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평소 존경하는 정상명 검찰총장님을 모시고,
이렇게 퇴임식을 하게 되어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더욱이 이제 임기를 며칠 남기지 않은 총장님보다 먼저,
서둘러 검찰을 떠나게 되어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검찰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평생을 몸담아 온 검찰을 떠납니다.
검은 머리, 약관의 나이에 청운을 품고 들어와 젊음을 다 바친, 고향 같은 검찰, 가족 같은 여러분 곁을, 이제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저는 참으로 행복하게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1976년 만 스물세 살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3년간의 공군 법무관 생활을 마친 다음,
검찰에 들어와 26년여의 세월 동안 몸담아 왔습니다.
앞서 약력 소개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저는 처음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로 임용된 뒤,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 고검장 직을 두루 거치고,
또 분에 넘치게도 법무부차관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역임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능력도 경륜도 부족한 제가 이러한 어려운 직위들을 차질 없이 수행하여
우리 법무 검찰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대과 없이 퇴직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마음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검찰을 떠나면서 돌이켜 보니,
공(功)보다는 과(過)가 훨씬 많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때로는 수사가 미진하여 사건 당사자들을 실망시킨 적도 있었고,
중요 사안에 대하여 사려 부족으로 잘못된 판단을 한 적도 있었고,
좁은 소견으로 상하 간에 불필요한 갈등을 겪었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입법과정에서 검찰의 입장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 적도 있었고,
정성의 부족으로 상사를 완벽하게 보좌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세심한 노력의 부족으로 치밀하게 업무를 챙기지 못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편으로,
주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여 가까운 분들을 어렵게 만든 적도 있었고,
급한 성격 때문에 같이 지내던 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 적도 있었고,
또 처신의 잘못으로 여러분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하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제가 깨닫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는 잘못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저의 이러한 잘못 때문에 고통을 받으셨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분이 계시면 이 자리를 빌어,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이러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대과 없이 직(職)을 마치게 된 것은,
오로지 총장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의 자상하신 지도․편달과 아울러,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진심어린 이해와 도움에 힘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렇게 과분한 혜택을 받은 제가,
여러 가지 현안이 산적하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시기에,
우리 검찰을 떠나게 되어 참으로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헤쳐 나간다면,
능히 이 모든 어려움을 잘 풀어나가,
종국적으로는 국민들의 신뢰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검찰을 떠나는 제가 이제 여러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위로의 말씀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보왕삼매론에 보면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진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라' 하셨느니라.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변명하다 보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수행하는 불자들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알고 있는데,
오늘과 같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검찰 가족 여러분,
저는 이제 과거가 되었습니다.
과거가 미래를 짊어질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더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미래는 온전히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여러분들이 합심단결하여 우리 검찰의 미래를,
국민이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는 모습으로 완성시켜 주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검찰을 떠나는 소회를 어느 분의 기도를 인용하여 맺고자 합니다.
“해낼 수 있는 강한 힘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였더니
연약함을 주시어 겸손하게 복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더 위대한 일을 하도록 건강을 주시라고 기도하였더니,
병약함을 주시어 작고 알아주지 않는 선행이라도 하게 하셨습니다.
행복해지도록 부유하게 해 달라고 청하였더니,
빈곤하게 하시어 지혜로워지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도록 권력을 달라고 청하였더니,
비천함을 주시어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하셨습니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달라고 청하였더니,
목숨을 살려 주시어 지금 있는 것이라도 즐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요구한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내 자신의 보잘것없음에도 내 무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 중에 나는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퇴역 군인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2007. 11. 20.
대검찰청 차장검사 정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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