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박근혜
근래, 무책임하고 거짓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에 의해, 우리민족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대(時代)를 부정(否定)하는 작업이, 박정희를 폄하하는 음모가,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그것은 그러나, 대하(大河)를 향해 방뇨(放尿)하는 짓거리들에 불과할 뿐이니, 결코 그의 위대함을 훼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실된 인간 박정희, 그 위대한 생애, 그 아웃사이더의 치열했던 삶 30년 가까이나 계속된 일제(日帝)의 압제가, 막바지에서 조선인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을 때, 식민지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 청년 朴正熙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간(人間)의 순수성을 접고, 광기(狂氣)로 버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는 교사(敎師)가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희망은 잃지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곧 3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군인(軍人)이 된다.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이 아니라 용병(傭兵)이나 다름없는 그 길을 택했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 자포자기한 상태가 아니였을까 한다. 자학(自虐)하는 모습이 보인다. 군인의 길은 결코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 거기서 그의 운명(運命)은 결정되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정말 불행한 군인이었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혼란의 와중에서,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그도 때로는 나약해지기도 했을 것이고, 이상(理想)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른 거짓된 인간들과 다른 점은,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만회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의 전인생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치열함이다.
때로는 저항할 수 없는 운명(運命)의 힘에 좌절하기도 했으나 나태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치열함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다. 그는 솔직하고 진실된 인간이었다.
강직한 군인, 존경받는 상사(上司)였고,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으며, 자신에게는 엄격한 인격자(人格者)였다. 그 당시의 사회상과 대비되는 그의 이러한 인간됨을 생각하면, 그는 좋은 의미에서의, 이질적(異質的)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그 위선 가득한 사회에는 결코 융화될 수 없었던 국외자(局外者),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이 아웃사이더에 의해 혁명(革命)이 있게 된다.
지금은 반대 세력에 의해 군사 반란, 즉 쿠테타로 왜곡되어 있지만, 5.16 이후 우리사회에 정신적(精神的) 물질적으로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혁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19의거요, 5.16혁명이라고 해야 마땅한 것이다. 5.16혁명(革命),, 이 거사의 정당성(正當性)은, 그가 그 이후에 이룩한, 근대화 작업, 민족중흥이라는 그의 위대한 업적(業績)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거사의 당위성(當爲性)은, 필연성은, 그가 타도하고자 했던, 타파하려 했던 대상(對象)이 누구였으며, 무엇이었냐를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지금과 같이,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세월을 보내던 무능하고 썩어빠진 한심한 정권(政權)이었으며, 밥을 굶는 가난이었다. 자신감 없는 민족성이었으며, 타성에 젖은 게으름이었다.
그가 물러날 시기(時期)를 놓친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오랜 집권은 대다수 국민의 묵시적 동의(同意)하에 가능했던 것이다. 근대화가 진행되고, 사회가 활력을 얻고 다원화(多元化)되면서, 새로운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했으나, 그는 그런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가난에서의 탈출과, 민족 중흥이라는, 근대화 작업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반려자의 불행한 죽음은, 그의 이런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임무는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민주화된 사회라기보다는, 다원화된 사회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자연스러운 발전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다원화된 사회가 언제나 민주주의 사회는 아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 언론의 자유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군사정권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빈부(貧富)의 격차가 더 커졌다. 형식적인, 제도(制度)가 민주제도라고 해서, 대통령을 직선(直選)한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전히, 표적 사정(司正)으로 정적(政敵)의 입을 막고 있고, 세무사찰을 동원하여 신문(新聞)을 탄압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방송(放送)을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부패는 더 심해졌다. 이것을 과연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의도(意圖)와는 상관없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그래서 사회가 다원화함으로서, 개인적인 자유도 많아지고,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커진 것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근대화 세력이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 당연히 그것을 펼쳐가야 할 사람들은, 거꾸로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한번 힘을 받은 경제(經濟)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계속 나아갔으나, 정치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과 혼란은, 근년의 역사, 즉 朴正熙의 대한 잘못된 평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실용적(實用的), 진취적 근대화 세력이 폭압 집단으로 매도되고, 패퇴함으로써, 공리공론의 수구(守舊)적인 인사(人士)들이 복귀하게 되었고, 역사(歷史)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민족(民族)의 역량을 그 절반(折半)도 발휘하지 못한채,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두 金씨의 10년 세월은, 한마디로 참담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노래하던 민주화란 것이, 단지 정략적(政略的)인 구호에 불과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과 함께 완전히 무너지고만 우리사회의 도덕성(道德性)은, 앞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박정희의 잘못이 정녕 있다면, 그것은 양심(良心)의 자유가 필요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自身)의 양심의 자유(自由)를 행사한 것 뿐일 것이다)
지금 왜 朴正熙냐 하는 것은, 이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가 남긴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은 위선(僞善)과 허영이 아니라, 진실(眞實)과 실용정신이며, 더 높은 도덕성이다.
