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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양반아! 당신이 문 열고 넣어야지 내가 내려서 열어?" "거~ 운전석 아래쪽에 보면 주유버튼이 있는데요." "거기서 여는 게 아니었어? 미안하게 됐소." 지난해 초보운전이던 아버지께서 주유소에서 겪은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해프닝이 비단 주유소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차를 사고 운전을 하면서 수많은 에피소드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1년여가 지난 지금은 초보 운전 딱지를 떼고 베테랑(?) 운전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만 이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환갑이 되시는 '아버지의 초보 운전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단 한 번에 면허증을 따신 아버지, 마을 사람들에겐 부러움의 대상
주변 친구 분들이나 동네 어른들이 나이가 있어서 힘들 거라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아버지께서는 그냥 웃어넘기셨지만 마음속으로는 '두고 봐라. 내 꼭 붙어서 네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가족들한테만 살짝 하신 말씀입니다. 이후 아버지께서는 운전학원에 등록을 하고 그 좋아하던 술까지 끊어가며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셨습니다. 어느 날 문득 청소하면서 본 아버지의 운전면허 문제지는 외우려고 노력하신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밑줄도 그어져 있고, 중요한 단어는 문제지의 여백에 꼼꼼히 적어두기까지 했습니다. 필기시험 공부에 열중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운전 연습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남들이 어렵다던 필기시험도 한 번에 합격을 하신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술도 끊어가며 밤낮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겠지요. 몇 번 시험 볼 생각을 하고 도전했다는 아버지께서는 처음 본 시험에서 88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붙기 어려울 겨"라고 말하며 비아냥거리던 동네 분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처럼 요즘 뒤늦게 학업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한 번에 합격한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필기시험을 붙었으니까 다 붙은 거나 마찬가지네" 회사에서 퇴직하시기 전까지 지게차를 운전하셨던 아버지에게 코스시험이나 주행시험은 그리 어려운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의 바람처럼 아버지께서는 빼어난 운전솜씨로 한 번에 코스와 주행시험을 합격하시고 면허증을 취득하셨습니다. 면허증이 발급되던 날, 면허증을 받고 기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운전면허학원에서 면허증을 발급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제 면허증도 있겄다, 내가 몰고 갈테니께 차 줘봐." "괜찮겠어요? 면허증은 있지만 아직 운전하기에는 이른 거 같은데." "일단 줘봐. 네가 옆에 앉아 있으니께 괜찮어. 글구 천천히 갈껀디 뭐." "알았어요. 그럼. 천천히 한번 몰아보세요." 그렇게 해서 면허증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버지께서 차를 운전하셨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출발. 그런데 얼마 못가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뒤에서 시끄럽게 경음기가 울려 뒤를 돌아보니 수대의 차량이 줄서서 따라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침착하고 꿋꿋하게 제 속도를 유지하시는 아버지. "급하믄 지들이 피해 가겄지?" "그렇긴 하지만 옆으로 비켜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 후 한 달이 지나서 아버지께서는 마침내 새 차를 한 대 구입하셨습니다. 조금 더 큰 차(중형차)를 사라는 저의 간곡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아버지께서는 운전면허학원에서 배우던 차를 사야 자신 있게 운전할 수 있다며 결국 학원 실습용 차와 같은 기종의 소형 차량을 구입하셨습니다. 차를 구입한 후 마을의 좁은 길에서 운전연습을 하시던 아버지. 드디어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운행을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초보 운전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잊지 못할 아버지의 초보운전 에피소드 처음으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처음으로 마을을 벗어난 바로 그 날 일어났습니다. 차 두 대가 겨우 피할 수 있는 좁은 마을길을 운행하던 중 앞에서 차가 나타나자 아버지는 당황하여 차를 세웠고, 아버지 차가 뒤로 후진해야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자 앞차는 경음기를 울려댔다고 합니다. 후진을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버지는 결국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리셨고, 이내 앞 차 운전자에게 다가가서는 "내가 초보 운전이라 그러니 미안한데 내 차 좀 뒤로 빼 줘유" 하고 겸연쩍어 하시자 그때서야 앞 차 운전자는 화를 풀고는 웃으면서 "진작에 말씀하시지요 어르신"하며 차를 뒤로 빼주고 운전을 하며 갔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족들은 "아버지는 앞으로는 잘 가는데 뒤로 가는 연습 좀 더 하셔야 되겠어요"하며 한바탕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와 전화 통화하던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화할 당시에 아버지는 조치원에 계셨었는데 차를 끌지 않고 버스를 타고 조치원에 가셨답니다. 그래서 왜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가셨냐고 물어보니까 아버지 왈 "차를 끌고 조치원으로 어느 정도 가다가 옆에 지나 댕기는 차가 워낙 씨게 달려서 무서워서 다시 차를 돌려 대평리 버스정류장에 차를 놓고 버스타고 왔지"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이왕 출발한 김에 그냥 조치원까지 가시지 무서워서 차를 돌리셨다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운전한 지 1년이 지나 장거리 운전에도 끄떡없으십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주유소에서 일어난 일로 우리 가족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배꼽잡고 웃었습니다. 운전에 재미를 느껴 한참을 운행하시던 아버지는 주유계기판에 불이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 주유소로 향했습니다. 주유소에 도착해서 주유탱크 옆에 차를 세우고 주유원에게 가득 넣어달라고 말한 뒤 아버지가 주유구를 열지 않고 가만히 계시자 주유원이 말했습니다. "주유구 좀 열어주세요"하자 아버지는 "야~ 이 양반아! 주유구는 당신이 열어야지 누구보고 열으라는 거야?"라고 역정을 내셨답니다. 그 말을 듣고 주유원이 운전석으로 다가와서는 차 문을 열고 발아래에 있는 주유구 버튼을 들어 올려 주유구를 열자 아버지께서 쑥스럽다는 듯 한마디, "그게 거기 붙었어? 난 또 사람들이 차를 바치고 기름을 넣는 걸 보면 주유원이 기냥 문 열고 넣는 줄 알았었는데... 어쨌든 미안하게 됐소"하면서 부리나케 주유소를 빠져나오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초보운전 기간 동안 일어난 이 세 가지 에피소드는 지금도 명절이나 가족이 다 모이는 기회가 되면 우리 가족이 웃음꽃을 피우는 이야기 거리입니다. 지금은 베테랑 운전수가 되어 있어 장거리 운행도 문제없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아직도 아버지의 운전 실력은 좀 더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조심 운전하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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