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조 카메라 박물관 관람기
--- 한국 카메라 박물관 관람기 ---
己丑年 정초부터 내가 좋아 하는 모임 중에 하나인 인터넷 모임인
"Ever Green(에버그린)"이라는 1943년 癸未生 모임의 정기총회가
과천에 소재한 "작은 행복'이라는 카페에서 개최 되었다.
다른 일을 좀 보고 서둘러서 그 곳에 도착 하고 보니 상당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마침 모임 장소와 딱 붙은 곳에 아담한 3층 건물에 "한국 카메라 박물관"이 있었는데 軍用카메라 特別展 이라는 프랑카드가 있어서 동행한 카페 친구와 함께 표를 끊고 입장 하였다.
이 박물관은 30년간을 돌아 다니면서 수집한 아주 귀중한 유물들 이었다. 그 곳에 안내자 에게서 들어 보니 많은 카메라중 아주 일부분
과 군용카메라를 전시중이라고 한다.
카메라 元祖격이며 레오날도 다빈치가 자세히 기록한 옵스큐라,카메라 루시다 와 1839년 카메라가 있었다.
또 은판 사진술이 세계 최초로 발명된 때부터 현재까지의 약 3,000여점이 넘는 카메라 그리고 6,000여점이 넘는 각종 카메라 렌즈 와 초기 환등기,사진 인화기, 각종 악세사리등 무려 15,000점이 넘는 유물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관람 하게된 전시품은 그중 10 %에 불과 하다고
하는 데도 나는 엄청량의 많은 카메라를 보았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마침 軍事用 카메라 특별전을 보면서 40년전 포병장교 시절에 비행기를 타고 정찰엄무를 하던 때를 회상 하기도 하였다.
동행한 친구도 희안한 유물을 관람 하게된 것에 연방 감사해 했으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기회가 되거든 한 번 쯤 가 보십시요.
위에서 말 한 바와 같이 특별전 이어서 인지 6.25 한국전쟁때 사진 일부와 항공 카메라,陸.海.空軍用 카메라, 야전용 카메라 에서 부터 전시때쓰던 간첩용 으로 담배모냥 과 라이터 모냥 또 손톱 크기만 한 것 부터 전쟁때 사용한 기관총 같은 카메라 또 내 키 두 배나 되는 큰 카메라 까지 군용만 170 여종의 각양 각색이었다.
카메라 역사를 살펴보면,
15세기가 끝날 무렵인 1568년부터 사진이 발생이 시작 되었다.
이탈리어 사람인 다니엘로 바바로 라는 사람이 컴컴한 방에서 렌즈를 통하여 들어오는 빛을 흰 종이에 받아 보면서 시작 되었다.
그러다가 16세기말 이탈리어 나포리 과학자이며, 작가 레오날도의 고향 사람 이기도 한 지오바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 라는 긴 이름을 가진 사람이 꺼꾸로된 영상을 공개 하면서 더욱 발전에 박차를 가 했다.
이후 1807년 닥터 웰리암 웰라스톤 은 카메라 루시다의 특허를 얻었다. 또 1826년에 불란서 사람인 석판 인쇄 기술자인 조셉이 "최초에
사진"을 만들게 되었다.
그 후에 1839년에 깨끗한 사진이 나오자 사람들은 "조물주가 만들어낸 위대한 마법의 발명품" 이라고 하면서 현재의 화가들의 회화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00여년 후인 1930년 후반부터 목제로 제작한 사진관용 카메라를 가내공업으로 시작 되다가 1960년대에 대한 광학의 코비카(Kobica)를 잠시 생산 하게 되었다.
그 후인 1980년 초부터 일본제 카메라들을 우리 나라에서 조립하기 시작 하였고, 80년대 후반 부터 본격적으로카메라 제조를 하게 되었다. 일본은 우리 나라 보다 약 60 여년 정도 앞서서 아사히 광학
(PENTAX)이 설립 되어서 본격적으로 개발 되었다.
우주선과 비행기 군함등에 싫은 크나큰 카메라부터 아주 작은 카메라까지 신기한 모냥도 많았고,심지어 귀족들의 소장품 닽이 보이는 黃金으로 도색한 카메라등 진귀한 것들도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쇄국정치로 문명을 늦게 받아 드렸다는 역사성을 생각 하면서 앞으로 나마 우리 후손들 이라도 노력하여 세계를 주름잡는 국가로 성장 하기를 고대 하여 본다.
( 카메라 박물관 에서 관람중에 친구가 촬영)
( 한국 카메라 박물관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