 움직이는 야행성이다 보니 항상 노는 것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됐다. 스포티브여우원숭이로서는 참 억울하겠다. 귀가 둥글고 갈색의 여우원숭이다보니 나무색깔과 비슷해 더욱 찾기가 어렵다.

 

그랑 칭기에는 다른 나무를 뱀처럼 휘감으며 올라가 결국 나무를 죽이는 무화과나무인 ‘스트랭글러 피그(Strangler fig)’와 넝쿨나무처럼 밑줄기는 굵고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안내자가 말하기를 “시프시티마”라는 나무도 볼 수 있고, 암꿩과 비슷한데 부리 주위가 파란 자이안트 쿠아(Giant Coua)가 숲속으로 재빨리 달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랑 칭기를 구경한 뒤 다시 처음 출발했던 숙소 근처의 공원 매표소로 돌아왔다. 작은 칭기라는 ‘쁘띠 칭기(Petite Tsingy)’가 바로 매표소 옆에 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도중에 지프차 운전사가 자신의 집이라며 잠깐 들렀다. 나도 따라 지프 운전사의 집으로 갔다. 철판 지붕으로 지은 집은 오래 되었지만, 2살짜리 남자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운전사와 조수가 같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조수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이가 없고 부부만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집 앞에는 철판 위에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운전사와 조수는 지프차를 한 대 사서 물건을 팔러 모론다바 등으로 가거나, 사람들을 태워주면서 돈을 벌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들 젊은이들의 집은 살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 옆의 나무와 풀로 지은 집에 사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칼라바족의 전통가옥도 둘러보았는데, 흙도 아니고 풀로 나무를 짓고 있었다. 마당 앞에는 여자들이 신발을 싣지 않고 망고와 호박잎 같은 야채를 팔고 있었다.

 

  
쁘띠 칭기의 모습
ⓒ 김성호
쁘띠 칭기

 

아기자기한 쁘띠 칭기의 아름다움

 

‘쁘띠 칭기(작은 칭기)’는 매표소 바로 뒤에 있는데 말 그대로 작은 칭기이다. 쁘티 칭기를 보니 그랑 칭기만큼 웅장하고 광대한 느낌은 없지만,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느낌을 준다. 하나의 큰 바위산이었던 것이 수백만 년을 걸쳐 갈라지고, 비바람에 깎여서 계곡도 이루고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낸 것을 보니 세월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쁘띠 칭기 역시 바위 틈새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사이가 좁아 홀쭉한 사람도 몸을 옆으로 돌려 간신히 들어가야 했다. 크기만 작을 뿐이지, 그랑 칭기가 갖고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모두 갖고 있었다. 그랑 칭기의 100분의 1 모형도랄까. 나미비아아의 소수스플라이 사막의 붉은 모래언덕과 웰비스베이 해변의 모래언덕에서 느꼈던 차이랄까.

 

산책하듯 즐기면서 둘러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바위계곡 아래 나무 틈새에 붉은 눈빛을 발하는 올빼미가 앉아 있다. 자는 것인지, 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올빼미는 사진을 찍어도 끄떡 않고 눈만 굴리고 있다. 커다란 눈과 붉은 눈빛의 발광은 올빼미가 밤에 주로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쁘띠 칭기 하늘 위로 마다가스카르 물수리 세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바로 옆의 논에는 많이 자란 벼와 이제 갓 모내기를 한 벼가 같이 자라고 있다. 논에는 여러 마리의 하얀 해오라기들이 벌레를 잡아먹고 있고, 등에 마치 물통을 지고 있는 듯한 검은 아프리카 혹소가 논두렁에서 풀을 뜯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평온한 풍경이다. 등에 흔들리는 물통 같은 혹이 있는 ‘제부’라 불리는 아프리카 혹소는 목 밑으로 축 처진 피부가 특색이다. 피부가 처진 것은 표면 넓이를 늘려 열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등의 혹은 굶주림에 대비해 지방과 물을 저장하는 창고역할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부의 혹이 생존 보다는 짝을 유혹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파슨스 카멜레온 암컷
ⓒ 김성호
파슨스 카멜레온

 

변신의 귀재 카멜레온을 보다

 

매표소 입구에 다다르자 안내자가 뒤따르던 나를 부른다. 손으로 나무 사이를 가리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내자가 몇 번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내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안내자가 내 손을 잡으며 나무줄기 가까이 가져간다. 그때서야 나무줄기에 무엇인가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변신의 귀재라는 카멜레온이다. 나무줄기 색깔하고 너무나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현미경으로 작은 물체를 살피듯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다. 카멜레온이 변신에 능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렇게 완벽하게 주위 색깔과 일치시키고 있다니 놀랍다.

