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의 유산 (경 주 불 국 사 ) 1) 자연 유산 * 세계의 유산 1.세계 기록 유산 2) 문화재 유산 2.인류 구비 전승 및 무형 유산. *한국의 세계유산 은? 자연 유산 ---- 하나도 없다고 한다. 문화재 유산--불국사, 석굴암, 해인사의 경판건,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경주 역사유적지역, (고창,화순, 강화) 의 고인돌유적 7 점. ..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5.14
[스크랩]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골목을 지나도매일 같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은 햇빛이 가득차 눈이 부시고어느 날엔비가 내려 흐려도 투명하거나어느 날엔바람에 눈이 내려 바람 속을 걷는 것인지길을 걷는 것인지 모를것 같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골목 어귀 한그루 나무조차어느 날은 꽃을 피우고어느 날은 잎을 틔우고무성한 나뭇잎에 바람을 달고 빗물을 담고그렇게 계절을 지나고 빛이 바래고..낙엽이 되고 자꾸 비워 가는 빈 가지가 되고늘 같은 모습의 나무도 아니었습니다.문밖의 세상도 그랬습니다.매일 아침 집을 나서고저녁이면 돌아오는 하루를 살아도늘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고또 오늘 같은 내일은 아니었습니다.슬프고 힘든 날 뒤에는비 온 뒤 개인 하늘처럼 웃을 날이 있었고행복하다 느끼는 순간 뒤에도 조금씩 비켜갈수없는 아..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3.29
[스크랩] 신기한 친구 신기한 친구고양이가 마당가 고목 나무 꼭대기에 앉아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개는 나무 밑에 앉아서 고양이를 올려다보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고양이와 개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개의 대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시골에는 집집마다 어울리지 않게 비싼 개를 두 서너 마리씩은 키운다. 그런 개들은 값이 비싸서인지 늘 묶여 있다. 어떤 집은 여덟 마리나 키우는 집도 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기르다가 힘들어지면 시골로 보내지는 것들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손자들이 침대에서 데리고 자던 개와 고양이를 보내왔다. 다 자라서 집안에서 기르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호강하고 자라던 동물이라 처음에 와서는 적응하느라 고생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에서보다 잘 지낸다. 넓은 뜰..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3.24
[스크랩] 한 송이 수련으로 겹겹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물 위에 풀어 놓고그래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하루 가져온 곳: [너와 나의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글쓴이: 요세비 바로 가기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3.21
[스크랩] 앵초 봄소식을 전하며 우리 산야에 피어나는 꽃, 앵초긴 꽃대에서 핀 꽃잎 다섯개가 풍차를 닮아 풍륜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네요(창경궁 식물원에서) 가져온 곳: [너와 나의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글쓴이: 요세비 바로 가기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3.21
[스크랩] 겨울 바다.. 겨울에 가본 제주 바닷가 사진들을 몇장 올려봅니다.. ^^탁 트인 깨끗한 바다를 보니.. 순간 마음도 탁 트이는 것이..근데 사진은.. 잘 못찍어서 그만큼은 안나왔네요.. -ㅅ-);; 사람들이 시도때도 없이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그만큼 뭔가 갑갑하고 잘 풀리지만은 않는 일상에서.. 잠시동안만이라도 일탈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 너무 입에 발린 말 같지만.. ^^;눈으로 느끼는 바다만큼.. 소중한 마음으로 느끼는 바다도 하나쯤.. 만들어 두어야겠습니다. 요즘 지하철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보다보니..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과되기 쉬우면서도 중요한 것인지.. 느끼고 있는 터라.. ^^; > jarre 가져온 곳: [소소한 일상..]  글쓴이:..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3.21
[스크랩] 김삼의당 흔적을 찾아서...... 삼의당김씨(三宜堂金氏)1769(영조 45)∼?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김해(金海). 당호는 삼의당(三宜堂).전라북도 남원 서봉방에서 태어나 같은해 같은날 출생이며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河립)과 혼인하였다. 이들 부부는 나이도 같거니와 가문이나 글재주가 서로 비슷하여 주위에서 천정배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중년에 선영(先塋)을 수호하기 위하여 진안 마령면(馬靈面) 방화리(訪花里)로 이주하여 거기에서 시문을 쓰면서 일생을 마쳤다.그의 문집에 기록된 것처럼 남편 하립이 그 부인이 거처하는 집의 벽에 글씨와 그림을 가득히 붙이고 뜰에는 꽃을 심어 ‘삼의당’이라 불렸다 한다. 그의 평생소원은 남편이 등과하는 것이어서 산사에서 독서하고, 서울로 유학하는 일을 철저히 권장하였다.. ♧사진으로 본 뉴스♧ 200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