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을 터트리는 듯, 뻥 하는 소리에 눈길이 저절로 그곳 향해 움직였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솜사탕 같은 연기가 고소한 냄새를 흩날렸다. 폭죽이 아니었다. 한동안 비어있던 광시장의 튀밥골목에 주인공이 다시 등장하여있었다.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덕 불 위에 쌩쌩 돌아가는 튀밥기계와 남색 작업 잠바를 걸친 중년의 사내가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관객은 없었다. 튀밥 튀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오긴 했지만 지나는 이 한명 없는 빈 골목이라서 구실 없이 서있기가 어색할 것 같았다. 곁눈질하며 몇 차례 오락가락 왕복하고 있었더니, 사내도 튀밥기계를 돌리면서 자꾸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이상한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계면쩍게 웃어 보이며 옛 생각이 나서 구경 좀 하련다고 말을 걸었는데, 그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자기를 모르느냐는 것이었다. 나야 구실이 없고 숫기도 없어 옆을 왔다 갔다 하며 힐끗거렸던 것이지만 그가 나를 향해 자꾸 흘끔거리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누구인지 어렴풋 생각이 떠올랐다. 뒷산 너머에 살던 후배 이동렬 이었다. 예전에도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부친의 자리를 그 가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화덕 앞으로 한걸음 당겨 앉았다. 옛 얘기를 나누노라니 30년쯤 전의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화덕에 솔방울을 던져 넣으며 손잡이를 돌리던 튀밥장이들의 순박한 미소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뻥 소리 터지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엄동설한임에도 새카맣게 그슬린 얼굴로, 불똥자국 투성이에 소매부분이 반질반질한 낡은 잠바를 걸치고 뻥이야!를 외치던 이동렬의 부친 이원만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잡혔다.
1970년 초,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잇던 이원만은 큰 맘 먹고 튀밥 기계한대를 장만하였다. 5일에 한번씩 서는 장 한쪽구석에서 튀밥 튀는 일을 시작하였고, 촌에 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부근 마을을 옮겨 다니며 튀밥기계를 돌렸다. 튀밥기계는 쇳덩어리였다. 쌀 한가마니 무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 나가지 않았다.
그 무지막지한 무쇠덩어리를 지게에 지고 이동했었다. 화덕에다 커다란 철망태기, 그리고 땔감으로 쓸 솔방울 가마니 등, 이 모든 것을 한번 걸음으로는 이동시킬 수가 없었다. 첨에는 새벽 일찍 집과 장터를 두 번씩 오가며 나르곤 했었는데 큰아들 동렬이 여 남은 살이나 넘기고부터는 아버지를 조금씩 돕기 시작하였다.
조그만 지게에 솔방울 가마니를 얹어지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무거운 것을 지고가다 눈길에 미끄러져 나뒹굴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난관에선 헤어날 수 있었다. 중고손수레를 구입한 것이다. 손수레를 장만하고부터는 30리쯤 떨어진 홍성장이나 청양장까지도 영업을 나갈 수가 있었다.
지게에 지고 다닐 때 는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다. 그렇게 한해두해 흘러 동렬의 나이 열대여섯을 넘길 무렵부터는 수레의 손잡이를 그가 넘겨받기에 이르렀다. 장날저녁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손수레를 끌고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동렬 부자(父子)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한잔 얼근하게 걸친 이원만이 아들이 끄는 손수레 뒤를 따라가며 육자배기 한소리 걸쭉하게 비틀비틀 걷던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뻥 하는 소리에 기겁 하였다. 이동렬이 예고할 것도 없이 튀밥기계뚜껑을 당긴 것이었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뚜껑을 열려면 연다고 말을 하고 열어야지, 고연 사람 같으니.”
짐짓 나무라면서 흩어지는 구름 속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몇 걸음 밖에 세워놓은 1톤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30여 년 전 이원만의 지게가 놓여있던 곳에, 지금은 그의 아들 이동렬의 트럭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동렬이, 아버지 하던 일을 무슨 사명감이나 의식을 가지고 대물림 한 것은 아니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니 그 일로 먹고사는 터였다. 그렇다 해도 대를 이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동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고. 벌이도 제법 괜찮은 듯 신수가 훤했다.
눈길이 얼핏 화덕에 머물렀다. 가스 불이었다. 저게 솔방울 때던 옛날 화덕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이동렬에게 문득 제안했다.
“내가 다음 장날엔 솔방울 좀 따가지고 올까?”
그는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솔방울 때는 사람덜이 워디 있다구, 지금은 아마 그 화덕을 구하지두 못할걸유?”
물론 농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만약 옛 장비들이 아직 보관되어 있다면 못해볼 것도 없지, 하는 아쉬운 맘을 남기고 몸을 일으켰다.
2005,
11,15
박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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