 

언뜻 봐서는 나무줄기에 긴 혹이 붙어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카멜레온이 붙어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안내자는 “카멜레온 중에서 가장 큰 종류인 파슨스 카멜레온(Parson's Chameleon)으로 등에 돌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그러나 코에 뿔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암컷”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안내자의 설명대로 등에 톱니바퀴 같은 돌기가 났고 머리에 투구 같은 것을 썼으나, 코 부분에 뿔이 없고 둥글면서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공원 매표소 근처의 베코파카 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역시 쌀밥과 닭고기이다. 식당에 기타가 놓여 있자 찰스가 기타를 치면서 자신의 시디 음반에 들어 있는 “아자 이니”라는 노래를 부른다. 마남볼로 강변에 위치한 베코파카 마을은 커다란 망고나무가 인상적이다. 수백 년을 넘게 마을을 지켜왔을 30m 정도의 커다란 망고나무 대여섯 그루가 강에서 불러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마을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다. 망고 나무 밑으로 나무와 풀로 지은 전통 집들이 많이 지어져 있고,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쉬고 있었다.

 

망고나무는 밤나무 꽃과 비슷한 누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 꽃이 지면 망고나무에 주렁주렁 망고가 열리겠지. 마남볼로 강과 망고나무, 풀로 지은 둥근 전통 집,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낙네들, 홀랑 벗고 강에 뛰어들어 목욕하는 아이들,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거룻배…. 베코파카는 한 폭의 동화 속 외딴 마을 풍경이다.

 

쁘띠 칭기와 베코파카 마을을 뒤로 하고 대절한 지프에 올랐다. 강에서 나무판자를 이어 붙여 만든 거룻배를 타고 건너는데, 여인들이 동그란 바구니에 쌀을 가득 담아 팔러가고 있었다. 쌀을 보니 우리 쌀보다 아주 작고 가는 쌀이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의 쌀밥은 약간 푸석푸석하다. 차진 맛이 없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나오는 안남미 맛이다. 그들의 조상이 동남아시아이다 보니 쌀도 안남미를 가져온 것이다.

 

  
마다가스카르 수탉
ⓒ 김성호
마다가스카르 수탉

 

시장에 팔려가는 마다가스카르의 닭은 왜 그리도 구슬피 우는지...

 

모론다바로 돌아오는 길에 지프에 한 젊은이를 태웠다. 한 젊은이가 도로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운전사가 나에게 “태워줘도 좋으냐”고 물어 “자리가 많이 남으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돌아올 때는 나와 찰스, 운전사와 조수 4명만이 타고 있었다. 젊은이의 손에는 작은 자루가 들려 있었는데, 자루 안에는 두 마리의 닭이 들어 있었다. 닭을 팔러 도시로 나가는 길인 듯 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닭 뿐 아니라 돼지를 어깨에 메고 팔러가는 젊은이들도 볼 수 있다.

 

닭 팔러가는 젊은이는 넉살도 좋다. 내가 쓴 모자가 탐이 났는지 계속 모자를 달라고 한다. 남아공 케이프 포인트를 방문했을 때 기념으로 사서 쓰고 다니던 야구모자여서 줄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 젊은이들은 모자를 좋아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비룽가 국립공원에서 마운틴고릴라를 보고 내려올 때 지프차에 태워줬던 콩고 젊은이도 내가 쓴 둥근 테의 등산용 모자를 달라고 때를 써서 애를 먹었다. 콩고나 마다가스카르의 외딴 지역에서는 우리에게는 흔한 모자조차도 구하기가 어렵다.

 

젊은이가 팔러가는 닭이 아까부터 계속 울어대기 시작한다. 한 놈이 울다 그치면, 다른 놈이 이어 받아 울어댄다. 아침을 알리는 수탉의 “꼬끼오~”나 먹이를 �는 암탉의 “꼬꼬댁~ 꼭꼭” 소리가 아니라, “꾸끼우~꾹끼욱” 하면서 울부짖는 소리다. 젊은이가 작은 마을에 내릴 때까지 우리는 닭 울음에 진저리를 내야 했다. 닭이 그렇게 구슬프게, 오랫동안 귀를 째는 듯 한 쇳소리 같은 소리로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도살장에 가는 소 울음이 떠올랐다. 닭도 자신이 팔려나가 목이 비틀어지면서 죽어갈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일까.

 

오후 6시가 되어 해가 지는데, 온 천지에 산불을 내듯 붉게 물들인다. 해도 강렬한 빛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저물어간다. 해넘이 직전까지 강렬한 빛을 유지하고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는 마다가스카르의 해넘이는, 용광로에서 갓 나온 붉은 쇳덩이가 떨어지는 듯 한 몽골의 해넘이에 못지않다. 어두운 밤을 가로지르며, 쉬지 않고 9시간을 달려 밤11시께 모론다바 숙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