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山河♧

성(聲) 고문을 삼가시라.

우리둥지 2007. 4. 12. 20:16
맘껏 즐기되 '성(聲)' 고문은 삼가시라
등산객들의 "야~호!" 소리, 산짐승들에겐 고문
텍스트만보기   임윤수(zzzohm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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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삼월! 들녘엔 꽃이 피고, 수풀 속 둥지 안에선 새끼 새들을 볼 수 있다.
ⓒ 임윤수
때는 바야흐로 꽃피고 새우는 춘삼월, 여기는 꽃 대궐 저기는 꽃동네가 멀지 않았다. 벌, 나비처럼 꽃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녹수처럼 골짜기마다 넘쳐나고, 산등성이가 휘청할 정도로 산 정상을 향한 발걸음들이 끊이질 않을 거다.

겨우내 웅크리며 접었던 마음, 기지개를 켜듯 활짝 열고 봄나들이들을 나선다. 모처럼 나선 화전놀이에 몸도 마음도 '띵까띵까' 들뜨니 마냥 즐겁다. 한 잔술에 입술을 적시고, 두 잔술에 시름을 더니 좋기만 하다. 들녘은 들녘대로, 계곡은 계곡대로, 산봉우리는 산봉우리대로 봄날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을 이룬다.

알록달록, 원색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하, 호호' 거리며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산길을 오르고, 이 들녘 저 언덕에서 꽃놀이를 즐긴다. 몇 년간 계를 모아 평생 처음으로 꽃놀이를 나온 할머니, 벼르고 별러 큰맘 먹고 한참만에 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겠지만 주말마다 소일을 하듯 취미나 운동 삼아 산이나 들녘을 찾는 여유로운 사람도 있을 거다.

▲ 개나리 둥지를 튼 새들도 인기척에 가슴 조인다.
ⓒ 임윤수
어찌되었건 북적대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웃음 만연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북적거리니 만천하가 태평성세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관심의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눈을 뜨면 여기는 신음, 저기는 고통소리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인간세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명천지의 산하는 어떤가? 봄철이 되고, 산행이 시작되며 인간들은 부지불식간 산짐승들을 희롱하고 '성(聲)' 고문을 자행한다. 희희낙락, 즐거움에 취해 무의식 중 죽임도 자행한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즐거워하는 인간들의 해방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경거망동한 화전놀이에 꽃들은 짓밟히고 나뭇가지는 부러진다.

저벅거리는 등산화 소리, 미친 듯 질러대는 외마디 함성에 새들은 불안하고, 깜짝깜짝 놀라던 새끼짐승들은 경기(驚氣)마저 일으킨다. 산짐승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경계와 위협의 대상을 넘어 극복해야 할 공포의 존재다.

머리 위로 대포알이 씽씽 날아간다면?

한 번 생각해 보라. 자신의 머리 위로 미사일이나 대포알이 씽씽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가정해 보라.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거나 폭발할 위험이 없다고 믿더라도 날아다니는 미사일이나 대포알이 얼마나 무섭고 겁날까? 간이 콩알만해지고, 움켜쥔 손아귀에는 진땀이 흐를 거다. 그런 환경이라면 아랫도리가 후들거릴 만큼 하루하루가 지옥이며 사는 것 자체가 공포다.

▲ 인간들이 질러대는 ‘야호!’소리가 다람쥐에겐 ‘너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다.
ⓒ 임윤수
무한궤도의 철 바퀴를 철커덕거리며 차츰차츰 다가오는 탱크를 생각해 보라. 그 탱크가 자신을 향해 대포는 쏘지 않는다 해도, 행여 그 철 바퀴에 깔려 흔적도 없이 뭉그러지는 것은 아닌가가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그렇게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꽝'하는 폭발음이라도 예서 제서 들린다면 마음은 어떻겠는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근거리는 가슴에서는 방망이질을 할 게 뻔하다. 너무 놀라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오줌이라도 지릴지 모른다. 주변이 잠잠해져도 수심 가득한 얼굴, 눈치 꾸러기가 되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겨우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화전놀이를 하던 그 즐거움, 한잔 술에 입술을 적시고, 두잔 술에 시름을 덜고 '띵까띵까' 어깨춤을 즐기는 그런 기쁜 삶을 살고 싶은데, 때아닌 대포, 씽씽 거리는 미사일소리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공포다.