경제적인 성장도 필요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더욱 요구되는 것이 정신적(精神的)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사회구성원들의 향상된 인격(人格)을 바탕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억지와 궤변이 판치고, 비리(非理)와 부패가 넘치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도 없고, 또한 무의미한 것이다. 상대방의 양심의 자유를 억누르는, 폭언이 난무하고, 논리(論理)와 원칙이 사라진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꽃필 수 없는 것이다.
( 폭언, 폭력, 비논리(非論理), 반이성(反理性), 비인격(非人格), 부도덕(不道德)은, 모두 타인(他人)의 자유를 제한(制限)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적(敵)인 것이다 )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바로, 어떻게 살 것이냐인 것이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다. 이제는 朴正熙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수습하는 출발점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박정희를 되살려야 한다. 역사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사회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박정희를 이해한다! 5.16혁명에 동의한다!! 무대 뒷편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朴正熙의 울분을 이해한다. 박정희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 지금 이 나라에는 없다. 정치 자유, 언론(言論) 자유, 다 소용 없다. 모두들 자유(自由)를 누릴 자격들이 없다.
지금과 같은 좋은 조건에서도 제대로 안되는 민주주의(民主主義)가, 그 어려웠던 시절,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들이 그토록 노래하던 민주화란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는 이제는 모두 드러났다.
무대의 뒷편에서, 무능(無能)한 장면 정권과,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세월을 보내던, 한심한 정치(政治)모리배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朴正熙의 울분을, 고통을 이해(理解)한다.
희망을 잃은,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동족(同族)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의 안타까움과 좌절감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의 최선(最善)의 선택이었던 5.16혁명(革命), 또한 이해한다. 동의(同意)한다!
그리하여 그의 양심(良心)은, 근대화(近代化) 작업이라는 그의 무대에서, 유감없이, 당당하게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고통(苦痛)이라면, 양심을 펼쳐나가는 능동성은 기쁨인 것이다.
진실된 인간(人間) 박정희의, 울분과 양심의 표출이요, 그 능동성의 발로이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그 치열한 삶의 결과가 바로 5.16혁명인 것이다.
누가 朴正熙를 비난하는가? 누가 5.16을 부정(否定)하는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박정희처럼 일을 함에 있어서, 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 일의 주체(主體)가 옳았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김옥균(金玉均)의 잘못은, 그 명분(名分)이야 어떠하든, 일을 망쳤다는 데 있는 것이다.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일을, 그토록 무모하게, 무책임하게 해치움으로써, 나라도, 자신도 모두 망치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을 속이고, 이상(理想)에만 사로잡혀, 결국은 일본(日本)을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루 강아지의 무지(無知)함과 무모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朴正熙가 옳았다는 것은, 그가 일을 성공시켰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되는 것이다.
진실성(眞實性), 실용정신, 애인정신(愛人精神), 융통성, 적극성 등, 일의 성공에 필요한 인간의 올곧은 품성들이, 근대화 작업이라는 그의 일생 일대의 사업에 다 녹아 있는 것이다.
거짓된 자들이 민주화를 떠들지만, 실상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박정희인 것이다. 두 김씨는, 차려준 밥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엎어버린, 어리석은 위선자들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자질을 생각해 볼 때, 박정희 이후, 우리가, 옳은 지도자와 함께, 역량을 제대로 100% 발휘했다면, 벌써 일본을 넘어섰을 것이다. 초일류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거짓된 자들은, 결코 일을 성공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든 민주화든 간에, 실질(實質)과는 거리가 한참 먼, 공허하고 또 공허한 자들이, 무엇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에 이미 박대통령은 1000년앞을 내다보고 철저한 보안을 유지, 5년여의 장기간에걸처 계획하여오던 "백지계획"구상을 보거나 1970년대 컴퓨터란 단어조차 생소할 당시 미래을 내다보고,KIST, ADD 등 과학기술 우선 정책을 펴, 과학기술 이공계 분야에 종사하는 인재들을 최고의 글이 점점...
보라 박대통령 이후, 후임 지도자들은 그 누구하나 자신과 자신의 친인척을 위해 국민들을 배신하고 수많은 비리와 부정 부패로 이나라 국민들을 분통, 실망을 주지 않은 지도자가, 단, 한명 이라도 있는가 그 누가 박대통령 보고 시대가 영웅을 만들었지 결코 박대통령이 자질과 능력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한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