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Super Bowl XL MVP가 되어,
이미 '세계적인
명사'의 신분으로 뛰어오른 하인스 워드!
어릴적엔 다른 학생들 앞에서
한국인 엄마의 모습이 챙피해 얼굴을
감추었는데 지금은 누구 앞에서도
어머니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눈물을 글성거리며 끝없는
사모의 정과 칭송을 늘여 놓고 있다.
그 드라마와 같은 사연은----------!!!
30년전, 미, 제2보병사단의 아프리카계
흑인 병사 하인스 워드 Sr.(20)는,
공무출장중 서울 교외의 나이트 클럽에서
케셔로 일하고 있던 김영희(25)를 만났다.
2개월간의 교제중 임신을 하자 결혼을 하게 되어,
1976년 3월 8일 부모의
축복속에 아들 하인스 워드가 태어났다.
생후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아빠 하인스가
조지아 보병기지로 전출명령을 받아,
세식구가 함께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엄마, 영희에겐 참 으로 낯설고 신기한
신세계에 들어와 채 꿈을 가꾸기도 전에,
그러니까 도착한지 겨우 몇달 만에, 영희모자는
이혼의 <슬픔과 충격에 휩 싸이고 말았다.
그후, 아빠 하인스는 이혼한 모녀을 조지아에 남겨두고,
이번엔 유럽으로 전출되어 떠났다.
귀국을 해,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한
아빠 하인스는 아들을 찾아, 루지아나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맡겨놓았다.
영희는, 온 세상이자 인생의 전부인 아들마저
빼앗기고 참담한 국제미아가 되고 말았다.
그래 한가닥의 애절한 희망을 안고,
법원에다 친자반환소송을 제기했으나,
엄마가 영어에 너무 서투른 데다,
무직인 상태여서 양육 부적합 판결을 받아
아들을 찾는데 실패, 가혹한 절망속에 빠졌다..
이로 인해 생부와 계모에게 양육권이 돌아갔다.
영희는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었으나,
아들을 찾겠다는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하인스가 만 일곱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철이 들게되자,
생모를 찾아 할머니집에서 용감한
탈출의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모자의 극적인 재결합은!
행복한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인스는 어린 시절을 흑인들 속에서만
자라서 엄마쪽에 대해 수치를 느꼈다.
또래들이 그런 엄마의 자식
이라고 조롱을 했고,
멋대로 야유와 별명을 갖다 붙였다.
얼굴도 다르고, 언어도 달라,
어린 마음엔 엄마를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나, 지극한 모정이 하인스를
바른 인간으로 만들어주었고,
그 다음엔 장성할 때까지
어머니곁을 떠나지 않았다.
수재비를 많이 먹었고 과일을 좋아하며,
제일 감명받은 영화는 "금요일’이다.
그의 생활계명은‘하루를 잡아라’이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지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말고 붙잡아라…
하인스는 Forest Park 고등학교 때,
축구선수중 이미 찬란한 승전의
기록과 기량을 과시했다.
Georgia대학에서 경이로운 기록을 보여
명성을 날리며, <소비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Pittsburgh Steelers팀에 발탁되어,
최고의 패서, 케쳐, 리시버가 되고,
Super Bowl XL MVP가 되었다.
엄마 영희는, 흔히 세가지 직업에 종사했고,
하루에 잠간 휴식을 취할 뿐,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의 등교준비와 저녁을 챙기는데
소홀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엔,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준
엄마가 챙피해 의자뒤에 몸을 숨겼다가
번개같이 뛰어내리던 하인스
워드가 뒤를 돌아보자,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접시를 닦고 호텔룸을 청소
하며, 캐셔를 했다.
엄마, 영희는, 아들이 운동에만 빠지지 말고,
교과공부에도 열성을 다하라고 채근하여
하인스 워드의 학업성!
적은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다.
특히 엄마가 도덕교육을 잘 시켜,
이것이 오늘의 성공을 크게 뒷
받침해주었다고 했다.
하인스 워드는 오른쪽 팔의 상단에 한글로,
'하인스 워드’라고 문신을 새겨놓았고,
공을 든 미키 마우스 문신도 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건, 모두가 엄마 덕분이고,
그런 엄마가 아니었 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어요.
무슨 일이든, 엄마는 한 번도 포기
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정말 지독하게 일을 해서 날 키웠어요.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드리고 싶어요."
김 영희씨는 아들이 프로 입단 8개월 뒤에 사준,
스모나 조지아 지역의 대저택이 혼자 살기에 너무
크다며, 남부 에트란티의 헨리카운티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
아들이 연봉 수십억원을 받고 있지만,
신경쇠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동네 고교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하인스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를 한다고 했다.
하인스는, 사랑하는 아내 Simone,
아들 Jodon과 Georgia주의
Atlanta시에서 살고 있다.
학생 때 장학금을 준 한인회와,
경기때마다 열광적으로 응원해준 한국인들에게,
이젠 은혜를 갚을 차례라고 말했다.
하인스는 한국인 엄마를 가진 외국인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이고,
실제로‘한국산 스포츠 영웅’이라는 이름
표덕에, 코리아의 국위
선양에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다.
스폰서인 케딜락이, 지난 번 경기종료후,
2007년형 최고급 케딜락 한 대를 골라잡게 한,
행운의 선물을 받고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오는 4월에, 한국을 찾아와 엄마의 고향도 찾고
많이 듣고싶다고 했다.
미국내 주요 신문편집자와 칼럼니스트들은 말했다.
하인스는 쳄피언이 되고,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섰다.
그러나 이들 기사의 앵글은,
하인스 워드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한국인 엄마가 어떻게 하인스를 키워
오늘의 영광을 가져오게 했는가?
에 맞추었다고 했다.
한국인 엄마의 사랑과 희생, 천신만고로 얻은,
세계정상의 영광과 기쁨을 아들과 세상이 기뻐,
칭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튀기’라든가,‘GI의 씨’라는
낙인을 붙여줬으나, 이젠 그들의 시야와 편견이,
많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고,
그 새로운 인식이 보편화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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