▲ 산새한테도 인간들의 함성소리는 고문일 수밖에 없다.
ⓒ 임윤수
봄날의 산야를 상상해 보라. 가지엔 물이 오르고, 싹들은 움튼다. 뾰족뾰족 싹 틔우는 소리가 경쟁이라도 하듯 들려오니 하루가 다르게 녹음으로 물들어 간다. 싹트니 꽃피고, 꽃피니 벌 나비가 모여든다. 파릇파릇하게 돋은 새싹을 뜯어 먹는 산토끼나 고라니와 산짐승, 꿩이나 산새에게도 나른한 춘정은 찾아든다.

수풀에 둥지를 튼 산새나 산짐승들이 사랑을 나눈다. 부끄러울 게 없으니 감출 것도 없다. 날이 밝아도, 보는 눈이 있어도, 훼방꾼만 없으면 그들은 사랑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맞대고 비비적거리는 사랑놀이로 수놈은 본능적으로 종족 번식의 씨앗을 배설을 하고, 암놈은 새끼를 밴다.

그들에게도 교태가 있고, 사랑표현도 있겠지만 인간들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지만 분명 수풀 속에도 사랑의 개체가 있으니, 이게 자연이며 봄날에 볼 수 있는 그들만의 향연, 숲 속의 풍경이다.

새들은 알을 낳고 산짐승들은 새끼를 낳는다. 어미 새는 배가 고파도 알을 품는다. 비가 와서 흠뻑 온몸이 젖어도 어미 새는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어도, 깃털이 윤기를 잃어 푸석거려도 알을 품은 어미 새는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이다.

▲ 땅에서만 사는 까투리도 인간들의 함성소리에 놀라 엉겁결에 나무위로 올랐다.
ⓒ 임윤수
산짐승들도 그렇다. 비록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그들의 운명이지만 인간들의 고대광실이 부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날이 무거워지는 몸으로 먹이를 구해야 하는 그들의 삶은 가혹한 시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고, 기꺼운 몸짓으로 임신을 한다. 그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낳은 새끼들을 키운다. 누가 인간들의 모정만 숭고하고, 위대하다 할 수 있는가?

산상의 함성 "야호!" 산짐승에겐 성고문

그런 산새와 산짐승들, 새끼에게 모이를 먹이고, 새끼에게 젖을 물리며 봄빛을 즐기고 있는 그들에게 인간들이 지르는 "야호!" 소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소리가 된다. 머리 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대포나 미사일보다도 더 협박적이다. 혼자의 몸이라면 훨훨 날 수도 있고, 후다닥 달아날 수도 있겠지만 새끼를 품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미의 마음엔 생채기에 뿌려지는 소금보다도 더 쓰리고 고통스런 소리다.

주리를 틀고, 콧구멍에 물주전자를 들이대는 것만이 고문은 아니다.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그 엄청난 괴성에 마음 졸이고 몸집 웅크려야 하는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산짐승들에겐 더없는 위협이며 고문이다. 새낀 밴 산짐승, 새끼를 돌보고 있는 산짐승들을 생각지 않고 제멋에 겨워 마음대로 질러대는 산상의 "야호!" 소리야말로 산짐승들을 위협하는 협박의 윽박지름이며 잔인한 '성고문(聲拷問)'이다.

벼르고 벼르다 정상에 올라갔건, 평상시 즐기던 산행의 일환으로 등산길에 나섰건, 산 정상에 올라 두 손을 입술에 모으고 산하를 향해 기염이라도 토하듯 "야호!"하고 외치는 구호 한마디는 인간들에게 있어 짜릿한 쾌감일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느라 헉헉거리며 몰아쉬던 가쁜 숨에 대한 짜릿한 보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야호" 한마디가 산짐승들을 자지러지게 하는 성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산짐승까지 헤아리는 넓은 마음이 아니라면 조용하게 사색을 하며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도덕쯤으로라도 제발 성고문 같은 "야호" 소리는 삼가시라.

따뜻한 봄날, 산행은 맘껏 즐기시되 성고문 같은 함성 "야호!"는 제발 삼가시라. 둘이라면 소곤소곤, 여럿이라면 두런두런 그렇게 즐겨라. 두릅 순에서나 느낄 것 같은 것 같은 쌉싸래하고도 향긋한 그런 산행은 사색하는 발걸음 끝에서 맛볼 수 있다.
2007-03-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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