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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대통령 이었드라면...

우리둥지 2008. 6. 17. 10:46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 박 호 성(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렇게 오랫동안 타오르는 촛불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100만이 운집한 촛불 시위 후에 길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국민을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국민인가.

지도부도 없는데 벌써 40 여 일을 이처럼 감동적으로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유모차에 컨테이너로 맞섬으로써 세계인의 조롱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봉건시대에는 봉화(烽火)와 봉수(烽燧)가 있었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烽]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燧]를 올려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였다.

 

봉화는 밤에 피우는 횃불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도 포함해서 흔히 ‘봉화’라 통칭하였다 한다.

 오늘날 이 촛불이 바로 봉화인 것이다.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 지금 우리는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로 극심한 등쌀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정치가 행방불명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이 ‘봉화’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칠게 말해, 정치란 온 백성으로 하여금 자유를 한껏 즐기면서도

 빵 또한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행위라 이를 수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자유롭게 빵을 먹을 수 있는 권리와 먹을 빵을 충분히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내는 것이야말로 대통령,

또는 집권 세력의 기본 임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한 마디로 말해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다.

 

 첫째, 국민의 물질적·정신적 건강 증진 및 복지 함양은 가장 기본적인 통치 목표다.

 따라서 국민이 안심하고 먹고살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 토대와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정부의 기본 임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구상 등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임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지금 ‘병든 소 강제 급식 조치’에 저항하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평화롭게 촛불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촛불을 들고 있는 우리 시민들은 촛불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참된 자유와 참된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국민은 평화롭게 ‘자유’를 한껏 즐길 수도 없고 ‘건강한 빵’ 또한 마음껏 먹을 수도 없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정치인을 대신해 몸소 나서서 굴욕적 한미쇠고기 협상을 규탄하고,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분노의 함성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 앞으로 닥칠 민생파탄을 두려워하고 있다

 

. 둘째, 의회의 존재이유는 국민적 염원을 제도적으로 옹호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회란 국민의 안전 및 복지 구축을 경쟁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주적 제도 장치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설적인 의회정치가 요구되어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를 앞장서 주도해야 할 여권은 국민과의 합의나

국민적 동의를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안전과 복리 증진에만 진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여권이 조성해낸 이러한 위화감 앞에서

국민들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의 총체적 삶을 파괴하려든다고 믿는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국정파탄을 자초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건강 주권까지 미국에 팔아치웠다고 항의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 대통령과 그 자신이 손수 골라 뽑은 ‘강부자 내각’,

그리고 그의 거수기에 불과한 한나라당과 충신 조중동이

국민을 속이기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반면에 야당은 자신들의 운동장인 국회가 아니라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의 촛불시위 대행업체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는 요컨대 야당 스스로 국민들의 불만을 앞장서

 치유할 능력이 없음을 실토하고 공인하는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재협상 시도, 대운하 포기. 이제 나를 믿어 달라!”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손톱으로라도 샘을 파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부는 스스로 이 샘물을 파기 위해 곡괭이와 삽을 든 시민들을 불법이라 또 매도한다.

지금 정부 여당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대신,

 모래를 뿌리는 것처럼 보인다.

 

 특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당선인답게 이명박 대통령은 신의보다는 출세지상주의를 흠모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는 사랑의 힘이 아니라 힘을 사랑하는 경영인이나 행정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지금 대통령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우선 촛불을 들 것이다.

운집한 촛불 시위군중 틈에 끼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신청할 것이다.

 

나는 촛불을 들고 등단한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쇠고기 재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운하 구상도 내팽개치고자 한다.

 

나의 이러한 의도를 명백히 하기 위해,

곧 거국내각을 구성하고자 한다. 이제 나를 믿어 달라!” 한여름 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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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호성 ·

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장 겸 공공정책대학원 원장(정외과 교수)

· 한겨레 신문 객원 논설위원 ·

 학술단체협의회 대표간사 ·

 미국 Berkely 대학 및 캐나다 뱅쿠버 대학(UBC) 객원교수 ·

 

 저서 :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전망>,<우리 시대의 상식론>,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