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무형문화재 침선장 11호 박광훈 선생 |
ⓒ 김현자 |
이런 가풍에 따라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바느질을 배웠는데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따라 옷의 선이 달라지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한복 바느질 자체가 참 좋아 바느질하는 동안 늘 신명이 났습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사람들은 '설'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모르긴 몰라도 '때때옷' 입고 세배 드리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설빔'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은 줄었지만, '설빔 한복'에 대한 추억은 사진이나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을 터.
여기, 많은 사람들이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기성복'을 찾을 때, '우리 것'을 강조하며 60년 동안 '침선장'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침선장(針線匠) 11호 박광훈(77·예명 박선영) 선생이다.
설을 며칠 앞둔 지난 14일, 서울 이화사거리에 있는 '박선영 한복연구실'을 찾아 박 선생의 '침선 외길인생 60년' 이야기를 들었다.
"전통한복엔 조상들의 얼과 숨결 들어 있어"
ⓒ 김현자 |
"박광훈 선생님의 <오방색 아이 옷>은 침선(바늘과 실로 의복이나 생활도구를 만드는 것)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도움되는 책입니다.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느질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거나 눈썰미만 있어도 만들기를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선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 책을 가지고 있고 많이 참고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명희·36·불광동)
4년 전부터 한복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해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침선을 배우고 있는 지인 김명희씨는 이 책을 참고해 자녀들은 물론, 조카들의 설빔까지 지어 입혔다. 그리고 지난 설에는 직접 만든 복주머니에 세뱃돈을 넣어 조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박광훈 침선장의 설빔은 어땠을까?
"옛날에는 옷이 아주 귀했잖아요. 평민이나 하인들에게 더욱 귀했는데 조부님께서는 집에서 부리는 모든 하인들에게 해마다 설빔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래서 명절을 앞둔 몇 달 전부터 집안에는 옷감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아이들 설빔에는 유난히 더 정성을 들이셨습니다. 색동을 한 조각씩 이어 설빔을 곱게 짓고 다시 '복과 명(수명)'을 기원하는 글자나 문양, 꽃 등을 수놓곤 하셨지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바느질하는 동안 늘 생각나는 것은 할머니·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설빔과 옷을 짓고 수를 놓는 등의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란다. 의복에 엄격했던 가풍과 어머니의 정성이 박 선생을 통해 오늘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전통한복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옷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상들의 얼과 숨결이 들어 있습니다. 옷 한 벌, 장신구, 옷에 쓰이는 문양 하나하나 예사로 흘려 쓰지 않았습니다. 음양오행과 복을 기리고 화목한 가정 등의 의미를 두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옷에는 온갖 재앙을 내쫓고 복을 기원하는 문양을 넣었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겐 호랑이처럼 용맹스럽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호건을 씌웠고 여자아이들의 옷이나 버선, 댕기에는 꽃수를 많이 놓아 고운 복을 듬뿍 받고 자라라고 기원했죠. 아이들의 옷에 주로 쓰는 색동에는 오방(동·서·남·북·중앙)의 복이 담겨 있습니다."
"명절이나 잔치 때, 초대복만이라도 한복 입었으면..."
▲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오방 두루마기(까치 두루마기)와 남아, 여아 타래 버선. |
ⓒ 박선영한복연구실 |
▲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앞치기와 턱받이. |
ⓒ 박선영한복연구실 |
겨울에는 누비, 여름에는 깨끼, 아이들 옷에는 원색과 색동, 젊은 새댁은 다홍치마에 연두색 저고리, 중년 부인은 남색저고리,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치마폭….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노론과 소론의 경우처럼 집안끼리, 당파끼리 옷까지 달리 지었다는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전통한복만 고집하기 때문에 '전통한복 옹고집쟁이'라는 말도 자주 들어요. 전통은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키려고 노력하고 습관을 들이면 더 편안한 것이 전통입니다. 현대화와 함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한복이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명절이나 잔치 때, 그리고 초대복만이라도 한복을 입는다면 전통은 어느 정도 이어지지 않을까요?"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국가 행사 때 영부인은 한복을 입는데 대통령은 왜 양복을 입는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맞이할 때도, 다른 나라를 순방할 때도 한복을 입으시면 훨씬 좋을 텐데. 단 하루, 국정 첫 날만이라도 국회에서 한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박 선생은 평생 한복을 벗어 본 적이 없단다. 선물 받은 양장 등을 고맙게 입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한복만큼 편안한 옷이 없다 보니 입지 않게 됐다고 한다. 몇 년 전 생활한복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생활한복 붐은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오히려 전통한복에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 한복에 일생을 바쳐온 보람, 후학들을 가르치는 보람이 크단다.
하지만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아이들 한복 중엔 아이들이 입기 쉽도록 대님 대신 고무줄이나 '찍찍이'(밸크로테이프)로 마무리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한복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한다. 대님 매는 것 하나에도 조상들의 남다른 뜻이 스며있거니와 대님을 매면서 아이들의 마음도 단정해진다는 것.
박 선생은 실제로 어린 아이들에게 대님 매는 법을 가르쳐 보았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배운다며 쉬운 것만 따라 하다 보면 전통은 불편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아이들 한복도 전통을 많이 따랐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의 까치두루마기에 담겨진 이야기를 해줬다.
"색동의 오방색은 청(봄)·적(여름)·백(가을)·흑(겨울)·황(중앙)인데 사방에서 복을 받고 귀하게 자라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에는 색동천이 직조돼 나오지만 예전에는 한 조각씩 한 땀 한 땀 이어 지었습니다. 색동으로 소매를 만들면 오방저고리, 두루마기를 만들면 오방두루마기라고 했는데 전복도 색동을 이어 지었습니다. 예전에는 음식과 옷이 귀해서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고 새 옷(설빔)을 얻어 입을 수 있는 명절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까치설날(섣달 그믐날)에 미리 입을 수 있도록 한데서 '까치두루마기'라는 옷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입는 옷 일체 재현하고 싶어"
▲ <오방색 아이옷>과 저자 박광훈 선생. |
ⓒ 김현자&다섯수레 |
1984년 한·중·일 전통의상교류전 참가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우리 옷 자랑 전국순회공연'(1988년), '출생에서 임종까지'(1991년), '남산한옥마을 개관 기념전'(1998년), '국립박물관 기증전'(2001년) 등을 열었다. 가장 뜻 깊은 전시회는 2001년 '바늘과 벗 삼은 한평생'이란 주제로 열린 국립박물관 기증전(240점 기증)이라고.
지난해 12월, 서울민속박물관에서 선생님의 침선강의가 열렸는데 2개월 과정 주·야간 각각 60명 모집에 600여명이 몰려 추첨으로 수강생을 결정했을 정도라고. 박 선생은 바느질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박 선생은 현재 운영 중인 '박선영 한복연구실'에서 후학양성에 힘 쏟고 있고, 아들 김기상(52)씨가 20년째 침선을 계승하고 있다.
"최근 5, 6년 사이 침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기쁩니다. <오방색 아이 옷>을 시작으로 어른들 옷·예복에 대한 책을 내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유물복원(복식)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이었습니다. 작품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고 그에 따른 바느질 과정까지 재현해 찍어서 실어야 하다 보니 욕심만큼 쉽게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늦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 책을 내서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입는 옷 일체를 재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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